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8분 46초'와 차별금지법
입력 : 2020-07-03 06:00:00 수정 : 2020-07-03 06:00:00
이강윤 언론인
충일(充溢).
 
그릇이 아무리 커도 계속 물을 붓다 보면 어느 순간 흘러넘친다. 흘러넘치게 하는 그 마지막 한 방울, 충일이다. 안간 힘을 쓰며 물을 어떻게든 그릇 안에 담아두려는 표면장력을 뚫고 흘러넘치게 하는 그 한 방울이 때론 역사를 바꾼다. 김주열, 전태일, 윤상원, 박종철, 이한열, 추모식이나 추모일도 없이 스러져간 수 많은 희생자들…. 모두 시대에 획을 그은 물방울이다.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의 민주화와 언론자유, 인권 강화를 이뤄왔다.
 
비무장 시민 플로이드를 압사시킨 '8분 46초'간의 미 경찰 과잉진압건이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로 확산됐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과거 아프리카 콩고 식민통치시절 수 백만 콩고인을 숨지게 한 국왕 레오폴트2세의 동상이 하룻밤 새 "수치"라는 글자로 먹칠됐다. 오랜 동안 국위를 떨친 대왕으로 추앙받던 그였다. 런던에서는 2차세계대전 영웅이자 (영국의) 위대한 정치인으로 대접받던 처칠 동상도 훼손됐다. 그가 인종차별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모임은 커녕 외출 자체를 기피하던 시민들이 경찰의 살인진압에 항의하며 몰려나와 집회/시위를 벌였다. 파장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구호도 "정의없이 평화없다"(No justice, No peace)로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또는 외면하고 싶어서-항의 시민을 좌파라 공격하며 국민분열을 유도했다. 대통령선거 계산 상 그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는 시대정신을 놓치고 있다. 그의 즉흥성과, 오로지 미국의 '금전적 이익'만을 목적으로 펼친 일방 외교는 '볼턴회고록'을 통해서도 낱낱이 드러났지만, 공권력에 의한 시민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걸 보니, 민주의 옷을 입은 독재의 그림자가 너울거린다. 트럼프는 돈이,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가 최우선이었다. 출발부터 방점이 달랐다. 볼턴 집필의 본시 의도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역설적으로 남북미 교섭과정의 팩트를 잘 보여준다. 중요한 교훈이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울려퍼진 총성 한 발이 1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었다.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보자면 이번 사태도 사라예보의 총성과 같지 않을까. 바야흐로 세계는 '반억압, 반권위, 반차별'의 시대로 이동중이다. 개개의 요구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면 시대정신을 이룬다. 시대정신을 놓치면 문명에서 뒤처진다.
 
<차별금지법>은 그간 국회에서 일곱 번이나 좌절됐다. 일부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때문이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이념에 입각, "성별 장애 나이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등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의견 성적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벌써 13년 전인 2007년 처음 입법예고됐는데, 일부 기독교단체가 '성적 지향' 포함 여부를 두고 강력 반대했다. 동성애 부분이 핵심이었다. 법제처 심의과정에서 학력, 성적 지향, 출신국가 등 7개 항목이 제외된 채 진행됐다. 그러자 여러 단체에서 차별금지법이 아닌 '차별조장법'이라며 반대에 나섰다. 완전한 차별금지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또,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금지법제정안’에 있던 △시정명령권 △이행강제금 부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이 입법예고 때는 슬그머니 빠져버려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결국 이 법안은 2008년 5월 국회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이후로도 제-개정 시도가 여섯 번이나 있었으나, 매번 비슷한 양상으로 무산됐다.
 
새 국회 개원을 계기로 재논의되는 핵심사항은, 그 '7개 항목'도 빼지 말고 '완전한 차별금지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역시 기독교계는 벌써 반발에 나섰다. 정치권은 기독교계 표를 의식해서인지 어쩡쩡한 상태다. 지금도 '성별 출신지 용모 등에 의한 차별 금지'라는 규정이 시행중이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문제다. 그 어느 총선보다도 시민들 요구가 명확히 분출돼 사실상의 선거혁명을 이룬 이번 국회에서는 꼭 통과되기를 바란다. 오로지 국민과 시대정신을 보고 뚜벅뚜벅 가는 것이 국회의 존재 이유다.
 
세계는 연결돼있다. 코로나로도, 기름값으로도, 달러로도, 인권으로도. 촛불혁명으로 무자격 대통령을 하야시킨 한국을 세계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도약"이라고 평가했다. 차별금지법을 계속 묵살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않을 뿐더러, 초기 기독교정신과도 배치된다.
 
이강윤 언론인(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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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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