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이 정확히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의 피말리는 승부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권자들은 하나같이 "찍을 후보가 없다"며 역대 최악의 대선이라고 한숨을 내쉰다. 각종 의혹과 비방이 난무하고, 견고해진 진영논리는 상대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들떠야 할 대선이 되레 국민들 걱정 속에 정치 혐오로까지 비화되는 흐름이다. 이래서는 또 다시 분열과 갈등만 반복될 뿐이다. 걱정과 한숨으로 가득한 민심을 살폈다. 전국을 서울·경기·인천(수도권), 부산·울산·경남(PK), 대구·경북(TK), 광주·전남·전북(호남), 충남·충북·세종(충청), 강원 등 6개 권역으로 나누고 지난 27일과 28일, 주말 이틀 동안 지역별 민심을 쫓았다. (편집자)
[서울·경기·인천=뉴스토마토 민영빈 기자] "이재명과 윤석열, 둘 다 별로입니다. 굳이 뽑아야 한다면 이 사람이 안 돼야 하니까 그 반대에 있는 사람을 찍겠다는 거죠."
정년퇴직 후 경기도에서 택시기사로 일한 지 6년가량 됐다는 최모씨(67·남성)는 누구를 뽑아야 할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했다. 최씨는 대통령 선거가 10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승객들과 간간히 대선 이야기도 하는데 "다들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제가 택시일 하면서 두 번째 대선을 치르는 건데 손님들도 저랑 다를 게 하나 없어요. 다들 정권은 교체해야 한다는데, 누굴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죠. 그래서 이 사람만은 절대 안 된다, 이걸 투표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도 몰라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 간 서울·경기·인천 일대를 돌아보면서 시민들의 대선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경기도의 한 번화가에서 카페를 운영한다는 자영업자 강모씨(40대·남성)에게 '이번 대선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있냐'고 묻자, 그는 "이재명·윤석열, 둘 다 별로입니다. 두 후보 모두에게 나대지 말라고 하고 싶을 정도"라며 혀를 끌끌 찼다.
취업준비생인 김모씨(28·남성)도 "아직 대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거 아닌가요? 누굴 뽑겠다는 건 못 정했어요"라면서도 "이재명 후보는 포퓰리즘성 정책도 남발하고, 살인자 조카 변호 건도 그렇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요. 윤석열 후보도 말을 할 때마다 논란이 되니까 좀 그렇더라구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비호감이라는 답은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이어졌다. 세일기간이라 마트에 장을 보러 왔다는 경기도민 이모씨(50대·여성)는 "찍을 만한 후보가 없어서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차라리 기권표"라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바라는 게 있냐'는 질문에는 "바라면 뭐해요? 어차피 다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하는데"라고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경기도의 한 제약회사에서 근무 중인 직장인 장모씨(30·남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홍준표 후보가 됐으면 했습니다. 이재명·윤석열 둘 다 대통령하면 안 됩니다"라며 "이재명은 위선과 부패한 좌파정권의 다음 적임자고, 전과 4범입니다. 윤석열은 이번 경선 토론에서 무지함을 드러냈고, 정치 경력도 4달 밖에 안 되는데 누굴 뽑습니까"라고 비토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사회 초년생 김모씨(26·여성)도 뽑을 사람이 없다는 말에 동의했다. 김씨는 "윤석열·이재명, 둘 다 별로라서 굳이 뽑을 거면 공약을 보고 뽑을 생각입니다"라면서 두 사람에 선뜻 마음을 주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게이트부터 얽힌 게 너무 많고, 시를 운영하는 거랑 나라를 운영하는 건 너무 다른데 기본 시리즈를 보면 5년 이후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라며 "윤석열 후보는 검사랑 국정운영은 다른데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부인이랑 장모 의혹이 터지는 걸 보니까 최순실은 약과인 것처럼 보였다. 주변 인물들에게도 잘 휘둘릴 것 같아서 나라를 잘 이끌고 갈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강남 코엑스 주변 일대/뉴스토마토
"이재명이 걸어온 길 믿는다" vs "정권교체는 무조건 윤석열"
대통령감이 없다는 공감대가 넓게 퍼진 가운데 지지 후보를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경기도의 한 대학원에 재학 중이라는 이모씨(29·여성)는 "솔직히 이재명과 윤석열 모두 별로지만, 경기도에 거주하면서 이재명 후보의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정책들을 봐와서인지 재원 감당은 조금 걸리지만 정치경험도 없는 윤석열보다는 지자체 운영 경험이라도 있는 이재명을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IT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직장인 심모씨(29·여성)는 "지금 기준이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고르는 것 아니냐. 이마저도 잘 모르겠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후보들 뿐이라 진짜 꼴 보기 싫다"면서도 "그나마 코로나 상황에서 행동력 있게 이끌어가는 건 이재명일 것 같다. 다만 기본소득이나 정책들이 전부 국민 세금으로 하는 건데, 대통령 끝나고 나면 전 국민이 빚쟁이가 돼 있을까 걱정은 된다"고 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장모씨(31·남성)도 이 후보의 실행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슬로건이 '이재명은 합니다'이던데, 그동안 봐온 이재명이라면 무엇이든 진짜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은 강했다. 이로 인해 윤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기류도 컸다. 서울의 한 IT기업에 근무한다는 직장인 문모씨(29·여성)는 지지 후보를 묻자, 망설임도 없이 "윤석열"이라고 답했다. 문씨는 "정권이 바뀌어야 하는데 윤석열"이라며 "중도 우파까지 포섭하기에도 윤석열이 대세"라고 이유를 댔다. 그는 특히 "정권이 제발 바뀌어서 취업시장도 활성화되고 저도 이직을 좀 편하게 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 한국 노동시장은 정말 쓰레기"라고 한탄했다.
휴일이라 딸과 함께 코엑스몰로 쇼핑하러 왔다는 권모씨(50대·여성)도 윤 후보를 지지했다. 그는 "현 정부와 관련된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적임자가 윤석열"이라며 "시장경제가 활성화되고 청년들 일자리도 증대됐으면 한다. 또 부동산시장도 안정화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서울 광장시장 주변 일대/뉴스토마토
"이 사람만 아니면 된다"…대척점으로 향하는 표심
이 사람만큼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대척점에 서 있는 경쟁후보를 찍겠다는 흐름도 강했다. 인천에서 통·번역 일을 하고 있다는 프리랜서 정모씨(40대·여성)는 "국민의힘 너무 싫어요. 윤석열이 안 됐으면 합니다"라며 "제가 지지하는 당이 됐으면 해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합니다"라고 말했다.
주말을 틈타 광장시장에서 친구들과 한 잔 했다는 서울시민 전모씨(35·남성)는 "홍준표가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후보가 되지 못했다. 떨떠름하지만 윤석열로 정했다"며 "그래도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이재명·심상정 후보를 향해 "두 사람은 절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이재명은 문재인의 매운맛이고, 심상정은 '페미니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 역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성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인천에서 경기도로 통학 중이라는 대학원생 차모씨(30·남성)도 이 후보의 대항마로 윤 후보가 제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윤 후보를 뽑을 생각인데 다른 거 없어요. 이 후보가 안 됐으면 해서요"라며 "개인적으로는 안철수랑 윤석열 단일화가 잘 해결돼서 정권교체까지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의 부평문화거리 주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홍모씨(25·남성)는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 정치신인이라 이념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정치인은 지지자의 의견을 투영해 정치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라며 "이재명만큼은 (대통령이)되지 않았으면 좋다. 개인사는 뒤로 하더라도 국토보유세 주장부터 여러 분야에서 정책적으로 내놓은 공약들이 기업과 개인의 활동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고 이 후보를 강하게 비토했다.
인천에서 작은 악기 가게를 하고 있다는 김모씨(60·남성)도 정권교체에 방점을 찍고 투표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솔직히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지만 정권은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쪽에 투표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이 후보는 자기의 유불리에 따라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 진실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인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부연했다.
인천 부평문화의 거리 주변 일대/뉴스토마토
서울·경기·인천=민영빈 기자 0empt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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