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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속 글로벌 기업사냥꾼 득세
헤지펀드 활동무대, 아시아로 재편…"포이즌필 등 적극적 방어수단 필요"
2020-04-20 08:00:00 2020-04-20 08:00:00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코로나19발 충격으로 기업가치가 떨어진 틈을 노린 글로벌 기업사냥꾼의 공격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등이 세계 주요 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되파는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상황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 지분이 높은 국내 기업의 경우 헤지펀드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포이즌 필(Poison Pill·신주인수선택권제도) 등 방어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미국의 경제 주간지 바론즈(Barron’s) 등 외신에 따르면 코로나 19에 따른 글로벌 증시 폭락으로 상장사들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잇따르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방어적 태세로 대응하고 있다.
 
최근 노키아는 적대적 M&A의 표적이 되면서 은행 파트너인 씨티뱅크와 손잡고 방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 머신(Toshiba Machine)은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적대적 M&A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복사기·프린터 제조사 제록스의 경우 지난해부터 HP에 수차례 인수를 제안했지만 거듭 거부당하자 적대적 M&A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바론즈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낮아진 기업가치를 노리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를 위한 포이즌 필 발행 건수가 현재까지 34개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한해 동안의 발행 건수와 동일하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있을 경우 신주를 발행할 때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경영권 방어수단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서는 2018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윤상직 의원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인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국내 상장사들은 지난달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적대적 M&A를 방지하기 위해 이른바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 규정을 도입하는 등 적대적M&A 방어에 힘쓰고 있다.
 
전자감지장치 제조기업 에프에스티는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인해 해임된 경우 퇴직금 이외에 퇴직보상금으로 대표이사에게 100억원을, 이사에게 30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정관에 명시했다. 재무 부담을 키워 적대적M&A를 사전에 막는다는 취지다. 남영비비안 역시 퇴직보상금을 강화하는 내용의 정관을 추가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 셀바스AI와 넥스트사이언스는 주총 통과 여건을 강화시킨 '초다수결의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초다수결의제는 이사 선임, 해임 시 상법상의 결의 요건보다 가중된 요건을 정관에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19 충격으로 기업가치가 급락하면서 엘리엇 매니지먼트 같은 글로벌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적대적 경영개입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지만, 국내엔 차등의결권 주식이나 포이즌 필 같은 방어수단은 없는 상황이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청문회 당시 포이즌필과 관련해 “기업에 대한 시장견제라는 순기능을 차단할 수 있다”며 도입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재계에서는 경영권 방어 장치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헤지펀드의 주요 활동 무대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에게 의뢰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시아 기업에 대한 경영개입 사례는 2011년 대비 2018년 10배 이상으로 급증, 글로벌 평균의 두 배를 훨씬 웃돌았다.
 
최준선 교수는 "헤지펀드들의 활동의 자유와 그에 따른 부작용 간의 균형을 찾기 위해 주식 대량보유 신고제를 3%로 낮추는 동시에 차등의결권과 포이즌 필 제도 등 기업 경영권 방어장치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표/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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