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해당 기사에는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다.)
인도의 한 빈민가에서 아동 재단을 운영 중인 이자벨(미셸 윌리엄스 분)은 세계적 미디어 그룹 대표 테레사(줄리안 무어 분)로부터 거액의 후원을 제안 받는다. 단, 기부 조건이 반드시 이자벨이 뉴욕으로 와야만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었다. 낯선 후원자에 대한 경계심에도 이자벨은 거액의 후원금 때문에 뉴욕으로 향한다. 테레사는 찾아온 이자벨에게 자신의 딸 그레이스(애비 퀸 분)의 결혼식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한다. 결혼식에서 이자벨은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사진/영화사 진진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은 덴마크 출신 수잔 비에르 감독이 2006년 연출한 ‘애프터 웨딩’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원작과 달라진 점은 ‘크로스 젠더’다. 리메이크된 작품은 원작의 이야기 구조만 따왔을 뿐 주연 배우의 성별을 교체했다. 원작은 제이콥(매즈 미켈슨 분)과 욜젠(롤프 라스가드 분) 두 남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반면, 리메이크 작품은 이자벨과 테레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공교롭게도 원작은 여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지만 리메이크작은 남성 감독으로 크로스젠더 됐다.
‘크로스젠더’가 되면서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에는 변화가 생겼다. 전통적으로 부성애는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울타리와 같은 책임감을 강조한다. 원작은 제이콥과 욜젠을 통해서 전통적 부성애를 부각시키며 아버지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크로스젠더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은 어머니의 존재감에 대해 말한다.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을 이끌 만큼 바쁜 테레사를 통해 워킹맘의 고충을 드러낸다. 일과 육아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테레사를 통해 자녀들에게 엄마의 존재감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한다.
이자벨과 테레사는 전혀 다른 행색을 하고 있지만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은 각자 제이와 그레이스를 만나는 방식이 비슷하다. 이자벨은 자신이 낳은 딸을 입양 보낸 뒤 인도에서 길거리에 버려진 제이를 데려다 자식처럼 키운다. 테레사는 오스카와 결혼을 하면서 의붓딸 그레이스가 생긴 뒤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된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이자벨은 뉴욕에 남아야만 거액의 후원금을 주겠다는 테레사의 제안에 반발을 한다. 하지만 테레사가 숨기고 있던 진실을 알게 된 뒤 마음을 열게 된다. 테레사가 숨긴 진실은 그가 침실에서 홀로 남아 약을 삼키는 모습을 통해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짐작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친 딸 그레이스가 결혼 뒤 겪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테레사가 아닌 자신에게 찾아와 털어 놓는 모습을 보며 엄마의 존재감에 대해 고민을 하고는 뉴욕에 남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녀에게 미치는 엄마의 존재감에 대한 공감이 이자벨과 테레사의 날 선 관계가 무너져 내리게 한다.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사진/영화사 진진
영화는 단순히 남성 배우에서 여성 배우로 크로스젠더를 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부부의 모습마저도 변화를 줬다. 테레사의 남편 오스카(빌리 크루덥 분)는 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많은 부분을 아내에게 의지한다. 권위적이고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이해심 많은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히려 테레사는 세계적 미디어 그룹을 이끄는 진취적이고 결단력 강한 여성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크로스젠더 리메이크와 더불어 배경 역시 코펜하겐에서 뉴욕으로 옮겨간 것도 원작과의 차별성이다. 원작과 달리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만큼 소품, 연출, 촬영이 모두 세련되게 바뀌었다. 하지만 되려 독이 된 부분도 있다. 영상미에 집중을 하다 보니 인도의 빈민가는 수행자의 여행지로 탈바꿈되어 버렸다. 처절한 생존 현장으로 그려져야 할 빈민가가 고즈넉한 풍경으로 바뀌다 보니 후원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뉴욕으로 향하는 이자벨의 모습이 그리 설득력이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자본주의의 표상으로 비춰져야 할 뉴욕의 모습이 화려하기만 할 뿐 빈민가와 대비를 이루며 그리 극대화 되지 않는다.
이자벨은 테레사의 제안 때문에 인도에서 뉴욕이라는 공간으로 던져진다. 이자벨은 뉴욕이라는 공간에 불편함을 느끼며 인도풍의 의상을 입는다. 테레사가 보낸 의상을 거부한 채 자신의 옷차림 그대로 결혼식을 참석한다. 테레사의 불편한 제안에 신발을 벗어던지고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뛰어가는 이자벨의 행위 역시도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심리를 드러낸다.
매 작품마다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섬세한 감정 연기로 거장 감독의 러브콜을 받아온 미셸 윌리엄스는 갑작스럽게 진실을 알게 되면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연기를 했다. 3대 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줄리안 무어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주면서도 운명 앞에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약해질 수 밖에 없는 나약함을 동시에 그려냈다. 더구나 미셸 윌리엄스와 줄리안 무어의 케미가 더해져 자칫 전형적일 수 있는 이야기에 몰입감을 더한다. 4월 23일 개봉.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사진/영화사 진진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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