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굉장히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방식을 꿰뚫고 나면 의외로 굉장히 단선적인 얘기다. 플롯 자체의 타임 라인이 뒤죽박죽으로 얽혀있고 ‘기억’을 소재로 했단 점에서 ‘레미니센스’는 타격감이 강력한 SF영화처럼 다가온다. 여기에 영화적 배경 자체가 암울한 미래 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땅이 물에 잠겼다. 땅은 부의 상징이 됐다. 부자들은 마른 땅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반면 가난할수록 물에 잠긴 곳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이제 한 가지다. 미래에 대한 암울한 기대치다.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갈 이유와 가치를 잃어버렸다. 엄청난 부를 소유했던,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이던 마찬가지다. 이제 세상은 망해간다.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했다. 그들은 찬란했던 과거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 그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기억은 ‘시간’이란 목걸이를 만들어 주는 하나의 구슬들이다. 그 구슬이 엮이고 엮여서 목걸이가 된다. 기억이 하나 둘 모이고 모여서 시간을 만들고 시간은 지금을 살아가는 삶을 영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게 ‘레미니센스’ 속 세계관이다.
주인공 닉(휴 잭맨)은 기억을 판매한다. 자신에게 찾아보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기억을, 그리고 떠올리고 싶은 기억, 때로는 그 사람의 망각 저편에 자리한 기억을 끄집어 내 현실로 만들어 준다. 범죄 수사에 사용됐던 기계를 이용해 닉과 그의 동료 와츠(텐디 뉴튼)는 사업을 한다. 그저 그렇게 영위하던 사업이다. 그리고 평소와 다르지 않던 어떤 날이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 싶다며 자신의 망각 저편 기억을 들여다 보고 싶다 찾아온 한 여자가 있다. 메이(레베카 퍼거슨)와 닉이 그렇게 만나게 된다.
닉은 자신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메이에게 순식간에 빠져 들었다. 그를 통해서 자신의 망각 속 저편에 존재했던 감정을 알게 된 듯싶을 정도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메이가 사라졌다. 어떤 메시지도 없었다.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닉은 기억 재생기 속에서 메이와의 추억만을 들여다 보고 또 경험한다. 점차 기억과 과거 현실을 잡아 먹어 버리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기억과 과거의 늪에 빠진 닉은 탈출구로 직접 메이를 찾아 나선다. 평생을 다른 사람의 기억과 과거만 들여다 보며 살던 닉은 본격적으로 진짜와 가짜 사이에 얽힌 자신의 기억과 과거의 실체를 하나 둘씩 마주하게 된다.
영화 '레미니센스' 스틸.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레미니센스’는 관람의 방법이 요구되는 영화다. 기억과 과거를 들춰내는 방식, 여기에 암울한 미래 세계관을 담아낸 디스토피아는 필연적으로 SF장르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관람을 예정하고 있다면 ‘레미니센스’는 다른 방식의 기대치를 요구한다. 장르적 색채보단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장치적 활용 방식을 따라가는 방법이다.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 물에 잠긴 미래 세계 배경의 스토리라면 강력한 타격감을 예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레미니센스’는 망각이 가져오는 미스터리 색채가 강한 플롯 중심이다. ‘기억’이란 조각이 만들어 가는 일종의 퍼즐 맞추기다. 닉이 바라보고 경험하는 ‘지금’이 ‘현재’인지 ‘과거’인지 혼재된 연출과 장면의 융합은 닉이 느끼는 혼동과 관객의 혼란이 합치되는 지점이다. 이건 아마도 감독이 타깃으로 삼은 ‘레미니센스’의 킬링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영화 '레미니센스' 스틸.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닉이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주변 인물들의 상황 그리고 그 인물들이 연계된 사연과 이유는 얘기를 구성시키는 요소요소를 하나 둘씩 수면 위로 끌어 올려준다. 대부분의 관객이라면 ‘레미니센스’의 이 부분이 상당히 불친절하게 다가올 듯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기억과 현실이 중첩되는 장면의 연속은 관객의 관람 시점을 뒤흔들고 스토리 전체의 몰입감을 끌어 내리는 약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점이 ‘레미니센스’ 연출의 묘미이자 키 포인트로 주목해 본다면 장점으로 전환될 요지가 높다.
영화 '레미니센스' 스틸.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모두가 과거에 집착하며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 만들어 낸 ‘진짜 디스토피아’의 민 낯도 ‘레미니센스’의 볼거리다. 다리를 잃은 상이 군인은 강아지와 힘차게 뛰어 놀던 시절만을 그리워하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내지 못한다. 사랑했던 연인과의 추억에 빠진 채 반복적으로 과거에만 집착하는 한 여성의 사연은 궁극적으로 이 영화의 메시지로 다가서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런 모두가 모여 든 망해 버린 세계의 공기는 미래가 아닌 과거의 기억 속에 갇힌 채 추억만을 곱씹는 역행의 사회적 시스템일 뿐이다. 자연 재해가 만들어 낸 암울한 세계가 아닌 ‘레미니센스’ 속 세계가 진짜 디스토피아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의외로 간결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영화 '레미니센스' 스틸.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레미니센스’는 닉에게 경고한다. 그 경고는 모두에게 마찬가지일 듯하다. 진실과 마주했을 때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영화 속에 등장한 ‘오르페우스 신화’가 닉의 선택과 마주보는 힌트가 된다. 그리고 닉의 마지막과 그의 곁을 지켜보던 와츠의 시선이 충돌하는 과정까지.
영화 '레미니센스' 스틸.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미스터리와 SF그리고 디스토피아가 결합된 꽤 매력적인 구성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 그리고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미드 ‘웨스트월드’ 세계관이 적절히 결합된 듯한 이질적이고 낯설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공기가 인상적이다. 연출을 맡은 리사 조이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 조나단 놀란의 아내다. 리사 조이는 남편 조나단 놀란과 함께 공동 감독 및 총괄 프로듀서로 ‘웨스트월드’를 만들었다. ‘레미니센스’가 낯설고도 낯이 익을 수 밖에 없던 이유다. 8월 25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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