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국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는 6대 제임스 본드다. 5대 ‘제임스 본드’ 피어스 브로스넌 이후 차기 제임스 본드로 낙점됐을 때 전 세계 ‘007 마니아’들은 경악했다. ‘금발의 제임스 본드는 있을 수 없다’며 그를 반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니엘 크레이그는 앞선 선배 제임스 본드 모두를 제치고 역대 최장수 제임스 본드로 남게 됐다. 앞으로 이어질 7대와 8대 그 이후를 감안해도 다니엘 크레이그의 기록을 넘어서긴 힘들어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몇 차례 개봉이 연기됐고, 세대 교체 이후 하나의 큰 줄기로 이어져 간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은 그 어떤 선배 ‘007 시리즈’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은 히어로 장르 기본 골격인 ‘히어로 vs 빌런’ 구도가 명확했다. 특히나 앞선 ‘선배 007’과 달리 출연작 시리즈 4편 모두가 비밀 조직 ‘스펙터’에 대한 얘기로 꾸며졌다. 다니엘 크레이그 마지막 ‘제임스 본드’이자 그에게 최장수 최다 007 출연작 타이틀을 안겨 준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앞선 4편의 ‘다니엘 크레이그 007’을 마무리하는 여정의 마침표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007 골수 마니아’라면 단 번에 눈치 챌 만한 레퍼런스의 주요 포인트를 끌어 왔다. ‘007’ 역사상 단 한 편으로 끝난 2대 제임스 본드 ‘조지 라젠비’ 주연 ‘007 여왕폐하대작전’을 떠올리게 한다. ‘여왕폐하대작전’에 등장한 바 있는 ‘제임스 본드’와 본드걸 ‘트레이시’의 비극적 사랑 얘기를 끌어온다. 여기서 주목되는 지점이 ‘비극’이다.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출연작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이번 ‘노 타임 투 다이’를 끝으로 ‘제임스 본드’를 내려 놓는다. ‘노 타임 투 다이’ 결말도 사실상 결정된 상태에서 출발한다. 제임스 본드는 끝을 알고 있단 듯 더욱 거칠게 몰아 붙인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제임스 본드는 전작 ‘스펙터’에 등장한 ‘마들렌’(레아 세이두)과 함께 이탈리아를 찾는다. 두 사람은 자신이 속해 있던 그리고 관련됐던 조직을 잊고 여느 연인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즐기려 한다. 지금 연인 마들렌의 배려로 이탈리아에 묻혀 있는 그가 사랑했던 또 다른 연인 ‘베스퍼 린드’(에바 그린, 007 카지노 로얄 본드걸) 무덤을 찾는다. 그곳에서 제임스 본드는 의문의 테러를 당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의 공격을 받는다.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제임스 본드를 공격했던 한 남자는 마들렌이 스펙터와 관련된 인물이라 폭로한다. 제임스 본드 기억 속 악몽과도 같은 이름 ‘스펙터’다. 제임스 본드는 그들 공격을 간신히 피해 숙소로 돌아온다. 이제 눈앞에 있는 마들렌은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이 아니다. 하지만 제거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살릴 수도 없다. 제임스 본드는 자신의 행선지를 마들렌이 흘린 것이라 확신한다. 그는 자신과 잠깐 동안 사랑의 감정을 나눈 마들렌을 살려 보낸다. 그리고 이별을 선언한다. 다시는 볼 수 없다고.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이후 5년의 시간이 흐른다. 제임스 본드는 더 이상 ‘007’이 아니다. MI6는 비밀리에 준비했던 생체 무기가 ‘사핀’이란 인물에게 탈취 당한 것을 파악한다. 그리고 미국 CIA도 동시에 알게 된다. 제임스 본드의 오랜 친구이자 CIA소속 펠릭스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제임스 본드는 MI6를 찾아가 ‘M’을 다시 만나고 자신을 대신한 새로운 ‘007’도 알게 된다. M은 제임스 본드에게 사핀이 탈취한 무기 비밀을 숨기려 하고, 제임스 본드는 그 이면을 알고 싶어한다. MI6와 CIA 그리고 국제 외교 문제까지 얽히면서 사건은 점차 확대된다. 이런 과정 속 제임스 본드 기억에서 지워졌던 마들렌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일지 모를 마들렌의 딸이 사핀에게 납치된 사실까지 알게 된 제임스 본드다. 그는 MI6와 자신을 대신해 새로운 ‘007’로 등장한 후배 요원을 도와 사핀의 음모를 저지하려 나선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007 시리즈는 1대 제임스 본드 ‘고 숀 코네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무려 25편이 제작됐다. 이 가운데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이 될 ‘노 타임 투 다이’가 최장 러닝타임 이다. 무려 163분이다. 이게 이번 시리즈 뚜렷한 장점 중 하나다. ‘007’ 골수 마니아들조차 163분 러닝타임을 어떤 식으로 소화할지 상상력을 자극할 정도다. 우선 그 동안 보여줬던 ‘007’의 모든 것이 긴 러닝타임에 집대성돼 있다.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것의 ‘끝판’이 담겼다. 영화 시작과 함께 메인 타이틀 등장 전까지의 ‘오프닝 시퀀스’는 아이맥스 촬영 영상이다. 아이맥스가 전할 수 있는 시각과 화각의 극대화를 경험하게 된다. 오프닝 시퀀스는 그 어떤 작품의 아이맥스 촬영 분량을 통틀어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역대 어떤 ‘제임스 본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파쿠르 액션이 눈을 현란하게 만들고 머리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하지만 이런 장점은 확실한 단점도 안고 있다. 너무 긴 러닝타임이다.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다니엘 크레이그의 맨몸 액션으로만 담아내기엔 불가능하다. 얘기를 끌어가야 하고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며 인물과 인물 관계를 섞어야 한다. ‘007’은 기본적으로 스파이 장르다. 얽히고설킨 관계의 복잡성이 필수적이다. 러닝타임 절반 이상이 이런 부분에 할애돼 있다. 일반 상업 영화 한 편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관람 몰입도가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노 타임 투 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전작의 향수다. 앞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에게 비극적 사랑을 안겨 준 코드는 ‘여왕폐하대작전’을 떠올리게 한다. ‘역대 최강의 적’이란 수식어로 설명된 ‘사핀’은 ‘007’ 시리즈 첫 번째 영화 ‘살인면허’ 메인 빌런 ‘닥터 노’를 떠올린다. ‘사핀’의 본거지 역시 ‘살인면허’ 속 ‘닥터 노’ 은신처를 끌어온 느낌이다. ‘닥터 노’ 역시 스펙터 소속이며, ‘사핀’ 역시 스펙터 소속이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다니엘 크레이그 퇴장 그리고 그 퇴장을 그린 전작에 대한 오마주 등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이 만들어 낸 특유의 액티브한 면모를 퇴행 시킨 약점도 드러낸다. 역대 최악의 007로 기록될 피어스 브로스넌의 ‘007’ 시리즈가 그려냈던 풍모가 영화 하이라이트 속 침투 장면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시대를 역행한 듯한 감독의 ‘007’ 침투 시퀀스가 ‘007 마니아’들에겐 향수가 아닌 안타까움으로 기억될 듯하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예상대로 다니엘 크레이그는 ‘그렇게’ 퇴장한다. 이제 ‘007’ 시리즈는 7대 제임스 본드를 기다린다. ‘노 타임 투 다이’에선 다니엘 크레이그를 대신해 새로운 ‘007’이 등장했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여성이고 또 흑인이다. MI6 소속 새로운 ‘더블오세븐’(007)이다. 하지만 ‘007’ 판권을 보유한 브로콜리 가문 소속 제작자 바바라 브로콜리는 단언했다. ‘제임스 본드는 남자다. 그리고 백인이다’라고.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이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 낸 5편의 ‘007’은 역대 최고의 007 시리즈로 불러도 손색 없다. 그의 퇴장이 아쉽고 또 아쉬울 따름이다. 9월 29일 전 세계 최초 국내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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