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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유명무실 '분리 발주', 서울시는 "취지 좋다"며 확대
불법 하도급 예방, 하도급지킴이 역할이 더 커
'업역 칸막이 폐지'로 하도급 보호 의미도 퇴색
일부 하도급자들, 원도급자 상대 '역갑질' 악용
2021-07-01 06:00:00 2021-07-01 06:00:00
[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서울시가 역갑질 논란을 일으켰던 ‘주계약자 공동도급’을 확대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원도급사와 하도급사 간 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달청 '하도급지킴이'가 이미 가동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확대하는 것은 행정력 낭비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시는 시 예산이 들어가는 공공 공사에만 한정됐던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를 민간 공사에도 확대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주계약자 공동도급은 하도급지킴이 등 전자결제 시스템이 없던 시절인 2010년 원도급사가 하도급사를 상대로 공사 대금을 체불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탄생한 제도였다. 발주자인 서울시가 종합건설업체를 주계약자로, 전문건설업체를 부계약자로 '분리 발주'해 각각 대금을 직불하는 시스템이다.
 
2011~2020년 서울시 주계약자 공동도급제 추진 실적. 자료/서울시
 
대금 지급 투명성 살린 건 전자결제시스템
 
그러나 원도급사로 참여했던 종합건설업체들의 반발이 이어지며 이 제도는 10여년 간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다. <뉴스토마토>가 서울시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제도는 2010년 도입된 이후 2011년~2018년까지 이용률이 12~23%를 오가며 좀처럼 정착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보다 못한 서울시는 2019년 "공정한 하도급 문화정착을 위한 대책을 펴겠다"며 주계약자 공동도급을 확대했고 그 해 이 방식의 발주 비율은 44%로 뛰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서울시가 발주한 종합공사는 639건이었고 이 중 주계약자 공동도급으로 발주된 공사는 261건(41%)다. 주계약자와 부계약자의 공사 종류 구분이 어렵거나 하자 발생 시 책임소재를 나누기 힘든 경우를 빼고는 이 제도로 발주가 이뤄졌다.
 
그러나 정작 원도급과 하도급 간의 체불 문제를 개선하는 건 서울시가 2013년 1월 자체 프로그램으로 도입한 '대금e바로' 시스템이었다. 원도급자가 지급해야 할 하도급대금, 건설근로자 임금, 자재·장비대금을 자동으로 이체하고 지급일시, 금액 등 지급 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1일부터 대금e바로를 거쳐 이보다 성능이 개선된 조달청 '하도급지킴이'로 프로그램을 바꿨다.
 
서울시의 설명을 보더라도, 대금 결제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는 주계약자 공동도급이 그 기능을 십분 발휘한다. 그러나 하도급 지킴이를 사용하게 되면 발주자와 원도급간의 자금 거래 내역을 하도급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원도급이 발주자로부터 대금을 못 받았다는 이유로 하도급에게 지불을 미루는 행위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공사비 증액 여부도 하도급자가 확인할 수 있어 원도급사가 파산할 경우 하청도 파산하는 구조를 애초에 막을 수 있다.
 
그동안은 원도급사인 종합건설업체가 공공 공사를 수주한 후 일부 공사를 전문건설업체에 하청을 주는 구조였다. 그러나 서울시가 주계약자 공동도급으로 발주를 한 공사는 하도급으로 참여했던 전문건설업체가 원도급사인 종합건설업체와 동등한 계약 지위를 갖게 된다.
 
원도급과 하도급 관계가 아닌 수평적 계약당사자 지위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불법 재하도급, 대금 체불 등의 불공정 행위를 없애고 부실시공을 예방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한건설협회는 하도급사인 전문건설업체의 역갑질을 주장하며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를 폐지해달라는 내용으로 2017년에 헌법소원을 준비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업역 칸막이 폐지…"제도 유명무실"
 
그러다가 2018년 국토교통부가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의 업역 칸막이를 폐지하겠다고 나서며 서울시의 주계약자 공동도급의 의미가 더욱 퇴색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원도급은 종합건설업체, 하도급은 전문건설업체가 시공하도록 업역이 분리돼 있었는데 국토부가 이를 폐지하면서 원도급과 하도급 업체가 모든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주계약자 공동도급이 하도급사인 전문건설업체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 업체들도 원도급자의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에 종합과 전문건설업계 간 수주 업역이 없어지면서 모든 공사에 다 참여할 수 있게 됐고 그동안 원도급사로만 참여하던 종합건설업체가 모든 공사를 수주할 가능성도 생겼다"며 "대금 지급 현황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하도급지킴이 시스템이 있는데다가 종합업체와 전문업체의 위치가 동등해졌는데, 주계약자 공동도급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사실상 주계약자 공동도급의 기능이 약해졌다고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이를 민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예전만큼 주계약자 공동도급제가 실효성을 발휘하진 못 하더라도 아직까진 업역 칸막이가 폐지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종합건설업체가 원도급을, 전문건설업체가 하도급을 수주하는 비중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업역 칸막이가 1월1일부터 폐지되면서 주계약자 공동도급의 취지가 퇴색된건 맞다"며 "종전에는 종합업체가 주계약자, 전문업체가 부계약자로 각각 계약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전문업체도 주·부계약자 지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까진 종전 형태의 계약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업체들의 입찰을 제한하는게 아니라 불공정 관행을 막는 취지로 탄생했고 원도급사와 하도급사가 동등한 입장이라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에 굳이 없앨 이유가 없고 오히려 민간 공사에도 확대해야 한다"며 "하도급사의 지위가 올라가는거나 마찬가진데다 발주처가 원·하도급 간 계약사항을 잘 구분해야 하고 직접 시공을 하는지 관리감독도 해야하는 등 손이 많이 가니 원도급사 입장에서 반대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공공 공사 발주에서 주계약자 공동도급의 기능이 퇴색했지만 오히려 이를 민간으로 확대하겠다고 30일 밝혔다. 사진/윤민영 기자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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