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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버티는 삶도 재미있습니다
2021-08-03 00:00:01 2021-08-03 00:00:01
요즘 두 가지 재미에 빠졌다. 하나는 운동, 하나는 아들이다. 우선 운동은 몇 달 전부터 퇴근 후 동네 헬스장에 다니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다. 누군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지 않으랴. 하지만 난 누구보다 절박하다. 아들을 혼자 두고 먼저 떠날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최대한 오래, 그것도 건강하게, 생의 끈을 붙잡고 얇고 긴 삶을 꾸역꾸역 이어나가야 한다.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담배도 끊게 됐다. 아직 몇 달 되진 않았지만 아침이 많이 다르다. 전날 술을 먹어도 다음날 숙취 여파가 다르다. 운동과 금연으로 인한 효과를 몸이 느끼고 있다. 운동에 더 재미가 붙을 수밖에 없다. 열심히근육 돼지가 돼 가고 있다.
 
다음은 아들 재미에 빠진 얘기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은 올해 13세이지만 사회성 발달은 아직 3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혼자만 알아듣는 온갖 외계어를 하루 종일 종알종알 내뱉는다. 죽기 전 녀석에게아빠소리 듣는 게 소원이다.
 
올해 초 큰마음 먹고 한동안 중단했던 아들의 언어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센터에 가서 치료받는 게 아니라 집으로 선생님을 모셨다. 그만큼 난 허리띠를 더 바짝 조였다. 그 덕분일까. 아들은 요즘 따라 입을 벙긋거리며 내가 한 말을 따라 하려 안간힘을 쓴다. “~ ~”하며 입을 다물었다 벌리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매일 저녁 아들의 오밀조밀한 입을 바라보는 게 최고의 피로회복제가 됐다하지만 인생 새옹지마. 재미있고 행복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행복한 웃음만큼 이마에 주름이 생길 일도 늘어가고 있다.
 
먼저 딸. 아들과 이란성 쌍둥이인 딸은 요즘 사춘기가 제대로 왔다.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매사에 말투는 까칠하고 행동은 반항적이다. 마침 아내도 컨디션이 엉망이다. 슬슬 갱년기가 시작되려는 건지 늘 몸이 아프다며 누워있기 일쑤다. 까칠한 딸과 더 끼칠한 아내. 그렇게 둘은 매일 전쟁을 치른다. 집안 서열상 맨 꼴찌에 자리한 난 두 여성의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숨소리조차 조심한다.
 
어머니도 걱정이다. 맞은편 집에 사는 어머니는 올 2월 남편(아버지)을 먼저 보내고 홀로 빈 집을 지킨다. 매일 출퇴근길에 건너가 얼굴을 비추지만 그래도 남편 떠난 집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은 집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던 어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빨리 삼도천을 건너고 싶다고 하소연이시다.
 
고독사 청소부 김완이 쓴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으며 눈길을 사로잡던 문장이다. “이제 괴로운지 어떤지도 모르고 그냥 버티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문장. 인생은 이렇게 버티는 것인가 보다. 제각기 지닌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우리는 저마다 삶을 버텨나간다. 나도 버티고 아들도 버티는 중이다. 딸과 아내도 버티는 중이고 어머니도 버티고 있다. 세상도 지금 코로나19’에 버티고 있고.
 
하지만 버티는 삶이라 해서 그 삶이 고달프기만 한 건 아니다. 행복한 삶 안에도 고난이 있듯 버티는 삶 속에도 웃음과 재미와 감동은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 버텨가면서, 하지만 그 속에서 인생을 풍요롭게 할 작은 재미를 찾아가면서. 그렇게 버티며 살면 된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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