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침입자’, 두 개의 시선에 담긴 의심과 혼란
25년 만에 나타난 여동생, 그리고 죽은 아내…기억의 혼란
일상으로 파고든 낯선 존재 vs 일상을 지키려는 다른 존재
입력 : 2020-05-29 00:00:05 수정 : 2020-05-29 00:00:0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침입자’는 끝없이 질문한다. 익숙한 것,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그저 그렇게 처음부터 존재해야 했다고 믿었던 것에 대한 질문이다. 가족이 그렇다. 집이 그렇다. 가족과 집은 공간이다. 그 공간이 정말 당신이 알고 있던 ‘그것’인지 묻는다. 그래서 이 영화 속 가족과 집은 이질감이 넘친다.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이상하다. 처음부터 ‘침입자’는 제목처럼 익숙했던 공간에 들어 온 낯선 무엇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되묻는다. 화면을 바라보고 그 질문을 받아 보면 기묘할 정도로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의심을 한다. 보이는 게 진짜인지, 아니면 보는 게 진짜인지. 스릴러 장르로선 처음부터 중반 이후까지 끌고 가는 공간과 인물 심리와 전체 미장센이 동력으로 꽤 그럴 듯 하게 작동한다. 베스트셀러 ‘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란 점에서 ‘침입자’의 시작부터 과정 그리고 결말까지의 얼개는 의외로 관객을 끌고 가는 방식을 잘 터득하고 있었다.
 
 
‘서진’(김무열)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일에 빠져 살고 있지만 아내를 잃은 고통을 잊기 위함 같다. 친한 정신과 전문의를 통해 아내를 죽인 뺑소니 범인을 찾으려 최면 치료를 거듭한다. 최면 치료 때문 같다. 기억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서진은 아내를 잃은 슬픔과 함께 어린 시절 놀이동산에서 동생 ‘유진’을 잃어버린 아픔도 있다. 두 개의 기억이 뒤섞이면서 그는 일상의 어려움을 호소할 정도가 된다. 그래서 혼자 남은 딸을 키우는 것이 힘들다. 딸은 죽은 엄마가 캐나다에 가 있는 걸로 안다. 딸을 위한 서진의 선택이었다. 서진은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을 뒤로 하고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딸과 함께 들어간다.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딸을 위한 또 다른 선택이다.
 
영화 '침입자'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그런 서진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25년 전 잃어버린 동생 유진을 찾았단 전화다. 낯선 여인은 자신이 유진(송지효)이라고 한다. 서진은 낯설다. 하지만 유진은 모든 게 낯이 익은 듯하다. 25년 만에 처음 만난 서진에게 대뜸 “오빠”라고 부른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부모님에겐 “아빠” “엄마”라며 살가운 딸 노릇을 한다. 의심스럽다. 하지만 의심할 수도 없다. 유전자 검사 결과 유진은 서진의 동생이 맞다. 이제 유진은 서진이 살고 있는 부모님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걷지 못하던 엄마를 대신해, 죽은 아내의 기억에만 머물러 있는 서진이 못마땅한 아빠에게 유진은 기분 좋은 변화다. 엄마를 기다리는 서진의 딸도 변화한다. 웃지 않던 딸이 웃는다. 먹지 않던 반찬도 먹는다. 유진은 기분 좋은 변화를 가져온다. 하지만 그 변화가 의심스럽다. 서진에게 유진은 변화가 아니다. 그저 낯선 침입자다. 의심은 드문드문 사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제 의심이 아니라 진짜가 된다. 반면 서진의 가족 한 가운데로 들어온 유진은 이제 완벽한 ‘진짜’가 된다.
 
영화 '침입자'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침입자’는 진짜와 가짜의 싸움이다. 우선 25년 만에 나타난 동생 유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두뇌 싸움이 펼쳐진다. 영화에선 유진이 진짜란 증거가 차고 넘친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유전자 검사 결과다. 믿음도 있다. 서진의 엄마와 아빠가 믿는다. 서진도 믿기 시작한다. 하지만 석연치 않다. 주변 정황이 그렇다. 드문드문 의심이 고개를 든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영화 속 서진도 가끔씩 의문을 품는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과 상황이 이상할 정도다. 그래서 의심이 든다.
 
진짜란 증거가 차고 넘치면, 가짜란 증거도 차고 넘친다. 유진은 너무 깊게 들어와 버렸다. 가족이기에 당연하다. 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에 그는 서진 가족의 모든 것을 바꿔 버렸다. 부모님이 변했다. 서진의 딸이 변했다. 몇 년째 서진 부모의 집안일을 도맡아 주던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메모 한 장만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이상하다.
 
영화 '침입자'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혹시 서진의 기억이 왜곡된 것일까. 영화 시작부터 등장한 최면치료, 그리고 아내의 죽음과 동생의 실종 사건이 뒤엉킨 기억. 군데군데 드러나는 서진의 공황증상. 이건 분명 서진의 과대망상이 만들어 낸 의심일 수도 있다. 결국 ‘침입자’는 유진이 아닌 서진일 수도 있을까.
 
가족 모두는 편안하고 평화롭다. 걷지 못하던 엄마는 유진이 들인 물리치료사로 인해 건강이 좋아진다. 소리도 없이 사라진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를 대신해 새로 온 젊은 입주 도우미는 농인 물리치료사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란다. 서진의 아빠와 단란한 모습을 보이는 젊은 입주 도우미, 농인 물리치료사와 필요 이상으로 신체를 접촉하고 있는 서진의 엄마, 캐나다에 있는 걸로만 아는 엄마의 빈자리를 고모인 유진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딸의 모습. 평화롭고 단란하다. 하지만 서진의 눈엔 이상하다. 괴이하다. 이질적이다. 혹시 서진의 기억이 진짜 침입자일까.
 
영화 '침입자'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침입자’는 익숙한 공간에 들어온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얘기다. 존재는 물리적일 수도 있고, 무형일 수도 있다. 무형은 의심이다. 서진의 변화되는 감정은 의심이 밑바탕이다. 그는 기억의 왜곡을 스스로 의심한다. 하지만 정황은 의심을 진실로 끌고 간다. 그럼 유진이 ‘침입자’다. 하지만 주변 모든 것은 유진을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돌고 돈다. 유진을 의심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제 ‘침입자’는 묻는다. 누가 진짜 침입자인지, 서진인가, 유진인가.
 
‘침입자’는 켜켜이 의심을 쌓아간다. 기존 장르에서 사용되고 장치로 활용한 사건을 배제한다. ‘침입자’의 의심을 만드는 동력은 상황이다. 모든 상황이 의심을 만들어 낸다. 복선이다. 복선이 실제인지 상상인지도 의심하게 만든다. 서진의 기억은 그래서 완전치 않다. 그 지점을 끌고 온다. 어느 순간 관객은 서진의 기억을 따라 상황을 주지하게 된다. 관객의 시선은 서진의 시선이 된다. 이제 의심은 관객의 몫이 된다.
 
영화 '침입자'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침입자’는 시선이 두 개다. 서진의 시선에선 의심과 혼란이 존재한다. 일상으로 파고든 유진의 존재는 낯선 존재일 뿐이다. 서진의 의심과 혼란 균열은 의외로 설득력을 얻는다. 그래서 스릴러 장르로서 ‘침입자’의 얼개는 의외로 빼어나고 수려하다. 사건을 배제하고 상황과 감정 심리로 끌고 가는 방식이 눈에 띈다. 관객을 이야기 한 복판으로 끌고 들어오는 힘이 강하다. 반면 유진의 시선으로 보면 균열이다. 없던 공간에 들어온 유진은 분명히 ‘침입자’다. 하지만 유진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가져다 놓는다. 제자리로 있어야 할 것을 제자리로 옮겨 놓는다. 그걸 부정하는 서진이 불편하다. 유진은 균열을 막으려 한다.
 
영화 '침입자'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손원평 감독은 데뷔작을 선보이면서 신인 답지 않은 과감한 선택을 했다. 감정과 심리를 선택한 방식은 양날의 검이다. 사건이 배제된 상황은 영화적 재미를 반감한다. 반면 장르적 특색은 깊이를 더한다. ‘침입자’는 반전이 있다. 그 반전이 관객을 끌어 들인 장르와 스토리의 힘을 반감시켰다면 약점이 될 것이다. 반대로 현실감을 끌어 올렸다면 방점이 될 것이다.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개봉은 6월 4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