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건 두 가지다. 데뷔 이후 꽤 유의미한 작품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왔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다. 그 외의 이미지와 작품은 의미가 없단 얘기는 아니다. 먼저 첫 번째는 사실상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영화 ‘바람’이다. 그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필수 관람 영화다. 워낙 인기가 좋아 독립영화 흥행 역주행 신드롬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또 한 편은 안방극장에서 펼쳐진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일명 ‘응사’ 속 캐릭터 ‘쓰레기’다. 이름이 다소 거칠어서 문제일 뿐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로맨틱 가이로 등장했다. 앞서 ‘바람’에선 짱구라 불렸다. ‘응사’에선 ‘쓰레기’로 불렸고. 그만큼 그는 잘생기고 가슴 떨리게 하는 로맨스와는 사실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먼 배우였다. 그런데 그가 출연하면 묘하게 로맨틱한 감성을 자극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건 이 배우만의 고유한 힘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 ‘뜨거운 피’에서도 수컷들의 거친 삶의 경쟁이 불거지는 가운데 기묘한 로맨스의 힘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의 눈빛으로 보면 성별을 불구하고 묘한 감정에 휘둘릴 듯한 느낌이었다. 배우 정우와 영화 ‘뜨거운 피’의 만남이 만들어낸 시너지다.
배우 정우.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정우는 데뷔 이후 느와르 장르를 단 한 번도 소화해 본적이 없었다. 사실상 이런 소재는 충무로 상업영화 시장에선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2000년대 초반 조폭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후 소리 소문 없이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그래서 ‘뜨거운 피’에 대한 느낌이 어떨까 궁금했다. 정우도 그런 분위기를 모르지 않았다. 그는 이 영화 출연 선택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영화는 머리보단 가슴으로 선택한 작품입니다. 제가 느와르 경험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표현하면 어떤 느낌으로 어떻게 드러날지 저도 궁금했어요. 그리고 시나리오 읽기 전부터 주변에서 추천도 많이 받았어요. 제작사 대표님들 감독님들 제가 아는 영화인들 대부분이 정말 많은 칭찬을 하시던 시나리오였죠. 배경이 부산이라 제가 보여줬던 많은 캐릭터 중 일부와 겹쳐질까 걱정도 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배우 정우.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실제 부산 출신이고 여러 작품에서 걸죽한 부산 사투리를 자유롭게 구사한 정우는 이번 ‘뜨거운 피’가 자신에게 굉장히 유의미한 느낌처럼 다가왔다. 일종의 맞춤형 캐릭터로서 극중 등장하는 ‘희수’를 그리고 싶었다. 주인공 희수의 느낌에 따라서 작품 전체의 색깔과 흐름도 달라지는 구조이기에 정우는 심혈을 기울여서 ‘희수’란 인물을 구축해 나갔다. 제작진과 자신의 생각 차이의 접점을 찾는 데 주력했다.
“뭐랄까요. 일종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싶었어요. 그 차이에서 오는 어떤 느낌을 전달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그건 부산이란 공간이 주는 에너지와 그 공간에 있는 희수의 에너지가 충돌하는 느낌과도 같았어요. 일상적인 모습의 ‘희수’에서 괴물처럼 변해가는 ‘희수’사이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 제작진은 술 담배에 절어 있는 ‘희수’를 주문했는데 제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런 접점도 찾아가고 그랬죠.”
배우 정우.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희수’란 인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 그리고 연기의 필수 요소인 ‘사투리’ 여기에 장르적인 색채를 연기에 입히는 과정 등은 오롯이 정우 본인의 역량에 달렸다. 당연히 쉽지 않은 과정이고 일이지만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문제는 사실 다른 지점에 있었다. 문제라기 보단 정우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들어 했던 지점이다. 데뷔 이후 첫 메인 타이틀 롤을 맡은 작품이다. 그 중압감은 말로 표현이 안됐단다.
“주변에서 ‘그냥 편하게 해라’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엔 제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서 도저히 불가능했어요. 저희 영화가 적은 예산이 들어간 작품도 아니고, 촬영 중간에 투자 부분도 한 번 난항을 겪었던 적이 있었고. 그런 걸 다 알고 있으니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이 엄청났죠. 잘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욕이 너무 컸어요. 이 영화를 위해 달려 가는 분들 모두에게 ‘걱정 말아라’란 용기를 드리고 싶었거든요.”
배우 정우.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그런 점은 영화 속 ‘희수’의 감성과는 상당히 닮아 있는 듯 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자신의 객기만 믿고 날뛰는 풋내기 20대의 건달 모습이 아니었듯이, 지금의 정우도 의욕만 앞서던 20대 초반 무명 시절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터뷰를 하는 얼굴도 예전 ‘바람’ 속 짱구도 당연히 아니고 ‘응사’의 ‘쓰레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어느덧 온전히 완벽하게 남자로 나아가는 모습이 보여 있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 감사 드려요(웃음). 이 작품을 통해서 질문을 받으면 꼭 20대의 정우와 40대의 정우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전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20대에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렸던 거 같아요. 물불 안 가렸죠. 그게 최고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러기엔 너무 많은 걸 알아 버린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지켜야 할 것들 그 중에는 가족도 생겼고. 그렇게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면서 뭔가 감성적인 차이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희수’가 더 많이 공감이 된 듯하고요.”
배우 정우.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그는 영화를 보실 예비 관객들이 ‘뜨거운 피’를 통해 부산 여행을 오게 되면 꼭 한 번 ‘구암’을 찾아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뜨거운 피’에 나오는 공간적 배경이 되는 ‘구암’. 원작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배경은 ‘구암’이다. 부산의 한 작은 항구 마을 정도다. 묘한 정취가 느껴지고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공간처럼 다가온다. 실제 부산 출신이니 ‘구암’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우선 그곳을 가봤는지도 궁금했다.
“(웃음) 영화를 보시면 ‘구암’이 진짜 궁금하시긴 할 겁니다. 그런데 ‘구암’은 실제 존재하는 곳은 아니에요. 원작 소설을 쓰신 작가님이 만드신 가상의 공간이에요. 뭐 근데 부산에 오시면 광안리 해운대 태종대 등 익히 알려진 곳 말고도 영화나 소설 속 ‘구암’처럼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변이 정말 많아요. 영화에 등장하는 ‘구암’은 저희 미술팀이나 연출팀이 문질러서 만든 공간이 아닌 실제 그 모습 그대로에요. 그렇게 숨은 해변들이 정말 많습니다. 정말 그런 곳에서 ‘뜨거운 피’ 같은 얘기가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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