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감독들이 사랑하는 영화 감독’이란 칭호가 가장 어울리는 연출자. 사실 본인에겐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동료들도 자신이 만든 콘텐츠의 관객이자 수요자일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료다. 연출자, 즉 감독은 대중들의 입맛과 취향의 흐름 대중성을 모두 안고 그 안에서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색깔을 투영시킨다. 이런 과정 속에서 풀어보자면 이경미 감독은 사실 충무로에서 가장 독보적인 여성 감독이다. ‘미쓰 홍당무’ 그리고 ‘비밀은 없다’ 단 두 편으로 충무로의 중심으로 진입했다. 공통적으로 두 편 모두 화려한 주목을 받았다. 다른 점이라면 전작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한 반면, 후속작은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이경미 감독. 사진/넷플릭스
5일 오후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이 감독은 “‘비밀은 없다’의 처절한 실패가 사실 이번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의 연출을 선택하게 만든 용기를 줬다”고 전했다. 이미 콘텐츠 시장이 다채널 시대로 접어든 상황에서 여러 영화 감독들이 스크린과 OTT플랫폼을 넘나들고 있다. 이 감독의 사수인 박찬욱 감독 역시 국내 OTT플랫폼 ‘왓챠’를 통해 ‘리틀 드러머 걸’을 선 보인 바 있다. 칸-오스카 동시 석권 타이틀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도 ‘넷플릭스’를 통해 ‘옥자’를 이미 선보였다.
이 감독이 말한 처절한 실패의 원인은 본인도 여러 번 언급한 ‘극명한 호불호’에 있다. 앞선 두 작품 모두 ‘이경미의 색깔’이라고 할 정도로 일반적인 영화 전개의 작법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두 영화를 본 관객들은 분명히 수긍할 지점이다. 장르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엇박자의 호흡과 연출, 점프컷 수준의 편집, 사회로부터 소외된 주인공의 과장과 생략을 반복한 연출 등. 이런 점은 이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한 대중들의 진입 장벽을 한 없이 높여놨다. 단 두 작품 만에.
이에 대해 이 감독도 충분히 수긍을 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최근 공개된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앞선 두 작품과 달리 6부작의 드라마 형태이기에 그 낯선 이질감은 조금 덜한 느낌이다.
이 감독은 “난 기본적으로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한다. 특히 정보가 중복되는 것에는 극단적인 거부감이 있다”면서 “내가 장면마다 힌트와 단서를 많이 숨기는 스타일인데, 그걸 찾아내주시고 그 과정에서 내 의도를 파악해서 나와 통한단 걸 느껴주시는 과정이 너무 좋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이질적이고 낯선 느낌이란 표현에 “(웃음) 인정한다. 내 연출이 결단코 ‘easy going’(이지 고잉: 쉽게 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어렵게 가는 과정이 분석되고 회자되길 희망한다”면서 “비난을 해도 좋다. 그럼 그 비난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난 싫다’라고 한다면 그것조차 내가 연출한 작품에겐 재작업 재창조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작품의 한 부분이라고 난 생각한다”고 전했다.
스크린에 선보인 앞선 두 편의 영화와 기본적인 연출 스타일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은 큰 틀에서 벗어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앞선 영화 두 편에 비해서 ‘유들유들’해 진 점은 분명했다.
이 감독은 “영화는 2시간 안에 모든 걸 집어 넣어야 한다. 반면 넷플릭스 시리즈는 6부작이란 긴 호흡이 있다”면서 “이번 ‘보건교사 안은영’은 원작 소설이 있다. 난 그걸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기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읽고 느낀 좋은 점을 덧입히고 색칠을 더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전체 시리즈로 봤을 때 여성 히어로 서사의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래서 이번 6회 안에 난 밑밥을 까는 역할이자 미션을 수행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고 웃었다.
그는 이번 ‘보건교사 안은영’을 설명하면서 ‘호불호’란 단어를 가장 많이 섰다. 그 점은 앞선 스크린 작품 두 편을 통해 자신에게 덧칠해진 일종의 선입견일 터. ‘직관적이지 않은’ 연출 방식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감독은 “(영화 두 편에서 선보인 연출에선) 그럴 수도 있다”고 웃으면서도 “이번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말 직관적이다(웃음). 그냥 다 눈으로 보이지 않나. 보시고 재미를 느끼신 뒤 책을 한 번 보시고 다시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관람을 해주신다면 제 의도는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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