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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사기꾼은 법 보다 한 발 빠르다
2021-06-15 06:00:00 2021-06-15 06:00:00
2000년대 이후 한국 서민은 각종 금융사태의 희생양이었다. 허리띠를 있는대로 졸라매고 한푼 더 아껴보겠다는 등골을 뺀 굵직굵직한 사태만도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19년~2020년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 등이 있다.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공판이 끝나기도 전인 지금, "다음은 ‘코인 사태’"라는 얘기가 나돈다.
 
올해 초 수많은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을 마지막 동아줄로 여기고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사기꾼들은 그 희망을 역이용했고, 이들에게 당한 투자자들은 평생 모은 돈을 한 순간에 날렸다. 
 
경기침체 속 재판에 넘겨진 사기죄가 급증한 가운데 로펌에는 가상자산 사기 관련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백방으로 피해를 막을 방법을 찾느라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들이 마지막 구제처인 법원으로 몰리는 것이다. 이미 소송에 돌입한 사건들도 있다.
 
금융당국과 국회는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믿음이 안 간다. 지금까지 나온 당국의 규제안이나 국회에서 쏟아진 입법안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과연 투자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당국 가이드라인과 법안 대부분이 가상자산 거래소 등록 문턱을 높여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췄을 뿐, 정작 사고 발생 시 ‘피해 투자자’에 대한 구제 방안은 빠져 있다.
  
사기꾼들은 늘 법보다 한 발 앞서 있다. 투자자들을 믿게 만들어 사기 행위를 지속하려면 법망에 걸려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은 법안 시행과 당국의 움직임에 대비해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한 '코인 믹싱 작업(코인을 쪼개고 섞는 세탁 행위)'을 이미 마쳤거나 한창 진행 중일 가능성이 높다. 믹싱 작업을 마친 코인은 사실상 환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탁된 대부분의 코인이 국내 거래소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연방수사국(FBI)은 미국 최대 송유관기업이 러시아 해커조직 다크사이드에게서 탈취당한 비트코인을 처음으로 환수했으나 이마저도 해커들의 실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해커조직이 코인 믹싱을 하지 않았거나 가상자산을 자신들 지갑으로 옮기지 않은 틈을 타 해당 거래소의 협조를 받아 환수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즉, 해커조직의 실수가 있었을 뿐, FBI도 가상자산 암호를 풀지는 못했다는 전언이다.
 
이처럼 은닉 자금 환수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노린 사기꾼들은 추후 경찰에 검거돼 법원에서 실형을 받게 되더라도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실형을 살아줄 이른바 ‘배우’를 세워둘 수 있고, 재판 중 ‘피해액 복구’라는 명분으로 보석 청구도 쉽게 인용된다.
 
사기가 ‘남는 장사’라고 불리는 이유다. 사기꾼은 한 집안의 경제권을 빼앗아 삶의 터전을 잃게 만드는 간접 살인마다. 그럼에도 사기는 여론의 시선에서도 살인죄 등에 비해 자유롭다.
 
특히 신종 사기는 항상 예상을 비껴간다. 당국의 이번 가이드라인이나 국회 법안도 점점 진화하는 가상자산 사기를 막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가상자산 범죄 수익을 일부라도 몰수하려면 은닉 자체를 막는 방안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사기의 형태는 언제나 법 위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사기를 막을 수 없다면 범죄수익환수를 위한 몰수방안이라도 치밀해져야 한다.
 
박효선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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