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이게 다 아베 덕분이다
입력 : 2020-06-26 06:02:00 수정 : 2020-06-26 09:26:58
지난 17일 가뭄 속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SK가 반도체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불화수소 가스를 양산한다는 소식이었다. 지금껏 100% 가까이 일본에서 수입해서 써야 했던 소재를 완전 국산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SK는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또 다른 소재 포토레지스트를 내후년 생산 목표로 개발 중이다. 일본 아베 정권이 수출규제를 강행한 지 1년 만에 이룬 성과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도 협력사들과 손을 잡고 반도체 설비부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데 잇따라 성공했다. 이 가운데에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핵심 소재도 있다. 바야흐로 2020년을 기점으로 진정한 ‘K칩 시대가 열린 것이다.
 
반도체 생태계의 뜻밖의 국산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베 정권의 덕분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할 수 있도록 강제 독려해 준 셈이다. 이런 상황을 자충수라고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 반도체 전문가가 수출 규제를 지속하다간 향후 5년 뒤 일본의 반도체산업 자체가 사라질 것이란 예언이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소재를 생산해 한국에 수출했던 일본 업체들은 올 들어 순이익이 20~30%씩 감소했고 그 폭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아베 정권은 한국민들의 노 재팬운동까지 불러왔다. 닛산은 판매부진에 철수를 결정했고, 다른 일본차 업체들의 판매량도 반토막났다. 일본 여행객 숫자도 지난 1년간 70%가 줄었다. 유니클로, 아사히맥주 등 일본을 대표하는 소매업체들의 실적 또한 90% 넘게 쪼그라들었다. 이게 다 아베 정권 덕분이다.
 
최근 전쟁광볼턴의 일기장 같은 회고록에 국내의 소위 보수 언론과 정계가 호들갑을 떨고 있다. 남북미 회담이 일종의 사기극이었다는 그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며 한 건 잡았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앵무새들이 따로 없다. 급기야 미래통합당 일각에서는 국정조사까지 운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와 민생이 갈수록 어려운데 미국 정계에서 이미 도태된 전 백악관 보좌관의 글만 읽고 이런 소모적인 정쟁을 꼭 불러일으켜야만 속이 시원한가.
 
볼턴이 누구인가. 그의 회고록만 보아도 한반도 정책과 관련한 그의 언행은 할 수 있는 모든 방해를 다 했다는 말로 정리된다. 그에게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은 애초부터 없는 카드였다. 이른바 하노이 노딜의 주역이 바로 그였다. 그럼에도 다 된 밥에 재 뿌린 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행태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의 회고록에서 아베 총리에 관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회고록에 따르면 아베는 한반도 평화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 틈날 때마다 트럼프에게 대북 강경 입장을 피력했다. 이간질도 서슴지 않았다. G7 회의 참석차 캐나다로 가는 도중 미국에 들러 트럼프에게 북한 지도부는 매우 거칠고 약삭빠른 정치인들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볼턴은 내 생각과 같다며 회고록에서 아베의 실체를 커밍아웃해버렸다. 둘이 같은 족속이라는 말이다. 그동안 심증은 갔지만 물증이 없어 대놓고 벌주지 못했던 협잡꾼을 목격한 기분이다.
 
이로써 아베를 비롯한 일본 내 극우 정치세력은 한반도 평화를 절대 원하지 않는다는 새삼스런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저들은 남북이 함께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이것은 팩트다.
 
그럼에도 한국 내에서 아베 정권의 주장에 동조하는 일부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무척 슬픈 일이다. 엊그제 비 오던 수요일에 우리 청년 학생 수십 명이 소녀상 곁을 밤을 새우며 지켰다. 28년간 수요집회를 열었던 이곳을 한 단체가 집회 신고 선점으로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이 상황을 누가 좋아할 것인가. 우리 국민들인가, 저들인가. 아무리 현 정부가 싫어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아베가 그토록 철거하고 싶은 소녀상을 우리 젊은이들이 같은 민족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서글픈 현실을 생각해보라.
 
마침 우리 국민과 기업들은 일본을 극복하고 이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제 일본은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 일본에서 제2, 3의 아베가 나온다 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다. 이게 다 아베 덕분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고맙지는 않다

이승형 산업부 에디터 sean120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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