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크라잉넛이 전하는 ‘25주년 베스트 앨범’ 코멘터리②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올해 4월, 25주년을 맞은 그들을 국내 매체 중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한국 펑크록을 대표하는 관록의 밴드 크라잉넛[박윤식(메인보컬, 기타),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 김인수(아코디언, 키보드)]. 90년대 중반 홍대 작은 클럽이던 ‘드럭’에서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격랑과 함께해 온 세월을 5500자, 2화에 걸쳐 나눠 담았다. [4월30일자, 얼얼한 펑크로 난타한 시대적 격랑, ‘25주년’ 크라잉넛] [5월7일자, 크라잉넛 “25년 간 우리 식대로, 그것이 ‘펑크 정신’”]

 

무더위를 지나 계절이 또 한 번 옷을 갈아입는 시간. 가을 초입. 24일 그들을 서울 마포구 인근의 ‘아지트’ 드럭레코드에서 다시 만났다. 

 

지난 5개월 간 크라잉넛은 CJ아지트 광흥창과 이 곳을 부지런히 오가며 25년의 세월을 앨범 한 장에 촘촘히 각인했다. 원곡 느낌에 충실한 ‘재녹음(리레코딩)’ 이지만 약 1시간에 이르는 16곡 ‘속살’을 벗겨보면 의외의 재미 요소들이 적지 않다. 

 

극단 ‘자랑’ 배우들이 코러스를 덧댄 ‘서커스 매직 유랑단’ 도입부터 원곡보다 강렬한 희극적 생동이 피어오른다. 2분짜리 원곡을 3분대로 늘어뜨린 ‘비둘기’ 후주는 꿈틀거리는 마그마처럼 용솟음친다. 크라잉넛이 데뷔 후 첫 베스트 앨범과 함께 전하는 코멘터리. 수록곡 별 ‘작은 질문’으로 크라잉넛 25년을 압축해봤다. 

 

25년의 내공은 음악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포즈를 취해야하지?"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 촬영이 시작되자 짜기라도 한듯, 재밌는 포즈들을 쏟아낸 밴드 크라잉넛.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트랙9. 펑크걸(1996년 ‘아워네이션’, 1998년 ‘1집 크라잉넛’)

-곡 화자는 기타를 메고 ‘똑같은 세상’을 비판하는 인물이죠. 그 화자가 25년 후인 지금에 살고 있다면 뭐라고 할까요.

 

이상면: 그 시절보다 비슷한 감정을 더 심하게 느끼지 않을까요. 모든 게 획일화되고 천편일률적인 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아주 단적으로 외모 지상주의에 빠져있는 오늘날 한국사회만 봐도 그래요. ‘내면을 더 다듬어라. 개성을 드러내라’ 그럴 것 같아요.

 

트랙10. 밤이 깊었네(2001년 ‘하수연가’)

-크라잉넛의 시기를 크게 나눠볼 때 이 곡은 분명 전환점이었죠? 

 

한경록: 크라잉넛을 동전으로 본다면 이 때 한번 뒤집혔던 셈이죠. 거칠고 펑크적인 그 이면의 저희들, 또 다른 세계인 ‘서정성’을 발견했다고 봐요. 청춘과 방황의 시절 그것들을 동화 같은 낭만으로 표현해보고자 했던 곡입니다.

 

크라잉넛 이상면(기타). 사진/드럭레코드

 

트랙11. 갈매기(1998년 1집 ‘크라잉넛’)

-‘어린 아이’와 ‘어른’의 시각이 교차되는 가사가 짠합니다. ‘어른’으로서의 크라잉넛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상혁: 친구 같은 아빠죠. 근데 어른이 돼 보니 점점 깨달아요. ‘그 시절 어른들의 말씀들’ 맞는 말도 많았단 것을. 자식을 키워보니 그게 다 아들, 딸을 사랑해서 그렇게 하는 말들이더군요.

 

트랙12. 순이우주로(2006년 5집 ‘OK 목장의 젖소’)

-개인적으로 원곡 후반부의 노이즈 범벅은 당시 실험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경록: 음악도 음악이지만 당시는 술로 ‘실험’을 많이 했죠. 아주 기록적으로 마셨죠. 하하.

박윤식: ‘내추럴 본’으로 가자였지, 뭐. 그래야 ‘필(Feel)’이 산다고...

이상혁: 갓 군 제대하고 해방감과 일탈감, 그런 것들이 음악에도 자연스레 녹아들었던 것 같아요.

 

크라잉넛 이상혁(드럼). 사진/드럭레코드

 

트랙13. 뜨거운 안녕(2006년 5집 ‘OK 목장의 젖소’)

-‘헛소리’를 ‘개소리’로 바꿔 부른 이유가 있을까요.

 

이상면: 원래 원곡 가사가 ‘개소리’였어요. 그땐 심의 기준이 엄격해 자체 필터링을 했었어요. ‘같은 하늘 아래 있으니 잘 살아라’. 쿨한 가사니 내용엔 ‘개소리’가 더 맞아요.

 

트랙14. 양귀비(3집 하수연가)

-왜 양귀비였을까요. 

 

한경록: 이름도 색깔도 예쁘지만 마약 성분이 있는 꽃. 함부로 쉽게 피지 못한 청춘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크라잉넛이란 꽃은 지금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나요.

 

한경록: 휴가철이 지나가고 있는 여름 정도? 그래도 뜨거움은 남아있는 해변가 같은. 청춘, 어른의 정의가 사람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요.

 

드럭레코드 합주실에서 연습 중인 크라잉넛.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트랙15. 좋지 아니한가(2007년 동명의 영화 수록곡)

-크라잉넛 식 블랙유머인가요.

 

이상혁: ‘개판’ 같은 현실에 대한 반어법이죠. 노래는 밝은데 한없이 밝지만은 않은 가사. 크라잉넛의 음악들은 대체로 그래요.

 

트랙16. 다죽자(1999년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

-이 곡을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수미상관’처럼 마지막은 2집 수록곡으로 마무리 되네요.

 

한경록: 끝과 시작에 관한 얘기예요. 진짜 죽자는 건 아니고 쏟아내자, 그 뒤에 다시 살자, 그렇게 살아가자는 얘기. 삶은 늘 역설적이죠. 힘들지만 그럼에도 축제니까. ‘나도 거짓말쟁이고 너도 거짓말쟁이지. 인간 다 거기서 거기야,’ 깊은 생각은 아니지만 그런 말들이 뭐.. 위로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크라잉넛 박윤식(보컬). 사진/드럭레코드

 

밴드는 앨범을 오는 11월 LP로도 발매한다. 곧 개최할 25주년 공연과 전시 준비에도 열중이다.

 

긴 시간의 코멘터리를 마친 밴드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25주년 앨범은 어떤 여행지에 가까울지.

 

한경록: 시간으로 따지면 옛날 노래들이 많으니 90년대 홍대 내지 드럭이 아닐까.

박윤식: 스피커에 노이즈가 지글대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뜨거웠어요. 원자로처럼.

한경록: 음악, 문화를 즐기려는 간절한 느낌. 맞아요. 그 시절 재밌었던 것 같아요.

 

권익도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