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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피장파장’의 궤변에서 벗어나자
2020-10-08 06:00:00 2020-10-08 06:00:00
지난 해 지인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아쉬운 점을 피력한 적이 있다. 아마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각종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시점이었다. 그때 상대의 반응은 박근혜 정권시절 비선실세를 언급하면서 자유한국당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이어갔다. 결국, 민주당에 대한 나의 문제 제기는 자유한국당 지지로 연결지어져버렸다. 당시에는 너무 생뚱맞아 쓴웃음만 짓고 말았지만, 1년이 더 지난 과거의 대화자리가 떠오른 것은, 최근 자주 접하는 댓글을 보면서다. 
 
현 정부를 비판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나 칼럼의 댓글에서 자주 보게 되는 표현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전 정부에서는’으로 시작하는 반박 글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너희는 안 그랬냐?’ 또는 ‘그래도 너희보다는 깨끗하다’는 반응이다. 지지자 입장에서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오롯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상당한 아쉬운 마음이 든다.
 
과거 정권에 빗댄 반응은 개인의 차원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최근 북한이 자행한 우리나라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9월 40대 민간인이 월북하려다 우리 군에 의해 사살당한 사례가 있다"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해상에서 국민의 위험을 감지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우리 군에 대한 문제 제기도 ‘박근혜 정부’로 시작하는 반박을 하는 상황이다.
 
‘너희는 깨끗하냐?’라는 되묻기는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문제는 사라지고 누가 더 깨끗한지 덜 깨끗한지를 놓고 신경전으로 마무리를 짓게 된다. 
 
선거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못나서 이길 확률이 더 높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특히 그렇다. 과거 대부분 정치권력은 그렇게 교체되었다. 새로운 정권이 잘해서가 아니라, 기존 권력이 부패하고 무능해서. 
 
이런 정치 현실에서는 내 비전을 말하기보다 상대와의 차이에 더 급급하게 된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상대도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혹은 상대가 더 잘못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문제없다는 얘기가 더 설득력을 얻는다. 새로운 비전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 상대를 헐뜯어 내가 상대보다는 더 깨끗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유리하다.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서는 특히 그렇다는 것을 정치인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의 발언은 지지자의 발언과는 차원이 다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우리 사회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을 해야 하는 위치에서 그들의 발언은 문제 해결에 혼란을 주기 일쑤다. 솔직히는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와 능력에 의구심마저 든다.
 
만약 자동차 회사에서 부품 결함 대책 회의를 한다고 치자.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에서 ‘예전 사장 때도 그랬다.’라던가 ‘그래도 그때보다는 고장이 덜하다.’ 같은 답변이 나온다면? 과연 그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걸까? 
 
어떤 정부라도 비판과 문제 제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당연히 현 정부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모든 비판에 일일이 전 정부와의 비교를 기준점으로 드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상대만을 기준으로 (내 정치를) 하다 보면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 기준점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피장파장의 반론은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현재에 머물게 하고, 나아가 우리를 퇴보하게 한다. 
 
우리가 지지하고 주장해야 하는 것은 정책과 이념이다. 우리는 자신의 정책과 이념을 대변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지지하고 투표를 했다. 그런데 그 정치인과 정당이 내가 생각했던 정책과 이념을 벗어난다면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지지는 하되, 건전한 비판 또한 계속되어야 한다.
 
때로는 지지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바꿀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지해야 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정책과 이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만 지지하는 사람을 더 온전히 지지할 수 있다. 
 
비판하고, 지지하자. 더 나은 정부를 원하고 요구하자. 우리는 더 나은 나라를 꿈꿀 수 있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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