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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김우중의 궤변
2014-08-27 14:53:19 2014-08-27 14:57:47
연민은 있었다. 1967년 자본금 500만원에 직원 5명으로 출발한 대우실업은 1998년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 76조원이 넘는 재계 2위 대그룹으로 우뚝 섰다. 정확히 만 30년의 시간은 김우중을 ‘신화’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 뒤 대우그룹은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우 신화도, 대마불사 통념도, 김우중의 명예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한민국 모든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존경 받던 위치에서 국가경제를 망친 주범으로 전락하면서, 그는 도망치듯 이 나라를 떠나야만 했다.
 
그가 베트남과 미얀마 등을 떠도는 사이, 대우와 더불어 재계 빅3를 구성하던 현대와 삼성은 갖은 부침 속에서도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탑 브랜드로 성장했다. 대우차와 대우전자로 이들과 자웅을 겨루던 78세 노인의 눈에 비친 현실은 회한이 되고도 남았다. 연민이 든 이유다.
 
치욕을 견디지 못해서였을까. 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청와대와 주고받은 숨겨진 비화도 꺼내들었다. 화살은 이내 당시 외환위기 속에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던 DJ정부의 심장으로 향했다.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과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이 정면으로 거론됐다.
 
경제정책 자문을 구할 정도로 DJ의 신임을 얻었지만 이는 오히려 관료들의 눈 밖에 나는 직접적 계기가 됐고, 결국 대우를 송두리째 잃었다는 주장이다. 대우그룹 기획해체설이다. GM이 50~60억달러로 평가한 대우차 가치를 빚더미에 올랐다는 이유로 쓰레기 취급하면서 심각한 국부 유출이 빚어졌다고 항변했다.
 
과연 그럴까. 물론 IMF 체제 하에서 신자유주의를 성급히 받아들인 후유증은 아직도 우리사회를 힘들게 하고 있다. 산업화 이후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 한 번 제대로 진전시키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가 우리사회를 휘젓도록 했다. 이는 양극화의 심화를 낳았고, 경제민주화의 단초가 됐다.
 
부작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권력을 배경 삼아 방만한 차입경영으로 문어발식 외형 확장에 몰두하던 대우그룹이 끝내 정부의 철퇴를 맞으면서 기업들이 내실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대마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는 기업들의 막대한 부채를 낮추는 계기가 됐다. 불가침의 영역이던 재벌 총수도 엄벌의 대상이 되며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시련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렸다. 죽음을 택한 이들도 부지기수다. 국민 혈세가 공적자금으로 투입되는 등 대우사태의 후유증은 한동안 한국경제를 휘청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경영 잘못이 아닌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정책 탓으로 이 모두를 돌리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의 지원만 더해졌다면 대우는 몰락이라는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한보도, 거평도, 쌍용도, STX도, 동양도 할 말이 있다. 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혹독한 제 살 깎기에 들어간 동부, 한진, 현대 등도 항변의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실을 국가 재정으로 막을 수 있는데 누가 방만한 차입경영을 일삼지 않을까. 책임은 사라지고, 부담은 국민이 메웠던 그 시대가 그리운 걸까.
 
김우중 전 회장이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명예 회복과 함께 그를 옥죄고 있는 추징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특별했던 인연은 그의 딸이 통치자로 있는 지금을 최적의 시기로 판단케 했다. 김 전 회장은 2005년 법원으로부터 분식회계와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8년6월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9조9253억원을 선고 받았다. 그가 지금까지 납부한 금액은 840억원에 불과하다.
 
세계경영을 기치로 동유럽과 남미 등 불모지를 누비던 대우의 도전과 기상은 실패와 좌절로 희망을 잃고 있는 오늘날 우리사회에 많은 울림을 준다. 동시에 경영책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로 인해 국가와 시장이 겪어야 할 시련이 얼마나 큰 지도 우리는 대우사태를 통해 정확하게 알고 있다. 노욕이 왜곡을 빌어 발을 붙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기성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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