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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양형의 가벼움)③양형의 끝 '사형제', 영원한 딜레마
국제적으로 '사실상 사형 폐지국가'…국민 법감정은 '존치' 더 많아
존치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vs 폐지론 "범죄율 감소 영향 미미"
법무부는 "존치" vs 인권위 "폐지"…정부 기관끼리도 입장 엇갈려
2021-06-14 03:00:00 2021-06-14 03:00:00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 생후 16개월된 정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양모 장씨는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지만 지난달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사형에서 감형된 사례도 있다. 딸의 중학생 친구를 유인해 성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 중국은 지난 2월 이른바 ‘녜수빈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의 진범 왕수진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21세 녜수빈은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그가 사형당하고 10년 뒤 진범 '왕수진'이 잡혔다. 이 사건은 중국의 대표적 오심 사건으로 기록됐다.
 
최근 ‘n번방 조주빈’, ‘정인이 양부모 학대’, ‘노원구 스토킹 김태현’ 등 전 국민을 공분케 만든 살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사형제 폐지를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는다.
 
한국은 25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 폐지국가'로 분류된다. 1997년 12월 30일 김영삼 정부 시절 김종구 법무부 장관의 명령으로 23명에 대한 사형이 한꺼번에 집행된 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정권이 다섯 번 바뀌며 현 박범계 장관까지 22명의 법무부 장관이 임명됐지만 형사소송법 463조가 정한 사형집행 명령권을 행사한 장관은 없다. 다만 한국에선 사형 집행유예인 '모라토리엄'이 선언된 적이 없어 법률상으로는 사형제도가 존재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사형제도는 점차 폐지되고 있지만, 중대범죄가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사형제를 유지해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
 
법무부, 헌재에 사형존치 의견 전달
 
법무부는 올해 초 헌법재판소에 사형제 존치 의견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반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헌재에 사형제 폐지 의견서를 냈다.
 
법무부는 의견서에서 "사형이라는 제도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원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사형제는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헌법상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으며 엄격하게 입법 및 선고·집행이 이뤄지는 이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 헌법은 사형을 형의 종류로서 인정하는 전제 하에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므로 사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반면, 인권위는 “사형제도 유지 및 집행이 범죄억제 효과를 발휘하는지 여부에 검증된 바가 없고, 강력범죄 중 사형선고가 가장 많은 살인의 경우 범행 동기가 우발적이거나 미상인 경우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범죄의 예방은 범죄억지력이 입증되지 않은 극단적인 형벌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빈틈없는 검거와 처벌의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국민 법감정은 법무부 손을 들어주고 있다. 2018년 인권위 여론조사에서 국민 79%가 사형제 존치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다만, 사형을 대체할 형벌이 마련된다는 전제 하에서는 66%가 사형제 폐지에 찬성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관계자들이 2019년 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사형제도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무부와 인권위의 입장이 갈리는 부분은 사형이 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지 여부다. 전문가들 중에는 사형제도가 강력범죄를 줄일 만한 결정적 해결책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2019년부터 전국의 사형수들을 만나 면담한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범행 당시 사형에 대해 생각했다는 사형수는 한 명도 없었다”며 “사형을 선고한다고 흉악범죄가 줄거나 사형 집행을 안 해서 범죄가 늘었다는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형제 존치 상황에서 과거보다 강력범죄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에 대해선 “사형을 안해서가 아니라 CCTV와 포렌식 기술이 발달한 영향이 크다”며 사형제도가 범죄를 예방하는 데 큰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사형제 존폐 여부와 맞물린 논점 중 또 다른 핵심은 '대체형벌'이다. 국민 중 66%가 사형을 대체할 형벌이 마련된다는 전제 하에서 사형제 폐지를 찬성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형제를 대체할 형벌은 ‘종신형’뿐이다. 종신형은 △무기징역이라 불리는 ‘상대적 종신형’과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나뉜다.
 
‘절대적 종신형’은 수형자가 사망할 때까지 가석방이 불가능해 사실상 사회와 영구적으로 단절시키는 한편 ‘상대적 종신형’은 사면이나 가석방 등을 통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학계에선 두 가지 종신형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에서 사형을 대체할 형벌은 ‘절대적 종신형’ 외엔 대안이 없다는 의견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명분 이전에 범죄자에게 지속적으로 들이는 예산을 생각하면 사회 복귀 여지가 있는 ‘상대적 종신형’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교정시설 과밀 수용 완화를 위해 전국 교정시설 수형자 900여명이 조기 가석방된 지난 1월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수형자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각에선 이미 사형제도가 폐지됐다는 전제 하에 사법개혁을 이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은 13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1998년부터 사실상 사형제도가 폐지된 상황에 현 시점 사형제 폐지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며 "이미 상당히 낮아진 오판율을 더 낮추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의 현 사법부는 80년대와 다르다"며 "수많은 사법개혁이 있었고 3심제로 진행되는 한국의 재판부는 오판을 걸러내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형제 폐지 여부를 사형 유지국과 단순 비교하기 보다는 법 집행의 구조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앞서 헌재는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 사형제 합헌 결정을 했다. 헌재의 세 번째 결정을 앞두고 또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된 사형제 존폐 논란이 올해는 결론을 맺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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