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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조원태·현민 남매에 과연 유익할까
2020-09-09 06:00:00 2020-09-09 08:34:15
국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 4월 코로나19 사태로 고전하던 한진그룹의 대한항공에 신규 자금 1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운영자금 2000억원을 지원하고, 70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과 3000억원가량의 영구채를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대한항공이 코로나19 사태로 항공기 승객이 급전직하하고 자금부족 우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 항공사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기에 두 국책은행이 나선 것이다. 말하자면 구제금융을 제공한 셈이다.
 
덕분에 대한항공은 위기를 넘어서고 경영을 정상화할 시간을 벌었다. 그러자 대한항공은 즉시 감사의 뜻을 표하는 입장문을 내놓았다. 코로나19로 항공기의 90%가 운항하지 못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와 국책은행이 때맞춰 유동성 지원방안을 마련해 줘 고맙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진그룹은 뜻밖의 인사를 단행했다.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지난 1일 계열사인 ㈜한진의 새로운 임원으로 선임됐다. 조현민 전무는 항공·여행정보 제공업체인 토파스여행정보의 부사장도 함께 맡게 됐다. 그녀는 이미 정석기업 대표이사 부사장도 맡고 있다. 그러니 그룹 내 4개 계열사의 임원 자리를 거머쥔 것이다. 무려 4개나!
 
조현민 전무의 이름은 지난 2018년 3월 '물컵 갑질' 사건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 사람이 다 알게 됐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의 이미지는 급격하게 추락했다. 인격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 재벌총수 일가의 족벌경영 폐해가 다시 주목받게 됐다. 가족들의 갑질 문제도 속속 드러났다. 한진그룹의 주력기업인 대한항공의 신인도까지 악화됐다. 국민여론이 악화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 기관투자가들로부터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특히 강성부펀드와의 날카로운 대립이 일어났다. 이는 '3자연합'과의 경영권 다툼으로 번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문제의 장본인을 다시 내세워도 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굳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구제금융이나 다 갚고 나서 고려해야 순리에 맞을 것이다.
 
대한항공에 구제금융을 준 것은 우선 항공산업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항공사와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많은 종업원의 고용을 안정시키려는 것이다. 아울러 그룹의 경영을 보다 투명하고 튼튼하게 재구조화하도록 유도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이를 위해서는 족벌경영의 악습도 종식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무언의 요구를 조원태 회장과 조현민 전무를 비롯한 한진그룹 경영진은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경제원칙대로 한다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은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넘기는 것이 순리다. 재벌은 아예 해체된다. 지난날 많은 재벌이 이런 과정을 통해 정리됐다.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은 당연히 박탈된다. 재벌 오너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라는 극한의 상황을 맞고 있다. 이 때문에 그런 원리원칙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불가피하게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을 지켜주고 있다. 나름대로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축적한 경영노하우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족벌경영까지 그대로 인정했다고 마음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진그룹은 과거의 악습을 답습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장 쉽고 편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조원태 회장과 조현민 전무 남매가 경영권을 지키는 데도 유익하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도리어 신뢰회복이 지연될 수도 있다. 앞으로 행동주의펀드나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더 힘겨운 대립을 겪을 가능성도 커졌다. 강성부펀드는 이미 "책임경영에 대한 기대를 정면으로 저버리고 한진그룹의 기업가치를 저해시키는 행동"이라며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이같은 대립구도가 심화될 경우 경영권지키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 도리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지킨다고 해도 적지 않은 시련과 출혈을 겪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한항공에 제공되는 구제금융 가운데 영구채 3000억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6월 이후에는 주식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채권이기 때문이다. 주식으로 전환된 후에는 조원태·조현민 남매가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지키려고 할 때 복병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영구채가 주식으로 전환돼도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 아직은 알 수는 없다. 만약 대한항공이 경영정신을 새로이 하지 않고 악습을 되풀이한다면, 정부의 태도가 바뀔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지만 결국 대한항공 하기에 달려 있다.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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