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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힌트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 박상은지음 | 사회운동 펴냄
2015-04-10 21:41:35 2015-04-10 21:41:3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세월호 참사 후 벌써 1년입니다. 4월 16일이 다가오면서 각계에서는 이런 저런 추모행사를 준비 중입니다. 추모의 열기가 뜨겁게 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 편으론 사건 그 자체와 그 이후 벌어진 수습 과정을 찬찬히 되짚어 보고 싶은 분들도 있을 테지요. 기억은 때로는 뜨겁게, 또 때로는 차갑게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특히 세월호처럼 모두의 마음에 상흔을 안긴 대형참사의 경우 궁극적이고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조금은 거리를 두고 찬찬히 바라보는 것도 중요해보입니다.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사회운동)’는 이런 궁리를 하기에 딱 좋은 책입니다. 책은 ‘세월호 참사 이후 돌아본 대형사고의 역사와 교훈’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요. 부제대로 세월호를 다루면서도 한 사건에만 매몰되지 않고 사고를 확장하도록 돕고 있지요. 비록 세월호 사건이 대한민국 사회의 치명적 약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긴 하지만, 그 약점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비단 한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자 박상은은 대형사고의 여러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며 독자의 사고를 좁히기도 하고 넓히기도 하면서 우리사회를 찬찬히 돌이켜 보는 데 필요한 거리를 만들어줍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불과 1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 차가운 접근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책 전반에는 이런 류의 인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강렬한 의지가 흐르고 있으니까요.
 
◇세월호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식
 
이 책이 처음 발간된 건 2014년 9월입니다. 이후 상황이 변하기는 했습니다. 11월에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됐고, 17명의 위원이 선임됐습니다. 정부는 안전대책을 쏟아냈고, 국책 연구원의 연구보고서도 계속 발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안에 세월호 참사로부터의 교훈은 빠져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저자는 세월호가 4월 16일 오전에 침몰한 것이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외쳐댄 ‘규제완화’와 ‘민영화’로 인해 서서히 침몰해 간 것이라고 봅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짜 배후는 바로 정부였다는 시각이지요.
 
책에는 세월호 참사를 필두로 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태안 기름유출 사고 등 국내에서 반복된 대형사고를 나열하고 각 사태의 진짜 원인을 꼼꼼히 짚어냅니다. 삼풍백화점은 비리와 탐욕으로 비롯된 참사이고, 대구 지하철 화재는 비용절감을 주창하다 벌어진 일이라는 식입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를 통해서는 삼성의 책임회피 모습과 주민운동의 좌절 과정을 짚어보기도 합니다.
 
해외 사례도 있습니다.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화재는 무려 100년이나 기억되며 사고 수습의 과정을 밟아 나가는데 저자는 그 과정을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파밍튼 탄광 폭발을 다룬 부분의 경우 유가족과 노동자가 힘을 합쳐 변화를 만들어낸 과정을 소개합니다.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침몰 사건은 영국 기업살인법 제정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합니다.
 
해외 사례는 유독 잘 해결된 것만 수집해 소개한 것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해외 사례 중에서도 사태 수습에서 힘겨운 과정을 밟은 경우가 꽤 소개됩니다. 보팔 가스누출 사고의 경우는 아직도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냉정하게 바라보고, 엑슨 발데즈 원유유출 사고와 후쿠치마선 탈선 사고를 통해서는 징벌적 배상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언급합니다. 라나플라자 붕괴에서는 위험을 제3세계로 전가하는 초국적 기업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다양한 국내외 사례들을 보며 저자는 안전한 사회를 위한 필요조건 몇 가지를 제시합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의 확립입니다. 정부의 규제 및 노동자의 통제와 시민의 감시를 바탕으로 이윤만 쫓으며 안전을 방기하는 기업을 규제하는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또 규제완화와 민영화의 위험성을 깨닫고 멈추자는 것, 화물과적을 멈추자는 것, 알권리를 위해 지역주민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 안전을 지킬 인력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 노동자에게 위험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주자는 것, 기업을 처벌하자는 것 등 보다 구체적인 안들도 이어서 내놓습니다.
 
◇기억의 키워드를 잘 뽑아내자
 
사회진보연대 정책위원이기도 한 저자 박상은씨는 연대에서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책임집필을 맡으며 여러가지를 새로 배운 듯했습니다. 박상은씨는 "역사를 되짚어보는 작업을 다른 데서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더라"라며 여러가지 대형사고들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로 대구 지하철 사고와 트라이앵글 화재 사고를 꼽았습니다.
  
대구 지하철 사고의 경우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대구 사고 이후 지하철의 안전장치가 실제로 많이 보완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찾다보니 우리의 기억이 허술하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당시 언론은 거의 기관사 탓을 했고 그 부분이 부각됐는데 그 다음에 유가족들이 어떤 방식으로 오랫동안 그걸 가지고 싸웠는지는 전혀 조명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세월호 유가족은 다들 기억하겠지만 대구 지하철 유가족이 뭔가를 했다는 건 사실 기억 못 하는 사람이 많지요. 박상은씨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이 아닌 어떤 몇 개의 키워드로써 사건이 기억되는데 '그 키워드를 잘못 잡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 점에서 대구 지하철 사고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습니다.
 
그 외에 기억나는 사례로는 트라이앵글 화재의 경우를 들었습니다. 100년 동안이나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엄청난 사회 변화를 낳았다는 점, 그리고 뉴욕 공장조사위원회가 결성됐다는 점 등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참사 후속 과정과 비교되면서 저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사건을 되짚어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가치는?
 
이 책의 바탕에는 세상을 바꾸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여러 사건사고들을 관통하는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각자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한두가지씩 뽑아볼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저자가 책 말미에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긴 하나 그것은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 정답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독자가 읽고 난 뒤 토론을 통해 책의 내용을 완성해나갈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해 풍부한 사례를 제시한 것 역시 이 책의 강점입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역사의 흐름 속에 놓고 봐야 어느 부분이 해결이 안됐고, 어느 부분이 특이점인지 보인다는 생각이 책의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유가족들의 슬픔 혹은 세월호에만 초점이 맞춰진 얘기 외에 다른 얘기까지 확장하도록 유도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책을 내는 과정 중 아쉽게도 다루지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태안 해병대캠프 사고라던가 씨랜드 사고 같은 경우가 그런 예입니다. 이론적인 부분에 대한 보강과 함께 더욱 풍부한 사례가 덧붙여질 다음 권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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