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위안부 손배 판단', 3개월만에 왜 바뀌었나
2차 소송 재판부, 국제 관습법 예외 적용 사유 불인정
1차 소송 재판부와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 등 해석 달라
입력 : 2021-04-21 17:46:56 수정 : 2021-04-21 18:17:33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법원이 3개월 간격으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손해배상 판단을 달리 한 근거는 '주권면제(국가면제)'였다. 첫 사건 재판부는 국가면제 예외 사유를, 두 번째 재판부는 국가면제 적용 이유를 각각 원고 승소와 각하 근거로 내세웠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는 21일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외국행위 일체 면제'로 시작
 
각하 사유는 한국 법원이 일본의 주권적 행위에 대해 재판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재판부가 그 배경으로 꺼내든 이론이 국가면제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을 통해 국가면제론의 형성 배경과 현황을 설명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812년 국가면제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관습법에 따른 것임을 선언했다. 이때는 외국의 주권적·비주권적·권력적·비권력적 행위 일체에 재판권을 행사 못한다는 절대적 면제를 의미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외국 행위 중 비주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 안 한다는 '제한적 면제' 법리로 발전했다.
 
국가면제가 인정받는 근거는 어느 한 국가가 동등한 주권을 가진 외국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토 안에 있는 외국 재산에 대해서는 강제집행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해당 외국 영토 내 재산에 대해서는 그 나라 법원 판결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집행이 불가능한 점도 근거다. 외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문제 사안에 대한 외교적 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국가면제가 이와 무관하게 외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한 '국제 예양'을 넘어 구속력 있는 국제 관습법으로 인정돼 왔다.
 
이용수 할머니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을 마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이 할머니와 고 곽예남, 김복동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사진/뉴시스
 
위안부 첫 재판에서는 예외 사유 인정
 
한국 대법원은 1975년 절대적 면제론을 따랐다가 1998년부터 제한적 면제론 법리를 채택했다. 해당 국가 행위가 주권적이라면 국가면제를 적용하고, 사법적이라면 예외 사유가 된다는 법리가 형성됐다.
 
따라서 법원이 일본의 위안소 운영을 주권적 행위로 보는지 사법적 행위로 보는지에 따라 주권면제 적용 여부가 갈리게 됐다.
 
지난 1월8일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일본의 위안소 운영을 주권적 행위로 인정하면서도 주권면제 적용을 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 행위는 일본제국에 의하여 계획적,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 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당시 일본제국에 의하여 불법 점령중이었던 한반도 내에서 우리 국민인 원고들에 대하여 자행된 것으로서,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 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원고 승소 이유를 밝혔다.
 
법원이 일본의 주권적 행위에도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근거는 헌법과 국제연합(UN)의 세계인권선언, 비엔나협약 등이었다. 헌법 27조에 따라 모든 국민은 재판 받을 권리가 있고, 세계인권선언 8조는 모든 사람이 권한 있는 국내 법정에서 실효성 있는 구제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비엔나협약 53조에는 "조약은 그 체결 당시에 일반 국제법의 절대규범과 충돌하는 경우에 무효"라고 적시됐다.
 
국가면제는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가치가 아니고, 국제질서 변동에 따라 수정되고 있는 점도 근거였다.
 
민사34부는 무엇보다 위안부 피해자가 법에 호소할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도 국가면제 예외 사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가 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하였을 경우까지도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결과가 도출된다"고 했다.
 
또 "국가면제 이론은 주권국가를 존중하고 함부로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절대규범(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하여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어서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하여 형성된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예외 인정할 관습이나 확신 부족
 
이번에 국가면제를 적용한 민사15부도 일본의 위안소 운영이 주권적 행위라고 봤다. 다만 예외사유를 적용할 근거는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개인 사례를 참조했다. 이탈리아인 루이지 페리니(Luigi Ferrini)씨는 1944년~1945년 독일 군수 공장에서 강제노역한 데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이탈리아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독일 손을 들어줬다. 대다수 국가의 법원이 '법정지국의 영토 내에서 무력 분쟁 과정에서 외국의 군대 또는 그와 협력하는 외국의 국가기관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 여전히 국가 면제를 인정한다는 이유였다.
 
외국을 상대로 자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최후 수단'인지 여부가 국가면제 인정 여부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도 근거로 내세웠다. ICJ는 피해자가 이탈리아 정부와 독일 정부 간 외교적 협상으로 권리 구제를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민사34부도 국가면제를 인정하고,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입법부의 법안 마련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한국이 일본의 교전 상대국이 아니었고, 한반도가 전선에서 제외돼 ICJ 법리가 적용 안 된다는 원고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판단 기준이) 외국과 실제로 교전한 교전 상대국인지 또는 피해자가 현실적인 교전 지역에 거주했는지가 아니다"라며 "전시 국제법이 손해배상 등의 문제가 개별적인 소송이 아니라 관련 국가 간의 일괄 협정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전제로, 전시 국제법의 보호대상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민사34부는 일본국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민사15부는 기존 국제 관습법이 폐지되고 새로운 예외가 세워지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법정지국 영토 내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UN 국가면제협약 비준국이 22개국이어서 아직 발효되지 않은 점을 이유로 들었다.
 
관련 국제조약을 비준하거나 개별 입법을 한 국가도 전체 UN 회원국의 19% 정도로 '일반적인 관행이 존재하거나 법적 확신이 부여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근거도 내세웠다.
 
일본의 위안소 운영이 주권적 행위가 아니라는 원고 주장에 대해서는 "개념적으로 법적·윤리적 당위를 전제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일본이 위법한 주권행사를 했을 뿐, 주권적 행위가 상실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제148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이 열린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 vs 국제질서 존중
 
두 재판부는 재판 받을 권리에 대한 헌법 해석도 달랐다. 첫 재판을 심리한 민사34부는 원고의 소송을 '최종적 수단'으로 보고, 헌법 27조가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로 구제받아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일본의 재판권 면제에 대해 "어느 국가가 다른 국가의 국민에 대하여 인도에 반하는 중범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한 여러 국제협약에 위반됨에도 이를 제재할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하여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은 헌법에서 보장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하여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법질서 전체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민사15부는 헌법 전문과 6조 1항이 정한 '국제법 존중주의'와 '국제 평화주의' 가치 구현을 위해 국가면제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우리 헌법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를 국내법과 마찬가지로 준수하고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국제질서를 존중하여 항구적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을 기본이념의 하나로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면제가 외국의 응소 부담을 면제하고, 주권적 행위에 대한 재판권을 부정한다며 수단의 적정성도 인정했다.
 
재판청구권이 반드시 모든 사건에 대해 본안 판단을 받을 권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침해의 최소성도 인정됐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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