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기업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인 배상 의무를 지워야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산재 사고 시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해 손해배상 금액을 현재의 3배, 많게는 10배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산업재해로 사망할 경우 위자료 지급 상한선은 1억원. 2015년 정해진 이후 그대로다. 산재는 기업이 주의의무를 저버려 발생하는 사건이고 사전에 충분히 예방장치를 마련할 수 있음에도 운전자 과실로 발생하는 교통사고와 위자료 수준이 동일하다.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은 경우는 금액이 더욱 줄어든다.
지난 2016년 8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참여연대 등이 징벌적 손해배상법 입법청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조계는 산재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이 손해배상 금액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다. 영남지역의 한 지방법원 판사는 "형사상 처벌을 강화해 책임자에 대표이사까지 실형을 선고한다고 해도 회사 입장에서는 크게 손해가 아닐 것"이라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다른 책임자나 대표이사를 임명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재가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불법행위로 인한 불이익이 현장에 안전 관리자를 배치하고 안전교육을 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라면서 "기업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금전적인 배상 의무를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근로기준법상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안도 산재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민사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적으로 무분별하게 재산 또는 신체상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행한 경우, 가해자에게 손해 원금과 이자뿐 아니라 형벌적인 요소로서의 금액을 추가로 배상하게 하는 제도다.
해외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다양한 분야에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영국이 1763년 가장 처음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미법계 국가들도 오래전부터 이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전체 손해배상 청구소송 중 약 10%가 징벌적 손해배상 형식으로 청구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기업들이 산재 사망 사고 유족에 수십억을 배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기간제근로자법, 파견근로자법 등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돼있긴 하다. 하지만 법원이 손해배상의 목적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며 제한배상주의 원칙을 취하고 있고 민형사상 책임분리라는 원리와 상충된다고 하면서 손해배상액이 높게 책정된 사례는 거의 없다.
법무법인 세창의 김현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미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수백억원대의 배상 의무를 지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그러면 당연히 기업은 같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비용을 들이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잦은 소송과 과잉 처벌로 인한 경제활동 위축 등을 이유로 반대해온 측면이 있다"면서 "책임의 한도를 손해액의 3배 수준으로 하는 등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정한다면 동일한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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