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변화 아우른 그래미…본상 4개 휩쓴 빌리 아일리시(종합)
크리스토퍼 크리스 이후 39년 만…"그래미 화두는 다양성과 변화"
방탄소년단, 한국가수 최초로 그래미 무대…내년 후보 지목 기대
입력 : 2020-01-27 15:41:38 수정 : 2020-01-27 15:45:0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62회 그래미어워즈'의 주인공은 지난해 'Bad Guy' 열풍을 이끈 빌리 아일리시였다. 2001년생 최연소 나이로 그는 이날 그래미어워즈 본상 4개(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올해의 앨범, 올해의 신인상)를 휩쓰는 파란을 일으켰다. 한 아티스트가 그래미 본상 4개를 휩쓴 건 크리스토퍼 크리스 이후 39년 만의 처음이다. 최연소 아티스트에게 상을 몰아준 것은 그래미의 화두가 변화와 다양성 쪽으로 나아갔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여성과 흑인, 비영어권 쪽에 차츰 문을 열고 있는 이 변화가 내년 방탄소년단의 후보 지목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래미 본상 4개 휩쓴 '21세기 너바나' 빌리 아일리시 
 
2001년생인 아일리시는 2016년 사운드클라우드에 발표한 '오션 아이스(Ocean Eyes)'로 데뷔했다. 퓨어 팝과 발라드 사이 경계에 있던 이 곡은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록, 팝씬에서 단숨에 큰 주목을 이끌어 냈다.
 
이후 2017년 '벨리에이크(Bellyache)', '볼드(Bored)', 워치(Watch)' 등의 싱글과 EP '돈 스마일 앳 미(Don't Smile at me)'로 실험적인 뮤지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곡들은 대체로 록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되 평소 아일리시가 즐겨 듣는 힙합과 알앤비 등의 장르 파괴적 접근을 취한다. 비틀스와 그린데이, 드레이크, 에이셉 라키, 에이브릴 라빈, 라나 델 레이 등은 그에게 영감을 준 뮤지션들이다.
 
지난해 데뷔 앨범 '왠 위 올 폴 어슬립, 웨어 두 위 고?(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로 아일리시는 세계적인 주목을 끌어냈다. 기존 록 음악의 평범한 구성 방식을 탈피했던 너바나식 '얼터너티브'처럼 이 뮤지션은 21세기 너바나에 종종 비유되곤 했다. 수면장애와 공포라는 테마를 두른 데뷔 앨범은 침대 밑에 숨어있는 괴물의 관점으로 외부의 압력이나 통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곡 'bury a friend'), 상대에 대한 집착과 분리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기도('ilomilo') 한다. 
 
전반적인 테마는 공포이지만 앨범 말미로 갈수록 순수와 낭만의 감성을 마주할 수 있다. 8살 어린이 같은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하는 '8'과 이별에도 사랑의 끈을 놓지 못하는 'i love you'에는 18세 있는 그대로의 그 모습이 새로운 색깔이 돼 흘러 나온다. 아일리시 자신은 "흐느껴 울거나 죽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곡부터 춤을 추거나 즐길 수 있는 곡까지 한 앨범에 담겨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날 이 앨범 수록곡 'Bad Guy'로 리조(Lizzo·32)의 '트루스 허츠'(Truth Hurts)를 누르고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한 그는 "TV로만 보던 그래미를 받게 돼 감사하고 영광이란 말 밖에 할 말이 없다"며 "함께 후보에 오른 아티스트 모두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할 때는 "이 상을 받는 바람에 다른 아티스트의 충성 팬들이 나를 평생 욕할 것 같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아일리시의 수상은 '올해의 앨범상'과 '올해의 레코드상'까지 이어졌다.
 
아일리시와 함께 오른 프로듀서이자 친오빠 피니어스 오코넬은 "우울증, 기후 변화, 수면 장애, 자살 충동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 안에서 쓴 노래"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이날 임진모 평론가는 "최연소 아티스트에게 상을 몰아주는 것은 그래미의 화두가 결국 다양성과 변화임을 말해준다"며 "젊은 심사위원들을 영입하면서 대대적인 전환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래미 본상 4개를 휩쓴 빌리 아일리시. 사진/뉴시스, AP
 
전통과 변화 아우른 그래미, 프린스 추모 무대도
 
아일리시 외에도 올해 그래미는 예상을 뒤엎는 진행과 공연, 수상 결과들이 잇따랐다. 진행자 앨리샤 키스를 비롯 리조, 빌리 아일리시, 로살리아 등 여성 아티스트들이 시상식 전면에 나섰고, 흑인음악이나 비영어권 음악이 중심이 된 무대를 꾸렸다. 'Speechless'로 '베스트 컨트리 듀오/그룹' 상을 수상한 그룹 댄 앤 셰이는 "우린 매순간 아내에게 음악적 영감을 받는다"며 "곡에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라는 수상 소감으로 박수를 받았다. 
 
세계적 권위의 음악상 답게 그래미는 오랜 전통을 변화와 조화롭게 융합시켰다. 전설적인 록 밴드 에어로스미스는 런디엠시와 'Living' on the edge' 합동 무대를 꾸몄다. 록과 힙합의 경계를 허문 이 앨범의 역사성을 그대로 보여줌과 동시 최근 활발한 에어로스미스의 활동을 동시에 조명한 셈이다. 배철수는 "림프비즈킷, 린킨파크 같은 시도들 때문에 이 곡이 익숙하겠지만 80년대 이들이 처음 나왔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다"며 "빌보드에 랩 음악이 처음으로 진입했던 곡도 이 곡이 처음이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어셔는 'Little Red corvette'부터 'When Dove Dry', 'Kiss'로 이어지는 프린스 추모 공연으로 박수 갈채를 받았고, 존 레전드와 DJ칼리드 등의 뮤지션들은 고 닙시 허슬(1985~2019)을 추모하는 합동 무대를 꾸몄다. 닙시 허슬은 지난해 3월 3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자신의 옷가게 앞에서 다른 남성 2명과 함께 총에 맞아 사망한 세계적인 힙합 음악가이자 사회활동가다. 배철수는 "존 레논, 마빈 데브, 투팍 등 미국에서는 총격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아티스트들이 세상을 떠나는 건 굉장히 가슴아픈 일이지만 미국에선 이러한 추모 분위기가 많이 활성화돼 있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음악시상식들도 하나로 힘을 합쳐 이런 추모 무대를 만들어가면 어떨까 생각해본다"고 의견을 표했다.
 
고 닙시 허슬(1985~2019)을 추모하는 합동 무대를 꾸민 존 레전드와 DJ칼리드 등의 뮤지션들. 사진/뉴시스, AP
 
방탄소년단, 한국가수 최초로 그래미 무대…"내년 후보 목표"
 
1958년 시작된 그래미 어워드는 미국 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 Science, ‘NARAS’)에서 주최하는 음악상이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와 함께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으로 꼽힌다. 세 시상식 중 음악성 측면에서 가장 큰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이날 한국 가수 최초로 그래미어워즈 퍼포머로 무대에 섰다. 한국 대중음악계 최초의 기록이다. 지난해 그룹은 한국 가수 최초로 이 부문 시상자로 나선 바 있다. 당시‘베스트 알앤비(BEST R&B)’부문의 시장자로 신인 뮤지션 허(H.E.R.)에게 축하와 함께 트로피를 건넸다.
 
앞서 세계 대중음악계에선 그룹의 '그래미 어워즈' 후보 지명이 큰 관심사였다. 지난해 앨범 '맵 오드 더 솔 : 페르소나'로 빌보드 뮤직 어워즈,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의 본상을 수상하고, 월드투어로 20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독하리만큼 보수적인 평가 방식을 고수하기로 유명한 그래미는 결국 그룹을 후보에 올리지 않았다.
 
그룹의 후보 배제를 두고 미국 내에서는 연일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 음악전문지인 롤링스톤은 “그래미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인 K팝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현 음악 시장의 흐름과 완전히 대조되는 행보”라고 정면 비판했다. 방탄소년단의 곡‘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가수 할시 역시“방탄소년단이 여러 부문의 후보를 누릴 자격이 있다. 미국은 뒤쳐져 있다”며 그래미의 보수성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이날 방탄소년단이 초청받았다는 것은 그래미가 차츰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날 그룹의 무대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새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그래미 진행자로 나선 앨리샤 키스는 피아노로 출연진들의 곡을 연주하면서 "우리 모두는 BTS에 사로 잡혀 있다"며 "당신이 K팝을 좋아하든, 록앤롤을 좋아하든 다양한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퍼포머 21개 팀 중 하나로 무대에 소개됐지만 BTS, 나아가 K팝의 인기를 충분히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해설을 맡은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음원이 아닌 라이브로 그래미 무대에 서는 것 자체 만으로 굉장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올해 상반기 앨범 발매, 월드 투어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팝 부문 후보에 오르고 상을 타는 기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26일(현지 시각) 제62회 그래미 어워즈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방탄소년단. 사진/뉴시스·현대자동차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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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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