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그를 보면 ‘상전벽해’란 단어가 저절로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사실상 얼굴을 알린 ‘늑대소년’ 속 악역의 아우라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 이전 작품에선 또 어땠나. ‘국민 여동생’ 수지에게 못된 마음을 품는 대학 선배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다. 하지만 이후부턴 자신의 자리를 찾은 듯 장르적 스토리에 자신을 완벽하게 끼워 맞추며 연기적 색채와 배우적 존재감을 무한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앞선 두 작품에서의 악역스러운 모습이 온전한 밑바탕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존재감을 떠올리자면 이 배우는 분명 ‘상전벽해’가 오롯하게 들어 맞는단 것에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배우 유연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 그는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에서 할리우드 스타 올가 쿠릴렌코와 함께 미제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됐다. 형사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 아니 그는 진짜 경력 십 수년이 훌쩍 지난 형사 같다. 참고로 이번 영화는 한국 작품이 아닌 프랑스 작품이다. 하지만 촬영은 100프로 국내에서 이뤄졌다. 국내에서 촬영한 프랑스 영화 그리고 할리우드 여배우와의 호흡. 쉽게 경험해 보기 힘든 작품이다. 유연석과 이번 영화에 대해 나눈 대화는 이랬다.
배우 유연석.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국내 배우들에겐 결코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프랑스 자본이 투입된 프랑스 영화다. 하지만 제작진의 절반 이상과 배우들은 한국 배우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출연하게 된 여배우가 국내에서도 유명한 ‘007 본드걸’ 출신의 올가 쿠릴렌코다. 영화 내용은 오롯이 국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글로벌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단 매력은 상당히 끌리는 대목이다.
“출연 과정은 캐스팅 디렉터분을 통해 감독님을 만나고 서로 조율을 한 뒤 결정이 됐어요. 감독님 전작들도 봤죠. 국내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감독님은 아닌데 2006년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페이지 터너’를 보면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연출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배니싱: 미제사건’도 그런 스타일로 가는 듯해서 호감이 많았어요. 근데 실제 촬영 현장은 정말 에너지가 넘쳤어요. 촬영 감독님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정말 많이 뛰어 다니셨어요(웃음)”
배우 유연석.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배니싱: 미제사건’은 제목에서부터 한국산 범죄 장르 느낌이 물씬 풍긴다. 강렬한 사건과 수사 과정이 담긴 일종의 ‘아주 매운 맛’을 예상하게 한다. 하지만 감상하게 되면 되려 ‘순하디 순한 맛’의 당황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사건의 밀도나 결과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의 긴박함 등이 국내 장르 영화에 길들여 진 관객들에겐 낯선 수준이 아니라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유연석도 일부분 공감했다.
“뭐라고 표현해 드려야 할지 잠시 고민이 되는데. 낯선 모습도 많지만 익숙함도 꽤 많은 느낌이라고 말씀 드려야 할까요(웃음). 어느 부분에선 외국 영화 같지만 또 어떤 부분에선 한국영화처럼 보이는 느낌이 강했어요. 형사의 느낌도, 국내 장르영화라면 뭔가 일에 찌든 힘든 느낌의 모습이 많잖아요. 근데 저희 영화에선 되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으신 감독님 의도가 많았어요.”
배우 유연석.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그의 상대역인 올가 쿠릴렌코에 대한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국내에선 ‘007 본드걸’로 유명한 여배우다. 유연석은 영화 속 분량 가운데 거의 대부분을 올가 쿠릴렌코와 호흡했다. 할리우드 여배우와 함께 소감도 궁금했지만 우선 의사 소통이 현장에서 어떻게 됐는지가 가장 관건이다. 참고로 올가 쿠릴렌코는 영어와 프랑스어는 물론 러시아에도 능통하며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도 가능한 다국적 언어 능력자로 알려졌다.
“현장에선 영어 프랑스가 거의 혼용됐는데 주로 영어로 의사 소통이 이뤄졌어요. 극중에서도 영어를 주로 사용했죠. 영어와 프랑스어는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웃음). 특히 프랑스어 대사 같은 경우는 정말 잘 소화하고 싶었죠. 올가 쿠릴렌코 같은 경우 혼자 오셨는데 낯선 곳에서 잘 적응할까 싶었어요. 개인 스태프도 없이 왔는데 자가격리까지 하고 촬영에 임했죠. 정말 모든 걸 극복하고 우리 나라의 문화까지 느끼려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진짜 강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죠.”
배우 유연석.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한국을 배경으로 낯선 환경에서 본인에게도 낯선 얘기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드니 데르쿠르 감독에 대한 느낌도 궁금했다. 드니 데르쿠르 감독은 최소한의 스태프만 꾸린 채 국내에 들어와 한국인 스태프와 함께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 글로벌 프로젝트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유연석의 눈에는 생경한 광경이었단다. 거창한 느낌이라기 보단 너무 단촐해서 희한할 정도였다고.
“감독님이 굉장히 적은 인원만 함께 오셔서 오히려 많이 배웠어요. ‘이 정도 인원으로도 가능하구나’ 싶은 걸 알게 됐죠. 우선 감독님은 현장에서 모니터석에 거의 계시질 않으셨어요. 현장을 거의 항상 뛰어 다니셨어요. 가끔씩은 카메라 바로 옆에서 모니터와 디렉션을 주실 때도 있었고요. 촬영 전 감독님과 상의하고 촬영에 들어가고 모니터하고 또 상의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의외로 촬영 시간이 굉장히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어요.”
배우 유연석.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유연석은 ‘배니싱: 미제사건’을 통해 글로벌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해외 진출에 대한 욕구도 충족됐을 듯싶었다. 당연히 기회가 된다면 마다할 생각이 없단다. 지금은 무조건 경험을 더 쌓고 더 좋은 더 많은 무언가가 필요한 시기라고 의욕을 보였다. 세계적인 배우인 올가 쿠릴렌코와의 호흡도 그런 의욕을 더욱 자극시킨 모양이다. 앞으로 좀 더 많은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도전욕구가 이번 작품을 통해 충족됐다.
“영화 ‘새해전야’를 찍을 때도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그쪽 스태프분들이랑 함께 작업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많이 남아 있어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데 어떤 공통의 목표를 갖고 함께 일 할 때 느껴지는 에너지가 너무 좋아요. 그럴 때 동질감도 많이 느끼죠. 이번에도 프랑스 스태프와 우리 스태프가 함께 하면서 다른 언어 다른 스타일이 만나 발생하는 시너지를 많이 느꼈어요. 좀 더 큰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해보고 싶어요. 물론 지금은 정해진 것이나 계획은 없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