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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합 "영외에서의 동성군인 간 합의 성관계 '무죄'"
다수 "사적 공간·자발적 행위는 '군기' 침해 아냐"
반대 "자발적 합의라도 '군기'라는 사회 법익 침해"
헌재, 군형법 92조의6 위헌심사 중…과거 3차례 "합헌"
2022-04-21 16:12:25 2022-04-21 16:15:03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군형법에 따라 합의 하의 동성 군인 간 성관계까지 처벌하도록 하는 종래의 판례가 뒤집혔다. 합의 여부를 불문하고 처벌하도록 하는 군형법은 잘못됐단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1일 오후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기소된 군 간부 A씨와 상사 B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동성인 군인 사이의 성관계, 이와 유사한 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루어지는 등’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군형법 92조의6(추행)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13명 중 다수 의견을 낸 8명의 대법관은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추행의 의미)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며 “현행 규정의 보호법익에는 ‘군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전통적 보호법익과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두 가지 보호법익 중 어떤 것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까지 처벌대상으로 삼는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며 “이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봤다.
 
별개의견을 낸 안철상·이흥구 대법관은 “현행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 헌법 위반의 소지가 있고, 피고인들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 찬성한다”면서도 “현행 규정의 보호법익에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고, 상호 합의 여부를 현행 규정 적용의 소극적 요소 중 하나로 파악하는 것은 법률해석을 넘어서는 실질적 입법행위에 해당해 찬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다른 별개의견을 낸 김선수 대법관은 “두 사람이 상호 합의해 성적 행위를 한 경우에도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한다는 이유만으로 현행 규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해석은 문언해석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조재연·이동원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현행 규정이 행위의 강제성이나 시간과 장소 등에 관한 제한 없이 남성 군인들 사이의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처벌하는 규정이라고 봐야 하고, 구성요건을 제한해석 할 수 없다”며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라 이뤄진 성행위라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를 한 사람이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은 침해되는 것이므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다수의견의 해석은 현행 규정이 가지는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넘어 법원에 주어진 법률해석 권한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어서 동의할 수 없다”며 “대법원의 종전 해석은 타당하므로 별도의 입법조치가 없는 한 그대로 유지돼야 하고,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은 정당하므로 상고기각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시했다.
 
1962년 제정된 군형법의 92조는 계간 기타 추행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이후 군형법은 2009년과 2013년 개정됐다. 2013년 군형법이 개정되며 남성 간 성행위 표현은 ‘계간’에서 ‘항문성교’로 변경됐다.
 
그간 시민단체 등은 군형법 92조6 조항 폐지를 요구해왔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대법원 판결 직후 “성소수자 차별, 사생활 침해의 문제를 전면에서 다룬 새로운 판례”라며 “성관계의 주체가 성소수자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가 이들의 사생활을 처벌할 수 없다는 이번 대법원의 판단은 이 법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헌법재판소의 역할이 남아있다”며 “조속한 시일 내 위헌을 결정해 지금까지 부당한 차별로 전과자가 된 성소수자 군인들이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대법원 등 법원도 유사 사건으로 계류 중인 다른 ‘군형법 92조의6’ 사건들에 대해서도 즉시 무죄를 판결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단으로 해당 조항이 위헌 결정이 날지 주목된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이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현재 헌재에는 군형법 92조의6 관련 위헌법률심판사건 2건, 헌법소원이 10건 계류 중이다.
 
다만 2016년 결정에선 재판관 9명 중 4명이 “이 조항은 합의에 의한 음란 행위와 강제성이 가장 강한 폭행·협박에 의한 추행을 동일한 형벌 조항에서 동등하게 처벌토록 해 형벌체계상 용인될 수 없는 모순을 초래하고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들이 2019년 10월 1일 제71회 국군의 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차별국군' 선포 국제 행동의 날 기자회견을 하며 침묵 속에 복무 중인 군인들을 상징하는 X자 표시가 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들은 군형법 제92조의6이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의 위협으로 내몰고 있다며 이 조항의 폐지를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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