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 "표현 자유"VS"인권 침해" 팽팽
청구인 "진실이 범죄라면 위축될 수밖에"…법무부 "진실 밝혀도 사생활 침해면 위법"
입력 : 2020-09-10 17:11:05 수정 : 2020-09-10 17:20:1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형법 조항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여부를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청구인 측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웠고 법무부 측은 인격이 침해될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헌법재판소는 10일 오후 2시 헌재 대심판정에서 A씨가 "형법 제307조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1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표현의 자유 침해 여부에 관한 사건' 헌법소원 공개변론에서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뉴시스
 
A씨는 2017년 8월 동물병원에서 치료받은 반려견이 실명 위기에 놓이자 담당 수의사의 잘못된 진료행위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형법 307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형법 310조는 적시된 내용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며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A씨의 대리인은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유이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죄가 돼서는 안 된다"면서 "진실이 범죄라는 기본 개념을 가지면 진실의 범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A씨 측 참고인으로 김재중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는 게 민주사회"라면서 "사실이 적시돼 훼손될 가능성이 있는 명예는 과장된 명예, 그 과장된 명예를 헌법이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입법이 과잉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법으로 유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일본 정도밖에 찾을 수가 없다"면서 "미국 일부 주가 형사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만 기소 사례는 없고 영국과 독일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국가를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 측은 사실이라도 인격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단 측은 "비록 진실한 사실의 적시라도 그로 인해 외부적 명예의 치명적 훼손은 가능하다"며 "공표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성적 지향, 가정사 등 사생활인 경우, 이를 공표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기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명예 보호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하는 가치가 되고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기본권"이라며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반하지 않으며 입법 목적 달성의 적절한 수단이다"라고 부연했다.
 
국가 측 참고인으로 나선 홍영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관계성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최종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가치는 명예"라면서 "법률 시스템 만들어져 있는데 자기가 당한 억울한 것을 폭로하고 활동할 수 없게끔 망신 주는 사적인 제재 방식을 활용하는 길을 열어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온라인상에 성범죄·강력 사건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게재한 '디지털 교도소'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이름과 사는 곳 등을 올린 '배드파더스' 등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미투(Me too)' 피해자들이나 공익제보자들에게 명예훼손의 굴레를 씌워 입을 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이날 재판부에서는 심각해진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에 제재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영진 재판관은 "고 구하라씨 사건도 있었고, 일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여성이 악플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있었다"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폐지되면 이 같은 문제가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헌재가 해당 형법 조항에 대해서 위헌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처음이다. 다만 지난 2016년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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