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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논란 '강공책'으로 가는 대통령실…"본질은 비속어 아닌 동맹국 폄훼"
대통령실 법적 대응은 않기로…국민의힘 "해외 순방 자막 사건'
2022-09-27 14:44:19 2022-09-27 14:44:19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의 막말 논란에 강경 대응을 택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지난 26일 출근길에 "진상이 더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고 언급한 후 대통령실 기류는 더욱 강경 기조로 흐르고 있다. 다만 대통령실은 직접적인 법적 대응을 하지 않겠단 방침이다. 진상규명이 필요하지만 대통령실이 법적 분쟁의 당사자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의힘 기초의원과 보수 시민단체 등이 전날 해당 영상을 자막과 함께 최초 보도한 MBC를 고발한 만큼 자연스럽게 관련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해 행사를 빠져 나가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해주면(줘서) 바이든(날리면)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통령실은 해당 발언 13시간 만에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으며, 욕설의 대상도 미국 의회가 아닌 우리 국회(야당)를 가리킨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영상에 자막을 달아 최초 보도한 MBC가 허위보도를 했다는 게 대통령실 주장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바이든은 아닌 게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27일 한 라디오에서 "전문가도 특정할 수 없는 단어를 일부 언론에서 (바이든으로) 특정하고, 누가 보더라도 동맹관계를 훼손하고 동맹을 마치 조롱하는 듯한 그런 뉘앙스의 문장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외신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고 유감을 표했다. 대통령실 대변인이 라디오에 나온 것은 윤석열정부 들어 처음으로 해당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속내가 담긴 것으로 풀이됐다.
 
이 부대변인은 "저희가 바이든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과정을 거쳤다"며 "반대로 얘기해서 언론도 그 단어가 어떤 단어인지를 확정해나가는 과정이 있었다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이어 "그런 과정이 없이 저희들에 확인도 없이 대통령의 발언이 기정사실화돼 자막화 되고 그것이 무한 반복됐다, 이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순방외교의 현장에서 윤 대통령이 우리의 최우방 동맹국(미국)을 폄훼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기정사실화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국회(야당)를 지칭하면서 '이XX'라는 비속어를 썼는지에 대해선 "저희가 문제 제기하고 심각성을 갖고 있는 건 비속어 논란이 아니다"며 즉답을 피했다. '바이든' 발언의 진위 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허위 보도,  오보라는 프레임으로 맞대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 막말 논란에 "본질은 비속어 논란이 아닌 동맹국 폄훼"라는 기조로 방향을 잡았지만, 언론과 척을 지는 상황이 연출되는 점은 내부적으로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해명을 내놓을수록 논란이 커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당초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막말 논란이 보도된 후 13시간 만에 김은혜 홍보수석이 뉴욕 현지 브리핑에서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었다고 언급하면서 "(글로벌 공여 관련) 예산심의권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민주당)이 국제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책임 이행을 거부하면 나라의 면이 서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이라며 명확하게 민주당을 지목한 바 있다. 
 
하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야당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기억한다. 우리 국회를 상대로 한 것이냐고 물었고, 그렇게 답했다"고 다른 말을 했다. 그렇게 되면 여당인 국민의힘도 '이 XX들'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이 관계자는 "특정 단어로 알려지고 그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까운 순방 기간에 13시간을 허비한 것"이라며 도리어 언론 탓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이 유감 표명 대신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자, 여당도 보폭을 맞추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이번 대통령 해외 순방 자막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해외 순방 자막 사건'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선 "(윤 대통령의) 정확한 워딩이 무엇인지 전문가들끼리도 음향분석에서 드러나지 않는데 단정적으로 자막을 입혔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한미동맹이 관련되고 워낙 예민한 문제들인데 그것이 언론, 방송 보도가 지켜야 할 기본 원칙들 지키지 않은 것"이라며 "지금까지 MBC 보도 행태에 비춰보면 공정한 자세를 갖고 만든 뉴스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실 측이) 보도 자제를 부탁하고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음에도 단정적인 자막을 붙인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치 자신들의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악의 축'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적었다. 권성동 의원도 "'MBC 자막 조작사건'의 본질은 광우병 사태처럼 MBC가 조작하고 민주당이 선동해 정권을 위기에 몰아넣으려는 시도"라고 했다. 
 
사실 관계가 밝혀진 후 윤 대통령이 해당 논란에 사과를 해야 한다는 여당 일각의 의견도 나온다. 이용호 의원은 "발언에 대한 진상파악이 있고 나서는 어떤 형태로든 비속어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은 필요하다"고 했고, 김행 비대위원은 "대통령께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건 국민과 야당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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