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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팬데믹 탈주하는 인헤일러 “음악은 해독제”
“우리 음악 듣고 기쁨과 희망을 느낄 수 있길”
첫 데뷔 앨범 ‘It Won’t Always Be Like This‘ 인터뷰②
2021-08-20 00:00:00 2021-08-20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낮고 검은 땅’에서 콸콸 쏟아지는 루비색 ‘흑맥’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록 그룹 인헤일러(Inhaler)의 음악 말이다.
 
수직 상승하며 터져 오르는 악곡은 팬데믹으로 덮인 행성을 시원하게 탈주한다.
 
기타와 건반을 주무르며 빚어내는 청량한 멜로디, 드럼과 베이스를 타격하며 쌓아올리는 웅장한 리듬 세례, 공간계 잔향들의 몽환적 은하수...
 
U2, 코어스, 씬 리지, 데미안 라이스, 더블린 출신 수많은 음악가들의 감성과 자유분방함이 오르내린다.
 
이 아일랜드 록 신예는 지금 뜨겁다. 올해 7월 발표한 데뷔 앨범 ‘It Won't Always Be Like This’로 아일랜드 차트에 이어 영국 차트(UK 앨범 차트) 정상까지 밟은 뒤 유럽 전역으로 뻗어가고 있다. 총 11곡 중 6곡을 1년도 채 안 되는 락다운(도시 봉쇄) 기간의 영감으로 썼다. ‘팬데믹 이후 길을 잃어버린 이들이 다시 길을 찾는 여정’이 앨범 전반의 주제다.
 
클래식한 록의 전형을 유지하면서도 팝, 펑크(Funk), 사이키델릭 같은 다양한 질감의 소리들은 혼합 화학 작용처럼 뒤엉킨다. 이펙터 프로세서 ‘Volante’의 왜곡되고 몽롱한 톤의 공간계음들이 앨범 전체를 통일된 색감의 소리로 채색한다.
 
18일 더블린에 있는 인헤일러 멤버, 일라이 휴슨(기타·보컬), 로버트 키팅(베이스기타)와 e-메일로 만났다. 일라이는 세계 대중음악사에 획을 그은 록 그룹 U2 보노의 아들. [참고 기사, (권익도의 밴드유랑)U2 보노 아들이 주축, 아일랜드 록 밴드 인헤일러]
 
‘U2의 더블린’은 이들에게도 단순히 ‘낮고 검은 땅’이 아니다. 리버풀, 맨체스터 사운드에 선구적 영향을 미친 음악 도시는 이들이 갈망하던 감성, 자유의 다른 말이었다.
 
부드럽고 상쾌한 기네스 크림 같은 사운드가 달큰하게 세계를 적실 채비를 마친 듯했다.
 
밴드 인헤일러, 왼쪽부터 조쉬 젠킨슨(기타), 일라이 휴슨(기타, 보컬), 라이언 맥마혼(드럼), 로버트 키팅(베이스기타).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장난기 많은 더블린 청년들 “음악은 해독제”
 
-팬데믹으로 직접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요. 이번 인터뷰를 어떤 여행지에서 했다고 가정한다면 떠오르는 장소가 있나요.
 
일라이: 뉴욕 브루클린의 바 같은 곳이 아닐까 상상하게 되네요. 아일랜드 청년들로서, 우린 미국을 사랑해요. 본능적으로 이민 가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 정도로요! 2019년 봄쯤 뉴욕에서 공연했던 기억 아직도 생생해요.
 
-결성 비화가 더블린 배경의 청춘 음악영화 ‘싱 스트리트(Sing Street)’를 연상시켜요. 2012년 세인트앤드류대학 동창인 일라이와 로버트, 라이언 맥마혼(드럼)가 뭉쳤고 2015년 조쉬 젠킨슨(기타)가 들어오며 지금 진영이 갖춰졌고 봤습니다. 학창시절 서로를 어떤 사람들로 기억하고 있나요, 서로 연주에 대한 장점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지도요.
 
로버트: 조쉬는 다른 학교에 다녔었지만, 저도 그렇고 다른 멤버들도 모두 에너지랑 장난기가 넘쳤어요. 가능한 자주 학교를 땡땡이 치고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놀러 다니기를 좋아했으니까요. 당시 저랑 라이언, 일라이는 우리가 가진 열정에 비해 노력을 많이 했던 편은 아니라, 특유의 추진력이 있는 조쉬를 알게 되면서부터 실력이 늘었어요. 사실 개인의 장점을 따질 필요 없이, 우리 사이의 공통된 장점이 바로 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일라이: 당시 저희 모두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별의 별 음악을 다 시도해보고 싶어 했으니까요. 사실 여전히 똑같은데, 지금은 각자 악기를 좀 더 잘 다룰 뿐이에요! 시간이 지나더라도 이런 장난기는 간직하고 싶어요.
 
인헤일러 첫 데뷔 앨범 ‘It Won’t Always Be Like This’.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팀명 Inhaler는 어떤 이유로 짓게 됐나요.
 
로버트: 보컬 일라이가 사춘기 때 천식을 약하게 앓았어요. 마침 그때 우리가 밴드명을 못 정하고 고민하고 있었던 터라 주변 친구들이 우리를 ‘the INHALERS’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그 별명이 어느새 우리 밴드명으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우리에게 음악은 언제나 해독제(antidot)였어요. 음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조차 없어요.
 
-일라이의 아버지가 U2 보노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보노는 인헤일러를 결성한 당신의 결정을 찬성했었나요. 당신이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지금 보노는 어떻게 얘기를 해주나요.
 
일라이: 아버지는 언제나 응원해주셨던 동시에 회의적인 면도 많이 보이셨어요, 그리고 그러실 만한 이유들이 다 있었고요! 아버지한테 들은 조언 중 가장 와 닿은 말을 고르라면, 바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하다(words matter)’라는 조언이예요. 어떻게 보면 참 당연한 말인데, 그 말의 무게를 요즘 들어서야 실감하고 있어요.
 
-음악을 듣는 동안 멤버들 출생지인 더블린에서 태어난 수많은 음악가들(U2, 코어스, 씬 리지, 데미안 라이스)과 Sing street, Once 같은 음악 영화가 스쳐갔어요. 미국, 영국과는 또 다른 감성과 자유분방함, 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오랜 기간 식민지였던 한국과 비슷한 역사로 핍박과 분노 같은 정서들이 더블린 고유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나요.
 
일라이: 네, 어느 정도 동의해요. 아무래도 우리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아일랜드 역시 영국 문화의 영향 아래 억압당한 역사가 길어,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마음과 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우리가 평소 좋아하는 밴드 중에서도 맨체스터나 리버풀 출신들이 많은데, 두 도시 모두 아일랜드 영향을 많이 받은 곳들이예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틀스나 오아시스 같은 영국 밴드들도 돌이켜보면 아일랜드에서 유래된 경우가 많은데, 이거야말로 기네스 기록에 올라갈 만하지 않을까요!
 
밴드 인헤일러, 왼쪽부터 조쉬 젠킨슨(기타), 로버트 키팅(베이스기타), 일라이 휴슨(기타, 보컬), 라이언 맥마혼(드럼).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
 
“길 잃은 우리, 다시 길을 찾는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아티스트들이 집 같은 공간에서 수개월 칩거하며 곡을 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해요. 코로나 사태는 전 세계의 공연 활동을 중단시켰지만, 역설적으로 아티스트들의 창작열을 돋우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 앨범은 원래 기존 선공개곡, 라이브 음원으로 내려다가, 글로벌 팬데믹의 영향으로 신곡이 대거 포함됐다고 들었는데, 코로나 사태는 당신들의 새 앨범 창작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원래 이번 앨범은 2020년 8월에 나올 예정이었어요. 팬데믹의 영향으로 기존의 계획들이 많이 틀어질 수밖에 없었고 우리 역시 락다운 기간 동안 영감을 얻으려 노력하며 새로운 곡을 많이 썼어요. 이때 쓴 곡들은 “Who’s Your Money On”, “When It Breaks”, “Totally”, “Slide Out The Window”, “In My Sleep”, “Strange Time To Be Alive”이에요. 그 동안 새로운 음악을 하도 많이 써서 기존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앨범이 되어버렸지만, 덕분에 여러 개의 싱글을 모으기보다는 하나의 앨범을 제작한다는 느낌으로 작업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본격적으로 올해 7월 발매된 첫 데뷔 앨범 ‘It Won’t Always Be Like This‘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팬데믹 이후 길을 잃어버린 우리가 다시 길을 찾는 여정을 겪으며‘ 들으면 좋을 앨범이라고 봤어요. 앨범에서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일라이: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듣고 기쁨과 희망을 느낄 수 있길 바라요.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게 우리가 바랐던 전부입니다.
 
-곡 ‘Slide Out the Window’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후 어느 봄날, 창밖을 응시하다 썼다고요. ‘A Night on the Floor’는 락다운의 공포에 대한 이야기에 관한 곡이라 봤어요. 코로나 이후 주변 환경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 날카로워진 것 같은가요.
 
일라이: 우리의 시야가 확실히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좀 더 의심스러운 눈으로 유심히 보곤 해요. 코로나 사태 전에는 우리 모두 좀 더 내향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곡을 썼다면, 지금은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우리를 둘러싼 이 세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곡들을 쓰게 되었어요.
 
-앨범 첫 곡 ‘It Won’t Always Be Like This‘의 수직 상승하며 터져 오르는 악곡은 청량한 탄산수를 마시는 기분이에요.
 
일라이: 이 곡은 클래식한 ‘락밴드’ 공식으로 구성된 곡이에요. 우리 밴드가 가장 처음에 만든 곡이죠. 한 방에 다같이 모여 기타 두 대, 베이스 한 대, 드럼, 신디사이저를 가지고 연주하면서 썼어요. 청량한 탄산수라니 기분이 좋네요! 곡을 만들면서도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길 바랐어요.
 
-마지막 곡 ‘In My Sleep’에서는 아일랜드 전통 악기인 ‘일리언 파이프(uilleann)’를 사용했다고 봤어요. 이 악기 연주를 넣음으로써 얻고자 했던 효과는 무엇이었나요.
 
일라이: 마치 우리의 뿌리이자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이 곡을 통해서 우리 고향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기도 했고요. 씬 리지(Thin Lizzy)로부터 영감을 받기도 했죠.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힘든 시기를 관통하고 있어요. 작년부터 지금까지 이 전례 없는 시기 동안 당신들의 생각이나 신념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요.
 
일라이: 이 시기 동안 우리 모두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우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밴드를 결성한 사람들인데, 락다운(도시 봉쇄)이 실시되면서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조금 더 무겁게 바라보게 됐거든요. 이제 우리는 주변 환경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일상에 만연한 연약함에 주목하며, 밴드(뮤지션)라는 직업을 업으로 삼으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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