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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오마주’ 이정은, 좋아한 걸 계속하며 꿈을 꾼 지금
시나리오 읽고 단 20분 만에 출연 결정 이유…“공감대 형성 확신”
“‘끝까지 살아남아’란 대사, 과거 고 김영애 선생님이 해주신 조언”
2022-05-25 01:00:01 2022-05-25 01: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기생충이란 영화가 없었다면 도대체 이정은이란 배우를 우린 얻을 수 있었을까 싶다. 이정은은 기생충이전까지 여러 영화에서 단역급으로만 존재해 왔다. 하지만 말이 단역이지 그가 출연했던 영화에서 등장했던 장면을 보여주면 누구라도 이 장면! 기억난다!’라고 무릎을 치게 된다. 그건 쉽게 말하면 딱 두 가지 정도로 해석된다. ‘이정은이라서 그 장면을 그렇게 살려서 기억에 남게 만든 것이 하나, 그리고 이정은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기에 그 장면의 그 배역을 감독이 살려둔 것이 둘이다. 글쎄, 이런 해석 두 가지에 이견이 달릴 수 있을까 싶다. 그 당사자가 배우 이정은인데 말이다. 그가 출연하면 이젠 배역은 의미가 되고 스토리는 실재가 되니 말이다. ‘기생충을 떠올려보자. 봉준호 감독이 그를 캐스팅한 것이 어쩌면 기생충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이정은 외에 다른 배우가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 그건 기생충이 아니고 지금의 영광도 단언컨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기생충이후 출연을 결정한 다음 영화의 행보가 모조건 궁금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해 진다. 한 중년 여성 영화 감독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네마 여행을 그린 오마주’. 이정은의 행보와 어쩌면 그렇게 찰떡으로 달라 붙을 수 있을까 싶다.
 
배우 이정은. 사진=준필름
 
이정은은 신수원 감독이 연출하는 오마주시나리오를 건네 받고 읽은 뒤 딱 20분 만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보통의 상식과는 좀 많이 다른 결정 과정이다. 일부 배우들이 꽤 빨리 출연을 결정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직접 시나리오를 받고 읽은 뒤 20분 만에 출연을 결정했단 건 사실상 그 어떤 조건도 알아보지 않고 듣지도 않고 결정했단 얘기나 다름없었다.
 
영화 속 얘기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단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럼 내가 크게 고민하고 고심해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죠. 제안해 주신 분들을 위해 너무 시간을 끌면 오히려 민폐가 될 듯하겠다 싶었어요. 내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서 제가 빨리 결정을 한 거죠(웃음). 근데 사실 이번에는 특히 더 빨랐어요.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으니까요(웃음)”
 
연출을 맡은 신수원 감독의 자전적 정서가 많이 투여된 스토리가 바로 오마주이기도 하다. 신 감독은 충무로에서 몇 안 되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실력파 연출자다. 해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 받는 탄탄한 연출력은 으뜸이다. 신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에서 신 감독의 자전적 정서가 투여된 스토리와 캐릭터를 연기하는 입장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을 듯 싶었다.
 
배우 이정은. 사진=준필름
 
보통 사투리가 필요하거나 자료들이 많이 있는 작품이라면 조사도 하고 탐구도 하는 편이에요. 근데 이번에는 영화 감독이고 그 사람이 가정과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대한 얘기라 나 자신과 감독님을 반반 섞어서 만들어 봤다고 해야 할까. 온전히 신 감독님을 모델로 하진 않았어요. 꿈을 꾸는 여성의 모습이라고 하셔서, 영화를 처음 배우는 영화학도 느낌을 유지했고 감독님도 원하셨죠. 나중에는 감독님이 외모가 나랑 너무 똑같아 지는 것 아니냐고 놀리기도 하셨어요.”
 
극중 이정은이 연기한 지완여성이 영화를 하기에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1세대 여성 영화인 선배에게 하는 말은 꽤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때보단 많이 나아졌죠라는 대사. 꽤 오랜 시간 동안 무명으로 활동했지만 기생충한 편으로 스타급 배우로 우뚝 선 이정은이다. 그리고 단독 주연으로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나도 주인공을 하는 시대인데 너무 좋아진 것 아닌가라고 웃는다.
 
내가 주인공을 할 정도인데 예전보다 진짜 여성 영화인들에게 많이 나아진 세월이죠(웃음). 여성 영화인들도 꽤 많아지기도 했잖아요. 정말 예전 1세대 시절에는 한 분 계시면 그 분이 돌아가셔야 또 나올까 말까 했었죠. 지금은 고민을 털어 놓을 선배들도 너무 많고. 요즘에는 여성이 담배 피운다고 영화 속 장면을 검열하지 않잖아요. 편집도 안하고(웃음). 그런 세월이 있었다고 하네요. 하하하.”
 
배우 이정은. 사진=준필름
 
극중 지완의 아들이 제발 영화 좀 그만하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성공하지 못한 영화 감독에 대한 가족의 마음일 수도 있다. 이런 장면은 분명 이정은으로선 많은 공감이 됐을 듯싶었다. 오랜 시간 동안 무명으로 활동해 온 이정은에겐 많은 부분이 공감됐을 것 같았다. 한때 배우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려 했던 적은 없었을까 싶다.
 
글쎄요 난 한 번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내가 혼자 살고 있었으니 주변에서 누가 포기하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없었어요(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요. 누구도 지지해 주지 않으면 선택은 두 가지에요. 그냥 계속하던가 아니면 그만하던가. 전 그때 계속 하는 걸 선택했고. 지금도 그러시고 예전에도 그랬지만 저희 어머니도 네 인생 네가 알아서 잘 해란 의견이세요(웃음)”
 
이정은은 과거 고 김영애와 함께 작품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고 김영애가 이정은에게 극중 등장했던 대사와 비슷한 조언을 해 준 적이 있었다고 밝힌다. 영화에서 이정은이 연기한 지완에게 편집기사가 끝까지 살아남아란 말을 한다. 이 대사는 굳이 오마주로만 한정 안 해도 많은 이들에게 큰 용기를 줄 수 있는 대사이기도 하다.
 
배우 이정은. 사진=준필름
 
예전 김영애 선생님과 같은 작품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 제가 선생님에게 공부를 더 해볼까요라고 조언을 구했더니 선생님이 그냥 계속 배우 해, 다음 작품 해라라고 하셨어요. 근데 그게 저한테는 유언이 되셨죠. 극중 편집기사의 대사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살아 남으란 게 1등이 되란 게 아니잖아요. 좋아하는 걸 계속해서 꿈꾸란 얘기니깐.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많이 뭉클해져요.”
 
앞서 첫 도입부에서 배역이 이정은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란 평가. 이건 오마주를 연출한 신수원 감독도 그리고 방송가의 히트 메이커로 통하는 노희경 작가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다. 신 감독은 이정은의 연기에 대해 친구에게 말을 걸 듯 한다라고 평가했다. 노 작가는 정은씨는 자연스러움을 연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라고 전한 적이 있었다고,.
 
배우 이정은. 사진=준필름
 
“감독님도 그러시고 작가님도 그러시고. 그 말씀에서 머리 한 대 맞은 느낌이었죠. 자연스러움은 연기가 아니라 그 상황에 놓이는 거잖아요. 연기를 할때면 항상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 믿고 연기를 하려고 노력해요. 칭찬이기도 하지만 저한테 뭔가 또 벗어나는 계기가 되는 조언들이셨어요. 정치가들도 어떤 경우에는 굉장히 연극 배우처럼 말을 할 때가 있잖아요. 배역에서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연기하려 노력 중입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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