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무비게이션)‘기적’ 같은 감동과 웃음과 재미
1988년 국내 최초 민자역-가장 작은역 경북 봉화 ‘양원역’ 모티브
‘간이역’ 얽힌 로맨스-도전-숨은 가족사, 감동-웃음 뒤섞은 ‘연출’
2021-09-06 01:23:00 2021-09-06 01:23: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담백함은 가장 순수함을 말할 수 있다. 별다른 양념 없이 그 본연의 맛을 낸단 얘기다. 때론 우린 이런 걸 두고 착함이라고도 한다. 영화란 매체 안에서 담백함순수함을 얘기할 때 착함이란 수식어를 끌어다 쓴다. 이 얘기가 착함의 기준으로 소화돼야 하는지는 오롯이 관객 선택일 뿐이다. 하지만 이 얘기를 착함이란 수식어 안에 가둬두기엔 그 안에 담긴 온기웃음의 값어치가 너무 쉽게 매도된 느낌이다. 이 영화는 굉장히 작은 얘기다. 이 영화는 굉장히 담백한 얘기다. 또 순수한 얘기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서 분명한 색과 결을 담았다. 그게 착함이란 단어 안에서만 소화된다면 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그 선입견이 가진 영화적 소비 방향성이 명확하게 한 길만을 타버린단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영화 기적은 그런 이유 또는 저런 이유로 볼 수도 있지만 의외로 웃음과 재미가 잔잔하게 배치된 늦여름 물놀이 같다. 미묘한 청량감마저 든다. 알 수 없는 집중도가 강하다. 유머 수위도 의외로 높다. ‘기적이 단순하게 착한영화로만 매도되는 게 안타깝단 이유다.
 
 
 
이 영화는 실화가 기반이다.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 위치한 양원역 1988년 지역 주민들이 지자체 지원 없이 직업 만든 국내 최초 민자역사이면서 가장 작은 간이역이다. 이 역이 들어서기 전까지 마을에는 변변한 도로조차 없었단다. 영화 속 등장처럼 철길을 따라 위험천만한 나들이를 해야만 했다고. 연출을 맡은 이장훈 감독은 양원역을 배경으로 기적을 창작했다. ‘기적양원역을 제외하면 이 감독이 만들어 낸 100% 창작 스토리다.
 
영화 '기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마을 주민 전체를 통틀어 봐야 20~3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산골. 이 마을에 사는 수학 천재 준경(박정민)은 편도 2시간이 걸리는 등교 길을 매일 겪는다. 학교로 가고 또 집으로 돌아오는 유일한 길은 위험천만한 기차길 뿐. 마을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준경은 청와대에 편지를 보낸다. 될지 안될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보낸다. 마을에 간이역 하나만 만들어 달란 소원을 대통령에게 부탁하기 위해서다.
 
영화 '기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런 준경의 묵묵함 그리고 천재적이지만 괴이한 아웃사이더 기질에 같은 반 라희(임윤아)는 한 눈에 반한다. 연신 준경 주위를 맴돌며 사랑의 화살을 날린다. 하지만 관심조차 없는 준경이다. 준경의 속내를 알기 위해 라희는 무리수를 둔다. 준경이 쓴 청와대 편지를 몰래 훔쳐 읽은 것. 화가 치민 준경이지만 라희는 이제야 답을 얻는다. 국회의원 아버지를 무기로 준경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처럼 호언장담한다. 그렇게 라희와 준경은 각자 목적을 위해 서로가 가까워지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간다.
 
영화 '기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준경 곁에는 그의 누나 보경(이수경) 그리고 아빠 태윤(이성민)이 있다. 공부 잘하는 누나는 대학 입시를 포기하고 동생 준경과 아버지 뒷바라지를 선택한다. 심성이 착하고 곱다. 너무 곱다. 반면 아버지 태윤은 누가 봐도 경상도 남자. 무뚝뚝하다 못해 남남 같다. 준경과 보경에게 살가운 시선 한 번 준 적 없다. 그래서일까. 준경도 마찬가지. 그런 준경을 나무라는 보경은 그나마 이 집안 쉼표다.
 
영화 '기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기적은 세 가지다. 준경을 중심으로 세 개의 맥이 흐른다. 하나는 그의 오랜 꿈인 간이역’. 준경은 보면 하고 답을 써내는 수학 천재다. 하지만 다른 쪽에선 완전 먹통. 그냥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다. 오롯이 간이역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 준경의 모습에 아버지 태윤이 달가워할 리 없다. 경상도 남자 두 사람. 이들 부자가 함께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도 답답할 정도다. 그나마 준경이 숨을 쉴 때는 누나 보경과 함께 있을 때 뿐. 보경은 어린 동생 준경이 안쓰럽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걱정이다. 어린 동생과 아버지 사이를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준경의 사생활에도 온통 관심투성이다. 이 지점은 기적이 단순하게 감동과 눈물의 포인트로만 흘러가는 걸 막는다.
 
영화 '기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또 하나가 바로 준경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맥, 라희다. ‘기적은 준경과 라희의 성장 드라마이며 청춘드라마이고 풋풋한 로맨스다. 황순원 소설 소나기 20세기 버전으로 각색한 듯하다. 시골소년 준경과 도심 소녀 라희의 관계성은 미묘하게 어긋나면서도 기이하게 합쳐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웃음을 끌어내고 공감을 만들면서 추억을 풍긴다. 극중 고교생인 두 소년 소녀 관계가 로맨스란 작법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오히려 코미디에 가깝게 그려진 점은 감독의 밸런스 조절이 만들어 낸 선택과 집중일 듯하다.
 
영화 '기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마지막 하나는 이 영화 핵심 스포일러다. 준경을 중심으로 한 뜻밖의 전개다. 준경이 그토록 간이역에 집착했던 이유. 그 이유가 드러나면서 우리가 보는 모든 장면의 실체가 고스란히 공개된다. 드러난 실체 이후 복기되는 장면의 연속은 감독이 기적의 플롯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만들고 직조해 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준경이 집착한 이유가 공개되면서 우리 눈을 속여 낸 기적의 진짜 기적이 드러나고, ‘기적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눈물 한 방울을 관객들에게서 가져간다.
 
영화 '기적'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2018지금 만나러 갑니다연출로 데뷔한 이장훈 감독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 얘기를 통해 오히려 더 특별함을 만들어 내는 색채의 온도를 짚어내는 감각이 탁월해 보인다. ‘기적은 특별하지 않게 감동적이면서도 웃음과 재미가 크다. 그래서 오히려 더 특별한 기적이다. 오는 15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