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후 3당 합당을 발표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민주당의 검찰수사권 폐지법안(검수완박법) 강행 처리에 국민투표로 대응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도리어 다수당인 민주당의 힘만 재확인했을 정도로 여소야대 지형에서 국정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여소야대 정국에선 대통령이 몸 담은 행정부와 야당이 다수였던 국회와의 긴장관계로 인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거야의 협조 없이는 입법부터 시작해 모든 국정 운영을 제대로 꾸려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태우·김대중정부 당시에도 여소야대 국면의 돌파구 마련을 위한 '상상 그 이상의 일들'이 벌어졌다. 1987년 대선에서 승리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야당인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전체 의석이 여당인 민정당을 웃도는 상황에 직면한다. 여소야대가 되면서 야당 도움없이는 국정운영을 해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야3당이 연합해 국회에서 통합의료보험법을 통과시키자 노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적도 있다.
여소야대에서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고충을 절감한 노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이라는 묘안을 짜낸다.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와 손을 잡고 3당 합당을 통해 유례없는 거대 정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3당 합당으로 의석수가 218석이 되면서 헌정사상 가장 큰 보수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만들어진다.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96년 5월 25일 정부 여당의 인위적 '여소야대 조성'을 규탄하는 특별당보를 배포한 뒤 가두행보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DJP 연합으로 첫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정부도 여소야대 국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끄는 새천년민주당은 16대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더구나 김 전 대통령과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공동정부를 약속하고 대선에서 승리했던 터라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이 순순히 협조할리 만무했다. 이 때문에 김종필 총재는 6개월 동안 총리 서리로 지내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 타개를 위해 무소속과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썼다.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공동정부를 구성한 자민련을 원내 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해 민주당 의원 3명을 자민련에 입당시키는 '의원 꿔주기'라는 편법까지 불사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최근 여소야대의 힘을 피부로 확인하고 있다. 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은 거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당장에 한덕수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조차 제대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자료제출 부실을 문제 삼아 한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한 차례 미루면서 청문 절차가 법정시한을 넘기게 됐다. 한 후보자가 총리로 임명돼야 새 내각 후보자들에 대한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한 후보자부터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지면서 새 정부 초기 행정 공백 우려가 나온다.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정부조직 개편 등 각종 현안들이 줄줄이 여소야대라는 벽에 가로막힐 것이 뻔한 상황이다. 해답은 정계개편인데 이 또한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 이를 감안하면 결국 다가오는 6·1지방선거에서 압승해 민심을 국정운영 동력으로 삼고, 차기 총선 기대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사진=인수위 제공)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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