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 상생하라. 상생과 소통만이 살길이다.
입력 : 2021-09-03 06:00:00 수정 : 2021-09-03 06:00:00
사랑의 철학 찾아 헤맨 뭇 남성들의 가슴을 달궜던 전설적 애로영화가 있다. ‘엠마뉴엘’은 쌍팔년도 세대들이면 한번쯤 봤을 애로영화의 고전이다.
 
영원할 것만 같은 에로티시즘의 여신인 실비아 크리스텔은 향년 60세를 일기로 추억 속에 남았지만 엠마뉴엘의 주제곡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엠마뉴엘은 샹송 20선 안에 꼽히는 프랑스 싱어송라이터 피에르 바첼렛이 음악을 맡았다. 
 
피에르 바첼렛의 음악 중 프랑스 한 축구팀 응원가로 유명한 ‘Les Corons’는 프랑스 북부의 작은 광업도시를 대변하고 있다. 프랑스 광부들의 삶과 투쟁을 담은 이 노랫말 속에는 유독 ‘조레스’라는 가사가 눈에 들어온다.
 
정치인이자, 언론인이던 장 조레스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가장 중요한 사상으로 한 진보적 인문주의자다. 광산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대변하고 계급사회를 고발한 그는 ‘노동자 파업은 특권에 대한 저항’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노동자 파업’의 당위성을 일깨운 인물로 통한다.
 
노동계급의 의식과 성찰, 투쟁의 가치는 왜 노조가 필요한지를 말해준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인격적으로 대등해진 오늘날은 어떨까.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 보면,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평등권은 애석하게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땅콩 갑질 사건이 그랬고,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이 그랬다.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에는 늘 노동력이 필요하다. 갑을 간의 계약 관계를 맺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하지만 노사 간 불평 부당성은 어제 오늘만의 얘기가 아니다. 그래서 오래전 광부의 노조처럼 노동자들은 집단을 이뤄 단체구성권을 이룬다. 그래야 대등한 관계로 불평 부당성의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가 그랬다. 이들의 총파업 선언은 4차 대유행이 엄중한 상황에서 곱게 보지 않는 일각의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보건의료노조의 이익이 아닌 태부족한 의료 과부하의 현실을 벗기 위한 투쟁이다. 이는 환자의 권익 실현으로도 이어진다.
 
‘물류 대란’을 우려했던 HMM 노조의 파업도 노사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이 타결되면서 일단락된 분위기다. 그럼에도 씁쓸함은 남는다.
 
빚투·영끌 속에 시중은행·증권사들은 막전막후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데 수년간 임금 동결로 고통분담을 함께하며 노예처럼 땀 흘린 노동자들의 마음을 서운하게 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노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의 노사 간 문화는 주사파나 주적, 대립각을 세워야하는 긴장관계로 늘 시선이 곱지 않다.
 
때문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는 사측의 어긋난 행동과 태도로 강경 결의를 부추길 때가 있다. 과거 10년 전 한 인터뷰에서 ‘노조에게 한번은 양보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켰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진 아무개 사장이 떠오른다. 당시 노조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 협상은 결렬됐고 해당 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포스트 코로나시대가 얼마나 긴 터널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지금의 수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사와 노노간의 삐딱한 시선보다 ‘존중과 배려’만이 자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전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을 주창하던 장 조레스가 태어난 162년 전인 오늘, 대승적 차원의 결단을 내린 두 노조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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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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