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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두 남자의 구원이었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하드보일드’ 스타일 속 두 남자의 격렬한 추격…감정과 목적의 충돌
동전의 ‘양면성’ 은유의 직설, 하나의 감정을 공유한 두 남자의 ‘존재’
2020-07-30 00:06:35 2020-07-30 06:21:08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종교적이다. 구원의 본질적 근본이 담겨 있다. 제목이 그 본질을 얘기한다. 두 남자가 처한 상황을 본질에서 접근한 단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종교적이며, 종교의 근원적 질문이자 그 질문의 상징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모든 것의 이면은 이 영화의 스타일이 들춰낸다. 모든 본질과 근원은 동전의 양면성을 지닌다. 제목이 담은 내면의 본질은 이란 감정의 힘을 말하지만 반대로 그 힘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꽁꽁 얼어 붙은 감정의 차가움을 얘기한다. ‘하드보일드스타일을 끌고 온 이유가 그래서였다. 인남(황정민)이 구원의 상징적 의미를 담은 근본이라면, 레이(이정재)는 이 영화가 말하는 모든 감정을 온도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제3자의 시선으로서 공감의 호소를 터트리는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킨다.
 
 
 
영화는 시작부터 많은 것을 지워내고 출발한다. 한 남자가 있다. 목소리가 들린다. 차갑다. 죽여야 한다. 이유는 딱히 필요 없다. 나쁜 놈이다. 그래서 죽여야 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 사람을 죽인다. 매 마른 감정의 목소리였던 그 남자. 사실 뜨거웠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숨 쉬는 그 남자. 죽은 사람 앞에서 그는 숨을 고른다. 피곤하다. 죽이는 게 일이다. 그 남자는 동트기 전 새벽녘 하늘을 바라보며 사라진다. 그게 일상이다. 인적이 드문 길거리. 그 남자의 뒷모습. 그게 이 남자다. 그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담긴 푸른 빛의 세상은 이 남자가 사는 세상이다. 침잠된 감정의 물결이 일렁인다. 인남이란 이름의 이 남자. 해가 뜬 세상 그리고 해가 진 세상 속에서 그는 그림자다. 인파 속에서 삶 속에서 그는 언제나 혼자다. 세상 속에서 사라지고 싶다. 이제 그는 죽이는 일에 지쳤다. 그게 오프닝 시퀀스에 담긴 인남의 하드보일드. 절제와 압축의 미학이라기 보단 은유의 직설이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레이가 등장한다. 움직인다. 하지만 그는 죽은 것 같다. 그의 눈가에 비춰진 어둔 감정은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바닥조차 숨기고 싶다. 그 역시 세상의 시선에서 스스로를 숨기고 싶은 듯싶다. 시커먼 눈동자 주위에 들이쳐진 새까만 선글라스 너머 시선은 무언가를 찾는다. 형을 죽인 한 남자를 찾는다. 복수다. 복수란 감정은 무언가를 들끓게 한다. 하지만 레이의 감정은 피부를 태울 만큼 차갑다. 극한의 차가움은 오히려 모든 것을 태울 만큼의 뜨거움을 숨기고 있다. 아직 레이는 뜨겁고 싶지 않다. 자신을 뜨겁게 달궈줄 동기가 필요하다. 그게 복수다. 복수는 마주해야 한다. 바라봐야 한다. 그는 누군가를 봐야 한다. 그는 바라보는 삶 속에서 자신의 이유를 찾는 남자다.
 
인남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의 다름을 쫓고 있었다. 평생을 죽음 속에서 살아 온 삶이었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살아갈 수 있던 남자다. 하지만 그는 이제 죽고 싶다. 죽이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 죽이는 걸 그만하는 건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건 죽음이다. 결국 그는 죽는 길이 사는 길임을 알게 된다. 단골 식당 벽에 붙은 사진 한 장 속 그곳’. 자신이 행복하게 죽을 수 있겠다싶은 곳.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 거기서 죽고 싶다. 인남은 모든 것을 정했다. 이제 죽으러 가면 된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하지만 그의 죽음은 진짜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길을 바라보게 된다. 과거의 여자, 그 여자의 죽음. 그리고 남은 소녀. 과거의 인남. 그는 과거를 통해 자신이 진짜 죽을 수 있고, 또 어쩌면 진짜로 살 수 있는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제 인남은 살기 위해 죽이는 것이 아닌 죽이는 것을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 진짜를 보게 된다. 소녀를 만나야 한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
 
레이는 죽어가던 자신을 살릴 그것에게 점차 다가서기 시작한다. 인남이다. 그를 만나야 한다. 죽은 형의 복수일 뿐이다. 하지만 사실 레이에게 복수는 중요하지 않다. 살기 위해 죽이는 것이 아닌 그저 죽이는 게 사는 것의 일부였던 레이다. 언제부턴가 레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이처럼 집착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차갑고, 또 너무도 차가워서 모든 것을 태워버릴 정도로 뜨거운 무언가를 감추고 있던 레이의 내면은 지금까지 그 뜨거운 무언가를 끄집어 내줄 그것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그것을 끄집어 내줄 한 남자 인남이 레이 눈앞에 나타났다. 레이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복수를 위해 시작했지만, 사실 그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시작한 것이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극도로 절제된 얘기다. 한 남자가 한 소녀를 구하는 얘기다. 너무도 많은 애기다. 너무도 흔한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에 하드보일드를 덧입혔다. 인물의 서사에 감정을 덧칠했다. 모든 존재의 양면성을 충돌시켰다. 인남과 레이는 사실상 한 사람의 이쪽과 저쪽처럼 존재한다. 인남의 차갑지만 뜨거운 내면과 레이의 차갑지만 뜨거운 감정은 같으면서도 완벽하게 다른 지점에서 존재하는 방식처럼 충돌하는 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하드보일드가 만들어 낸 스타일이다.
 
두 남자의 다르면서도 같은 내면과 감정의 충돌은 격하다. 어느 한 쪽의 부족함이 없기에 파열음이 터진다. 소리가 찢어진다. 공간이 뒤틀린다. 관객들의 가슴은 오히려 점점 더 차가워진다. 두 남자의 뜨거운 격돌은 기묘할 정도로 관객의 감정을 얼려 버린다. 죽음으로 불린 두 남자의 격돌이 만든 기괴함 때문이다. 그리고 인남도 레이도 점차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지켜야 하고, 왜 빼앗아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을 잃어버린다. 남은 것은 이제 존재에 대한 이유뿐이다. 최소한의 이유만이 남게 된다. 그 최소한이 다만 악에서 구해 줄동아줄이다. 그 줄을 잡을 사람은 누구일까. 반대로 그 줄을 잡고 싶은 사람은 있을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다만이 결국 인남과 레이가 바라본 지점이라면 악에서 구하소서는 관객의 감정적 선택이 기울어지는 균형점일 것이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액션이란 양념은 이 영화에선 딱히 의미가 없다. ‘하드보일드란 외피와 내피의 조화는 인남과 레이의 마지막 표정에서 모든 얘기를 한다. 인남과 레이 두 남자의 시선이 차갑지만 불처럼 뜨거운 감정을 담고 있는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있을까. 결국 구원은 인남과 레이에게 얼음처럼 차갑지만 불처럼 뜨거운 목적과 목표였을까.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인남의 마지막 표정은 그래서 뜨겁다. 레이의 마지막 표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갑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두 남자에게 구원을 선물한다. 오는 8 5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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