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구 희망원 사건을 사회서비스 혁신 기회로
입력 : 2016-10-17 11:40:43 수정 : 2017-03-20 18:16:03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터질 일이 터졌다! 대구 희망원에서 2년8개월 동안 수용인원의 10%에 이르는 129명이 사망했다. 가톨릭 대구대교구 대주교가 사과문을 발표하고, 시설장과 중간 관리자들이 전원 사퇴했다. 대구대교구는 인권 침해의 책임을 지고 채용 비리와 시설 회계장부에 대한 의혹도 조사를 통해 밝히겠다고 한다.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대구교구가 희망원 위탁업무를 정부에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 분야 사건마다 반복되는 이러한 대응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년 정부 예산 400조원 중에서 3분의1에 해당하는 130조원이 보건·복지·노동 분야에 사용될 만큼 사회정책의 비중은 급증하고 있지만, 사회서비스 운영 방식은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와는 달리 공급방식은 1970년대 사회사업법이 제정되고 사회복지법인이 만들어진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다. 사회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급증했으나 낡은 공급방식은 변하지 않은 것이 대구 희망원 사태의 본질이다. 이 낡은 공급 시스템을 보편적 사회서비스 수요에 맞추는 사회서비스 혁신이 문제 해결의 대안이다.

대구 희망원 사태에서 눈에 띄는 사실은 시설운영 주체가 종교단체라는 점이다. 1980년부터 가톨릭교회가 정부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종교단체, 특히 가톨릭교회는 우리사회에서 하나의 신성처럼 여기면서 금기의 영역으로 자리했다. 때문인지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났음에도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다. 국정감사 등 실태 파악의 시늉을 내지만 형식적인 조사 이상은 넘어서기 힘들어 보인다. 이러한 대응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다. 가톨릭교회가 겸손한 자세로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이것만이 가톨릭 사회복지 영성인 카리타스(Caritas, 자비)에 충실한 태도다.

노인, 장애인, 아동, 여성 등 시설 사회서비스의 70% 정도를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계가 담당하고 있다. 해방 이후 87년 민주화 전까지 사회서비스는 사실상 국가가 방치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나 정부의 관심은 성장우선주의에 밀려 외면됐고, 국가의 일을 외국 원조단체와 그에 연계된 종교계 사회복지가 대행했다. 6.25 전쟁 뒤에 발생한 고아와 상이군인, 독거노인 등에 대해서는 외국 원조단체들이 정부를 대신해서 사회서비스를 담당했다.

이때 시설 운영방식의 큰 틀은 시대 변화에도 바뀌지 않았고, 대구 희망원도 외국 원조단체가 남겨놓은 시설 경영의 거버넌스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시설 책임과 재정담당은 모두 성직자가 맡고 있다. 종합사회복지관은 전문 사회복지사 등이 맡지만 이들에 대한 인사권과 이를 통제하는 이사회는 가톨릭 등 종교계가 갖고 있다. 시설 책임을 맡은 성직자는 그 분야의 전문가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다른 직역과 순환보직이 이뤄져 지속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운영방식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독일의 경우 가톨릭 사회복지인 카리타스와 개신교 사회복지인 디아코니아(Diakonia)가 다른 3개 단체와 함께 국가가 아닌 사회단체로서 사회복지를 담당하고 있다. 카리타스와 디아코니아 종사자는 각각 50만명 정도로 독일 최대기업인 지멘스(45만명)보다 많다. 이들의 사회서비스에 대해 독일 국민이 신뢰하는 이유는 영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교리를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실천하고 있어서다. 독일 복지국가의 유형인 사회국가의 가장 핵심적인 축이 이 두 종교계 사회복지단체들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사회서비스는 탈물질화된 '따뜻한 돌봄'이 요구된다. 탈물질적 가치를 사회서비스에 가장 잘 체화할 수 있는 공급주체들이 종교계다. 고전적 복지국가는 '전달국가(Delivery state)'로 표준화된 서비스를 공공 전달체계를 통해 공급했다. 이후 복지국가에 대한 개혁으로 효율성과 능률을 강조하는 '거래적 국가(Transactional state)'의 민영 공급방식이 크게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돌봄을 시장에서 상품을 사듯이 경제적 효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따뜻한 돌봄을 받고 싶어한다. 지금은 대안적 모델로서 '관계형 복지국가(Relational welfare state)'가 모색되고 있고, 그 관계성을 지속하는 데 있어 종교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도 종교계의 역할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정부가 시민사회와 협력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됐지만 종교계를 대체할 만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곳도, 시민적 신뢰를 확보한 곳도 달리 찾기 힘들다. 경쟁과 효율이나 단순한 서비스 전달이 아니라 관계형 복지국가로의 진화를 위해 대구 희망원 사건을 천주교회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가 성찰적 자세로 사회서비스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가톨릭이 한국 사회복지 역사에서 선도적 역할을 지금까지 해 왔듯이 이번 대구 희망원 사건을 사회와 열린 거버넌스를 만드는 계기로 삼기를 희망한다. 가톨릭교회가 관행의 이름으로 변화와 혁신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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