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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욱의 가요별점)명불허전..‘하루 아빠’의 힙합 본능
에픽하이 8집
2014-10-21 12:19:13 2014-10-21 12:19:13
◇정규 8집을 발표한 에픽하이. (사진제공=YG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하루 아빠’. 지난 몇 개월간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멤버인 타블로의 이름에 항상 따라붙었던 수식어입니다. 타블로는 아내 없이 아이들을 돌보는 연예인 아빠들의 육아 도전기를 그린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수식어를 얻게 됐는데요. 예쁜 딸인 하루를 키우면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인상을 줬죠.
 
그런데 그 탓에 타블로가 국내에서 손에 꼽힐 만한 실력 있는 랩퍼이자 힙합 프로듀서란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1일 발표된 에픽하이의 정규 8집 앨범을 통해선 ‘하루 아빠’의 숨겨져있던 힙합 본능을 느낄 수 있는데요. 앨범이 발표되자마자 수록된 모든 곡들이 음원 차트 상위권을 점령하면서 줄세우기를 했습니다. 하루 전에 발표됐던 인기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신곡도 가뿐히 뒤로 밀어냈고요. 에픽하이가 왜 국내 최고의 힙합 그룹 중 한팀인지를 증명해 보이는 앨범입니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은 두 곡인데요. ‘헤픈엔딩’과 ‘스포일러’입니다. 두 곡 모두 발상이 재밌습니다. ‘헤픈엔딩’의 경우, '헤프다'란 단어를 이용해 해피엔딩과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번은 다르다고. 매번 날 속여봐도. 어김없이. 언제나 그랬듯이 끝나겠지. 사랑을 하는 건지. 이별을 하려고 만나는 건지. 또 다시 날 찾아온 헤픈엔딩"이란 가사인데요.
 
‘스포일러’는 원래 영화나 드라마 등의 내용을 미리 밝히는 행위를 뜻하죠. 이 노래에선 남녀 관계를 한 편의 영화에 비유해 "너의 차가운 눈빛과 말투가 스포일러. 너의 모든 행동 속에 우리의 끝이 보여. 아니라고 말해도 느껴지는 스포일러"라고 노래합니다.
  
이와 같이 기발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표현과 발상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 에픽하이의 노래가 가진 매력이죠. '헤픈엔딩'과 '스포일러'가 함께 담긴 뮤직비디오에선 예비 스타를 만나볼 수도 있는데요. 데뷔를 앞두고 있는 YG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멤버인 김지수가 출연합니다. 참 예쁘네요. 벌써 팬들이 많이 생긴 것 같은데요. 곧 정식으로 데뷔해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김지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헤픈엔딩’과 ‘스포일러’는 분명 힙합곡입니다. 하지만 강렬한 느낌의, 뭔가 깨부수는 느낌의 힙합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대신 섬세한 감정선을 그려내면서 듣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감성 힙합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힙합은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라는 선입견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은데요. 서정적인 멜로디로 구성된 에픽하이의 힙합은 누구나 듣기 편한 스타일의 힙합이고, 그런 점에서 충분히 대중적입니다. '헤픈엔딩'과 '스포일러'는 특히 가을에 참 잘 어울리는 노래들입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더 좋을 것 같네요.
 
'헤픈엔딩'에 피처링으로 참여할 가수로 롤러코스터의 조원선을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원선은 무심한 듯한 목소리로 곡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냅니다. 
 
 
이번 앨범엔 조원선 외에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피처링으로 참여를 했는데요. 빅뱅의 태양이 피처링한 ‘리치’(Rich)와 가수 윤하가 피처링한 ‘또 싸워’는 상당히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두 곡 모두 타이틀곡 못지 않게 귀를 사로잡는 노래들이고요.
 
'리치'는 마음의 부자든, 물질적인 부자든, 부자가 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또 싸워'는 이겨도 지는 사랑 싸움에 지쳐가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낸 노래인데요. 태양과 윤하 모두 노래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보컬리스트들이죠. 두 사람은 '리치'와 '또 싸워'의 깊고 진한 감정을 전달해줍니다.
 
‘RICH'의 "고픈 건 참아도 아픈 건 싫대. 그 배는 유행가처럼 쉽게 부르고 빨리 꺼지네", "난 마음의 부자가 되고 싶은데 지갑을 열지 못해 마음을 계속 쓰게 돼"와 같은 표현에선 랩퍼로서 완숙의 경지로 오른 타블로의 작사 실력을 확인할 수 있고요. ‘또 싸워’에서 악기 사운드를 최소화하고 윤하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극대화한 점에선 그의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앨범은 대중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매력적인 곡들로 꽉 채워져 있는데요. 힙합 리스너들은 5번 트랙의 ‘부르즈 할리파’와 8번 트랙의 ‘본 헤이터’(Born hater)를 가장 좋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노래 모두 강렬한 매력을 풍기는 '진짜 힙합'인데요.
 
부르즈 할리파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입니다. 두바이에 있는 이 건물은 162층, 828m 규모를 자랑하는데요. 이 건축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부르즈 할리파'는 항상 더 높은 위치를 향해 꿈을 펼치는 이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얀키와 개코는 최고 수준의 랩핑을 보여주고요.
 
‘본 헤이터’는 특정 랩퍼에게 편견을 가지거나 그를 폄하하는 이들을 향한 메시지를 담은 곡입니다. 톱클래스 랩퍼인 빈지노와 버벌진트를 비롯해 그룹 위너의 멤버인 송민호, 데뷔를 앞둔 YG의 신인 그룹 아이콘의 멤버인 B.I와 바비가 피처링에 참여해 각자의 시선에서 같은 주제로 랩을 하는데요. 힙합 리스너들을 잠 못 들게 할 정도의 엄청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지난 18일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이후엔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요.
 
앞으로 수 년이 지나도 힙합 팬들 사이에서 회자가 될 만한 곡입니다. 빈지노와 버벌진트는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하고, 신인급 랩퍼인 송민호, B.I, 바비도 쟁쟁한 선배들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보여줍니다. 개성이 넘치고, 강렬하네요. 그리고 “바지벗고 시원하게 깔려면 까, 타진요도 귀여워”라면서 타블로가 학력 문제로 자신과 법정 공방을 펼쳤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에 대해 직설적으로 언급하는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에픽하이의 8집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타이틀은 '신발장'인데요. '신발장'은 하루의 여정이 시작되고, 힘겨운 일상이 멈추는 곳, 그리고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이뤄지는 곳을 뜻합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 '신발장'이란 곡이 실려 있습니다. 에픽하이는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고, 사랑과 이별 사이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첫차와 막차, 그 사이는 없지. 직장이란 쳇바퀴. 제자리를 걷지. 365일 고인 땀은 널 위해서. 알잖아. 내가 어찌 하루를 버리겠어. I'm comin' home. 늦을수도 있지만 집을 향해 흘러가는 이 시간. 이 한적함이 세상의 유일한 완전한 peace"라면서 위안의 말을 건넵니다.
 
에픽하이가 새 앨범을 낸 것은 지난 2012년 10월 발매한 정규 7집 앨범 '99' 이후 2년 만입니다. 에픽하이의 새 앨범을 학수고대했던 팬들이 많을텐데요. 그 기다림에 보답하듯, 완성도 높은 앨범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역시 에픽하이네요. 에픽하이는 오는 22일 오프라인에서 정규 8집을 발매하고요, 다음달 15일과 16일엔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단독 콘서트 ‘퍼레이드 2014’를 개최합니다.
 
< 에픽하이 정규 8집 '신발장' >
대중성 ★★★★☆
음악성 ★★★★☆
실험성 ★★★★☆
한줄평: 에픽하이표 감성 힙합, 가을을 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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