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브로커’, 일본에서 일본영화로 탄생했다면…
정서적 ‘부정교합’, 일본인 연출자+한국인 배우…대사로 감정 통제 ‘문제’
‘유사 가족’ 고레에다 감독 세계관 연장선...칸의 선택 vs 관객 평가 ‘궁금’
2022-06-03 01:00:01 2022-06-03 01: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정서란 게 있다. 그건 하나의 문화를 넘어선 삶 자체다. 동양과 서양으로 나뉘는 문화권에 대한 경계선이 아니다. 정서는 이해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해했다고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의 무엇도 아니다. 애초에 무리였을지 모른다. 사실 이건 무리가 아니라 불가능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물론 이 상 하나가 그의 영화적 세계관을 대표하고 설명하는 아이콘은 절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통해 꾸준히 관계의 형성과 그 과정을 통해 그려지는 가족이란 의미에 대해 심도 있는 천착의 과정을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소비해 왔다. 그 과정이 상당히 사실적이고 또 관찰자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건조한 시선을 늘 유지해왔다. 그 세계에서 그는 언제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 너무 가깝지도 또 너무 멀지도 않은 딱 적당한 거리를 기가 막힐 정도로 잡아냈던 연출자였다. 그 지점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란 감독의 힘을 대변하는 키워드였다.
 
 
 
이런 점을 기본 전제와 베이스로 시작한다면 브로커는 고레에다 필모그래피에서 둘도 없는 패착이라고 밖엔 달리 설명할 키워드가 떠오르지 않는다. 냉정할 정도로 인물의 감정에 거리감을 두던 그의 모습은 극단적으로 얄팍한 대사의 직유로 감정을 대체하는 방식을 택한다. 사건을 중심에 두고 모든 인물들이 감정과 사건을 바라본다. 그들은 관객들에게 기승전결을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관객들의 보고 느끼고 즐길 권리를 빼앗는 기분마저 든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대사는 감동이라기 보단 앞서 설명한 관객의 권리를 침해하는 최악의 선택일 뿐이다. 관객의 탐미적 음미를 소멸시키는 아마추어적 선택이다. 이런 방식이 산발적으로 등장한다. 때문에 배우들은 상대와의 호흡보단 각자 스스로의 호흡으로만 얘기를 끌어 간다. ‘주고 받음의 묘미가 이 영화 속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불협화음을 얘기할 때 브로커속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오롯이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영화 '브로커' 스틸. 사진=CJ ENM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 필모그래피 세계관 연장선이다. 유사 가족에 대한 얘기. 하지만 앞서 설명한 정서의 부정교합은 엇박자로서 이 영화의 동력을 흐트러트린다. 영화 시작은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이를 베이비 박스 앞에 두고 간 소영(이지은)의 모습. 이후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단체의 직원 동수(강동원)는 자신의 파트너 상현(송강호)과 함께 이 아이를 살 구매자를 물색한다. 하지만 문제가 터졌다. 소영이 마음을 바꿔 베이비 박스로 찾아왔다. 버린 아이를 다시 데려가겠단다. 결국 동수와 상현이 아이를 팔아 넘기는 불법 브로커란 사실이 소영에게 들통난다.
 
영화 '브로커' 스틸. 사진=CJ ENM
 
상현과 동수는 소영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처지임을 감안, 돈도 벌 수 있고 아이가 좋은 환경에 입양될 수 있는 기회라 설득한다. 결국 소영도 두 사람 제안에 동의한다. 단 아이 거래 현장에 자신도 동행한단 조건. 하지만 현장에서 소영의 아이 우성은 철저하게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 당한다. 그렇게 구매자들과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 이들은 동수가 어린 시절 자란 보육원에 잠시 들렀다가 초등학생 해진까지 합류한다. 이제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누가 봐도 온전한 가족이다. 물론 진짜 가족은 아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다.
 
영화 '브로커' 스틸. 사진=CJ ENM
 
그리고 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하는 인물 수진(배두나).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소속 형사. 후배 이 형사(이주영)와 함께 상현과 동수를 쫓는다. 두 사람이 인신매매를 한단 첩보를 입수, 현장을 덮치기 위함이다. 하지만 두 사람도 기분이 묘해진다. 아이를 팔기 위해 여러 부부들을 만나고 다니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지점을 느끼게 된다
 
영화 '브로커' 스틸. 사진=CJ ENM
 
그런 감정적 동화는 상현과 동수도 마찬가지. 소영 그리고 그의 아이 우성과 함께 동행하면서 점차 이들 모자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이를 팔고 챙기는 중계 수수료 문제가 아니다. 상현도 동수도 각자에게 부족한 그것’,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느낀다. 이제 이들은 가족이 됐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을 팔아야 한다. 아이를 팔아야 한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브로커는 고레에다 감독 필모그래피의 연장선, ‘유사 가족’ 얘기에서 약간 더 나아간다. 현대 사회가 생명을 바라보는 근원적 문제를 지적한다. 소영이 미혼모로 우성을 출산했다. 경찰 수진은 책임지지 못할 거면 낳지를 말았어야지라 그를 비난한다. 하지만 이 말의 전제는 이렇다. ‘태어나기 전 낙태를 했어야 했다면, 태어나기 전 죽이는 행위가 태어난 뒤 버리는 것보다 죄가 덜한 것인가라고.
 
영화 '브로커' 스틸. 사진=CJ ENM
 
브로커는 여기서 더 나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 듯했다. ‘생명은 소중하다란 이 간결한 명제를 위해 브로커는 어느 순간부터 작위적이고 편향적 방식으로 관객들의 정서를 몰아 붙인다. 명제 안에 스스로 갇혀 버린다.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브로커는 모든 감정을 관객들에게 대사로만 전달한다. ‘태어나줘 고맙다란 대사가 대표적이다. 이건 순전히 감독이 전하고픈 메시지를 위해 배우와 그들의 연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은 연출이 충분히 협의되지 못한 불협화음이다. 일본인 감독과 한국인 배우들의 정서적 교감은 분명 기승전결의 마침표를 찍을 순 없지만 어느 지점에서 타협이 이뤄졌어야 했다. 그게 없는 브로커는 상당히 나쁜 전례로 남게 될 듯하다.
 
영화 '브로커' 스틸. 사진=CJ ENM
 
언어를 통해 이뤄지는 소통은 정서가 기본이다. ‘브로커에는 감정은 넘치지만 정서는 조금도 느낄 수 없게 통제돼 있는 듯했다. 깊이감을 느낄 수 없는 대사들이 너무 많은 게 가장 큰 문제다. 감정을 넘어 정서가 없다. 그걸 연기가 아닌 대사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려 안간힘이다. 이 영화가 택한 이런 지점들이 대사를 통한 정서의 전달로 인해 벌어진 결과라면 그건 오롯이 일본인 연출자와 한국인 배우로 구성된 이 영화의 기본 전제 자체를 따지고 들어야 한다.
 
영화 '브로커' 스틸. 사진=CJ ENM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브로커의 각본까지 직접 썼다. 고레에다 감독이 왜 이 영화를 한국에서 한국인 배우들과 함께 찍었는지 의아하다.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칸 영화제의 선택이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해석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 시나리오가 한국에서 소비됐단 것은 브로커에겐 꽤 안타까운 결과라 그들도 확신했을 것이다. 오는 8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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