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그의 이름 석자가 들어가면 우선 ‘강하게’ ‘쎄고’ ‘보통은 아닐 것’ 같은 선입견이 사실 아직도 생긴다. 그런데 그렇게 그에게 전하면 그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의 출연 전체를 살펴보면 ‘강하고’ ‘쎈’ 작품은 사실 몇 편 안 된다. 그 몇 편 안 되는 작품이 그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를 정립해 버린 것도 있다. 그래서 억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적이고 또 보편적인 인물을 간혹 자신의 배우적 겉옷을 입혀 그려내기도 했다. 때로는 장르 영화 속 히어로에 가까운 캐릭터를 그려내며 관객들의 쾌감을 끌어 올렸다. 본인이 직접 연출을 맡은 작품에선 한 없이 지질한 모습으로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전달해 주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앞선 선입견은 그의 ‘진짜’를 몰라보는 무례일 수 있다. 배우 김윤석은 사실 정말 인간적이고 또 일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때 ‘정말’로 ‘진짜’가 나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영화 ‘완득이’ 속 선생님을 떠올리면 된다. ‘미성년’의 성장하지 못한 중년은 또 어떤가. ‘모가디슈’의 주 소말리아 대사 ‘한신성’은 그런 그의 ‘진짜’와 앞선 대중의 선입견이 어느 정도 타협을 통해 만들어 진 인물일 수도 있겠다.
배우 김윤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김윤석에겐 2018년 연출과 주연을 겸한 ‘미성년’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출연작이다. 그가 ‘모가디슈’를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다. 우선 연출을 맡은 류승완 감독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데뷔 27년 차이고 그 동안 숱한 감독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연출자들 속에 류승완 감독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배우라면 누구라도 꼭 함께 해보고 싶은 이름 중 ‘류승완’은 당연할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이랑 그렇게 인연이 안닿더라고요. 그러다 이 작품으로 닿았죠. 사실 ‘미성년’ 이후 다른 영화를 촬영 끝낸 작품이 있어요. 그 영화 촬영 끝나고 딱 이틀 뒤에 모로코로 끌려 갔다니까요(웃음). 1990년대 냉전 시대가 배경이지만 이념이 없는 영화더라고요. 그리고 영웅이 없어요. 만약 누군가 영웅이 등장하고 그랬다면 저 출연 안 했어요(웃음). 류 감독과 공통된 이 영화의 주제는 딱 하나 ‘생존’이었어요.”
사실 영화 현장이야 그에겐 특별할 게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류승완이란 감독은 정말 그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고 또 초심을 다잡게 하는 ‘동기’가 됐다고.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100%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모가디슈’ 촬영 현장은 사실상 불가능의 연속이었다. 그런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두지휘하는 것은 김윤석의 입을 빌리자면 ‘인간은 절대 못할 일의 연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걸 류승완 감독이 해내는 걸 고스란히 목격했다고.
배우 김윤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전 그 분이 신발을 안 벗고 자는 줄 알았어요(웃음). 류승완 감독은 24시간을 영화 현장 속에서 살고 있어요. ‘모가디슈’ 정도 규모의 해외 로케이션 영화는 현장에서 신경 쓸게 수천 가지가 넘어요. 그 모든 걸 직접 다 확인하고 점검을 해요. 그 모습을 보고 ‘책상에 앉아 영화 만드는 사람은 아니구나’란 걸 알게 됐죠. 그냥 타잔처럼 날라 다니는 사람이었어요. 존경스럽고 감동했죠.”
그 엄청난 현장에 얽힌 뒷얘기도 공개했다. 사실 그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었단다. 만들어 질 수 있는 영화적 여건이 절대 아니란 얘기다. 우선 영화적 배경은 소말리아다. 하지만 현재도 위험천만한 여행금지국가이기에 촬영은 모로코에서 했다. 문제는 모로코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와는 전혀 다른 나라였다고. 그 외에도 너무 많은 걸림돌이 존재해 보였단다.
“우선 소말리아는 완벽하게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계 흑인 분들이 사는 국가에요. 그런데 모로코는 전혀 달라요(웃음). 영화 속 등장하는 수백명의 흑인 보조 출연자를 도대체 어디서? 그런데 어마어마한 군중과 정부군 반군으로 등장하는 보조출연자 분들을 모두 촬영 몇 개월 전 오디션을 통해 준비를 마쳤더라고요. 현장에선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뭐 온갖 나라 언어가 난무했어요(웃음). 정말 난리였습니다.”
배우 김윤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김윤석은 자신이 연기한 ‘한신성’이란 인물에 묘한 애착을 드러냈다. 배우 활동 기간 동안 다양한 색깔과 상상 이상의 성격을 지닌 캐릭터를 모두 소화해 온 중견 배우다. 이번 ‘한신성’이란 인물에 대해 그는 ‘평범하고’ 또 어떤 면에선 ‘적당히 타협하고’ 때로는 ‘비열한’ 모습까지 보이는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단 사실에 매력을 느꼈단다. ‘히어로’같은 느낌이었다면 ‘출연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웃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진짜로 ‘한신성’이 어떤 영웅적인 활약을 하고 히어로적은 모습을 보였다면 저 안 했어요(웃음). 고위 공무원이기도 하죠. 그런데 소말리아 대사관에 와이프 포함해서 전부 6명이에요. 진짜 난감했을 거에요. 그 곳에서 살아 남아야 하니 우유부단한 것도 있고 때로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비겁하기도 하고. 하지만 살기 위해 난관을 뚫고 나갈 땐 진짜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점. 그 점이 절 ‘한신성’으로 끌어 들인 것 같아요.”
‘한신성’으로서 ‘모가디슈’에서 가장 많은 호흡을 맞춘 동료는 조인성과 허준호다. 조인성은 후배이면서도 꼭 한 번 함께 하고 싶었던 배우다. 영화 ‘비열한 거리’를 너무도 좋아한다는 김윤석은 조인성이 보여 준 담백한 연기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고. 나이차이는 몇 살 나지 않지만 ‘손위’ 선배인 허준호도 처음 만났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계기로 정말 오래오래 현장에서 만나길 바란단다.
배우 김윤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인성이하고는 모로코 떠나기 전 한 번 만나서 식사를 했어요. ‘비열한 거리’ 때 받은 감동이 ‘모가디슈’에서도 올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뭐 아니나 다를까 현장에서 배우 대 배우로서 정말 많은 것을 준 후배였어요. 인간 대 인간으로서도 계속 보고 싶은 후배죠. 허준호 선배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달리 현장에선 항상 웃고 계세요. 카메라 뒤에서 웃는 얼굴로 후배들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영락 없이 그 분의 아우라를 보게 됐죠. 정말 오랫동안 만나고 싶은 선배이고 동료에요.”
‘모가디슈’는 정말 한국영화로선 상당히 인상적이고 눈에 띄는 장면들을 스크린으로 끌어 낸 시도와 도전이 정말 많이 담겼다. 김윤석은 ‘코로나19’ 어려운 시기에 극장에 개봉하는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는 점에서도 동의하지만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또 힘든 시기에 ‘모가디슈’가 어떤 벽을 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배우 김윤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모두가 힘들죠. 하지만 극장은 반드시 살아난다고 봅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작품의 질은 더욱 더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모가디슈’를 아이맥스로 한 번 봤어요. 제가 출연한 영화이지만 그렇게 실감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극장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체험이 있었어요. 기회가 되신다면 꼭 체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올해 최고의 피서로 전 가장 안전한 공간인 극장을 추천 드리겠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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