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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배심원들’, 고매한 법의 민망한 오류
2008년 실제 시행된 ‘국민참여재판’ 모티브 극화 ‘현실감’↑
“법은 억울한 처벌을 하지 않기 위해 존재”…과연 현실은?
2019-05-07 00:00:00 2019-05-07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란 말이 있다. 유명한 법언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든다. 법을 보좌하기 위해 도덕이란 개념이 있는 것 일까. 아니면 도덕을 위해 법이 존재하는 것 일까. 영화 배심원들은 이런 의문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법을 위해 최소한의 도덕적 개념이 투입된다고 하지만 법은 감정의 산물이 아니다. 반대로 도덕은 감정적 집합체의 그것이다. 때문에 사실상 두 개념은 상충될 수 밖에 없다. 두 가지 이질적인 개념의 충돌은 대한민국 사법 체계의 불신과 맹신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어놓는 뚜렷한 한 줄이다. 이 명확한 한 줄이 제대로 그어진 굵고 확실한 선인지에 대한 해답을 위해 대한민국 사법부는 실제로 2008년 획기적인 사건을 일으킨다. 국내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배심원 제도를 도입한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했다. 사회적으로 고매한집단으로 분류된 법관들의 판단 근거에 법 제도의 문외한인 일반인의 판단 근거를 끌어 들인 제도였다. 우선 미국을 비롯한 여타의 배심원제 시행 국가와 달리 2008년 국민참여재판 속 배심원들의 의견은 판결의 참고 사항이었을 뿐 결정 사항은 아니었다. 이 근거를 두고 영화는 출발한다.
 
 
 
영화에선 한 사건이 등장한다. 존속 살인이다. 법 제도의 관행은 불구하고 사회 통념상으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사건이다. 아들이 엄마를 살해했다. 아들은 살인을 자백했다. 하지만 그 자백 자체에 허점이 많다. 우선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 사실 증거는 뚜렷하다. 살해 도구가 발견됐다. 현장에서 아들이 검거됐다. 아들의 자백이 있었다. 목격자까지 존재한다. 재판은 이제 명목상의 요식행위일 뿐이다. 피의자는 법정 최고형이 예상된다. 이 사건에 8인의 배심원들이 투입된다. 법원장(권해효)은 사법 사상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을 최고의 이벤트로 만들 궁리를 한다. 이벤트의 중심은 원리원칙주의자로 소문난 사법부 최고의 강골 여판사 준겸(문소리)이다. 그는 자신의 좌우배석 판사와 함께 8인의 배심원단을 이끌고 재판을 진행한다. 이 가운데 배심원단의 시선을 이끄는 인물은 8번 배심원 남우(박형식)이다. 스타트업 기업 창업자인 남우는 자신이 개발한 상품을 들고 투자와 특허 등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이다. 개인파산을 걱정할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녹록치 않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어딘지 모르게 강직하고 뚜렷하다. 자신의 소신을 믿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는 올곧은 청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그가 알바로 뛰어든 상황이 배심원이다. 이제 그의 눈을 통해 사건은 예상 밖의 상황을 흘러가게 된다.
 
영화 '배심원들' 스틸. 사진/CGV아트하우스
 
준겸을 필두로 한 재판부의 원리 원칙은 사건 자체의 명확성을 근거로 일사천리로 재판을 끝내려 한다. 법원장의 기대감도 크다. 윗선의 기대감도 크다. 국민에게 보다 다가선 사법부의 청렴한 이미지 세탁용으로 국민참여재판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한 사건이다. 하지만 배심원단은 불협화음이다. 흥미와 관심과 사명감 혹은 불분명한 사연으로 참여한 8인은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제각각이다. 그 안에서 남우는 사건의 본질에 보다 접근하는 시각을 제시한다. 평소의 생활 태도와 상황을 대하는 냉철한 시각이 돋보인다. 하지만 사실 조금만 비껴서 보면 이건 남우의 특별함이 아니다. 영화는 현실 속 사법 체계의 맹점을 꼬집는 것이다. 사법의 지휘권을 휘두르는 판사들은 법은 최소한 도덕이란 법언의 명리를 따라 드러난 증거 위주의 재판을 진행하려 든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는 지점은 그 최소한의 도덕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란 점까지 거론하고 있다. 영화 속 준겸은 배심원 면접에서 법은 사람을 억울하게 처벌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 준겸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의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남우는 공감할 수 없던 것이다. 오히려 영화는 사법 체계의 논리 속에서 존재하고 증명되는 법관들의 사법적 시각을 법의 문외한인 일반인 배심원단의 시선에서 찾으려 노력한다.
 
영화 '배심원들' 스틸. 사진/CGV아트하우스
 
남우는 사건 기록을 살펴보며 피의자의 억울한 시각에서 모든 것을 재조립한다. 엄마를 살해한 아들의 사건은 역으로 몇 차례 재조립되고 재구성되면서 영화 속에 등장한다. 다양한 가능성의 여백을 보여준다. 관객들도 영화 속 인물들도 나아가 법의 시선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능성의 여백에 설득을 당하기 시작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배심원들은 그 가능성의 포인트가 갖고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 최악의 상황에만 집중하고 포커싱을 했다. ‘법 자체가 오판을 한다면이란 가정에서 출발했기에 사법 체계의 맹점이 처음부터 존재한단 기본 전제에서 출발한다. 일반화의 오류로 흘러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일반화의 오류 속에서 존재하는 99가지의 정답을 위해 단 한 가지의 오류를 묻어 버려야 한다면 그건 법의 정당성일까. 준겸은 이미 말했다. ‘법은 사람을 억울하게 처벌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남우는 말했다. ‘정말 모르겠다. 저 사람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영화 '배심원들' 스틸. 사진/CGV아트하우스
 
영화 배심원들은 법의 체계 자체가 갖고 있는 태생적 오류에 집중하지만 그 오류 자체가 단 사람의 인생을 바꿔 버릴 수도 있는 서슬퍼런 칼날이란 점을 지적한다. 최소한 법 체계 안에선 일반화의 오류라기 보단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이 정답이라고. 법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준겸도 남우도 나머지 7인의 배심원단도 사건이 진행되고 흐를수록 설득을 당해 간 것이다. 법에 설득 당한 것이 아니라 진실에 설득 당해 간 것이다. 진실은 이미 예전부터 법보다 위에 존재해 왔다. ‘배심원들은 그걸 말하고 있다. 법에게. 개봉은 오는 15.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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