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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잡힌 동물권②)민법98조 근거로 학대자가 또 동물 사육
동물보호법 개정안, 동물학대자 차단규정 없어
민법상 소유권 근거로 피해 동물 반환청구 가능
사법부 양형기준 높여도 '과거와의 형평성' 발목
"민법상 '동물은 생명' 규정 명시 외엔 답 없어"
2022-05-16 06:00:00 2022-05-16 06: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동물권 제고를 위한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은 그나마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동물학대 행위자가 동물을 다시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학대를 방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보호법 개정안의 보완과 더불어 민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로 동물권이 보다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내년 4월27일부터 시행되는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소유자의 사육·관리 또는 보호의무를 위반해 죽음에 이르는 행위를 학대로 명시 △민간동물보호시설 신고제 도입 △사육 포기 동물 지방자치단체 인수제도 마련 △동물실험시행기관에 실험동물 건강을 점검하는 전임수의사 배치 등이다. 맹견 사육에 관한 내용 등 일부는 그 다음해인 2024년 4월말부터 적용된다.
 
개정안은 반려동물에게 최소한의 사육공간이나 먹이를 제공하지 않는 등 사육·관리 의무를 어겨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동물학대 행위로 추가했다. 기존에는 직접 때리거나 괴롭히고 죽이는 등의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했지만 개정안은 학대 범위를 넓힌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구멍이 뚫려있다. 개정안에는 동물학대 행위자의 동물 사육을 금지하는 조항이 추가되지 않았다. 이는 동물권 관련 단체들이 꾸준히 주장한 내용이다. 동물학대자가 동물 학대로 처벌 받은 뒤에도 제재없이 동물을 다시 키울 수 있는 상황이다. 또 소유자가 동물학대자일지라도 격리 조치를 한 피학대 동물을 반환해달라고 요청하면 이를 막을 방안이 없다.
 
학대 행위자의 사육 금지 조항이 빠진 건 민법상 보장하는 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보호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학대 예방 등 정당한 목적이 있을 경우에는 소유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률사무소 율담의 권유림 변호사는 “동물보호법은 동물의 생명, 권리를 보장해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동물의 생명이나 온전한 건강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소유권이란 미명 아래 학대 행위자의 손에 방치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또 “소유권은 보장해야 하는 권리지만, 동물학대로 유죄판결을 받는 등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소유권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라고 덧붙였다.
 
동물보호법 위반에 관한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양형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판사에 따라서 형량이 제각각이고, 학대를 예방할 실효성 있는 처벌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양형기준이 없어 판사 재량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며 “양형기준을 설정할 때 과거 판결도 참고를 하지만 사회적인 법감정과 동물보호법이 강화되는 취지 등을 충분히 고려해 현실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람을 폭행할 경우 2년의 징역을 받을 수 있는데 동물을 학대 했다고 그 이상의 형을 선고할 수 있는지 딜레마가 있을 수는 있다”면서도 “동물도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인 만큼 이 같은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고 양형기준을 본격적으로 논의해볼 시점이 왔다”고 설명했다.
 
양형기준을 마련한다 해도 실효성 있는 처벌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견해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양형기준을 만들 때 앞선 판례를 참고하게 될 텐데, 실형이 나온 경우가 적은 만큼 양형기준을 설정해도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경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양형기준을 만든다 해도 과거 형량과의 형평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런 탓에 근본적으로는 민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 사법부 인식이 바뀔 수 있는 배경이 형성돼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법이 모든 법의 기본법인 만큼,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조항으로 사법부내 동물권 인식이 제고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의 한재언 변호사는 “처벌이 약한 과거 판례가 많은 상황에서 양형기준을 만들면 오히려 더 가벼운 처벌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민법 개정안이 통과돼 사법부 내에서도 동물권이 신장되고 전보다 무거운 처벌이 나온다면 양형기준을 만들 수 있는 기초적 토대가 다져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양형기준을 만들 때, 민간에서는 확보하기 어려운 처벌 판례를 사법부에서 정리해 동물단체, 동물권 관련 활동을 하는 법조인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양형기준 설정에 있어 동물보호단체 등 민간과 사회 일반의 통념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지난 1월 서울시내에 위치한 펫샵에서 동물들이 분양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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