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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행 법관들, 기존의 2배…"사법 신뢰 흔들릴 우려"
"양승태 사법농단 후 정치성향 두드려져"…이탄희 "제도권 참여 필요"
법조계 "법원 판단 의구심 품을 수 있어…퇴직 후 2년 이상 공백 둬야"
2020-01-27 06:00:00 2020-01-27 06:00:0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최근 법관들의 정치권행이 논란이다. 특히 이번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기존 총선의 2배에 달하는 판사들이 사직하고 있다. 어떤 곳보다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법관들이 정치권을 향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전체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출마를 암시하며 법원을 떠난 판사는 4명에 이른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을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린 이탄희 변호사(전 판사)가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알렸다. 사법농단 의혹을 밝히는 데 선봉에 섰던 이수진 전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사법농단 의혹을 헌정 유린이라고 비판했던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도 사의를 표명했다. 5·18 희생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 재판을 담당하던 장동혁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도 돌연 사표를 냈다. 이미 거처가 정해진 이 변호사를 제외하고, 3명의 전 법관도 총선 출마가 유력한 상황이다.
 
21대 총선에서는 4명의 전직 판사가 출마할 것이 유력하다. 사진은 서울중앙지법. 사진/뉴스토마토
 
판사들의 출마설에 법조계는 '이례적'이란 반응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는 송기석 전 광주지법 부장판사가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박희승 전 수원지법 안양지원장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왔지만, 낙선했다. 19대 총선에는 전직 판사 후보가 하나도 없었다. 18대에도 총선에 출마한 사람은 홍성칠 대구지법 상주지원장과 박희승 전 창원지법 밀양지원장 등 2명이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이전에는 판사가 그만둬도 조용히 그만둬서 추후에나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판사가 떠들썩하게 총선에 출마한다고 조명되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법관들의 정치권행에 대한 기폭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꼽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판사들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데 영향을 미쳤고, 이로 인해 법원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면서 판사들이 좌절을 느꼈을 것이란 의견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판사들도 정치적 성향이 있지만 드러내지 않았는데, 사법농단이 일종의 바람을 일으켰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물러났지만, 아직 사법 개혁이 완수되지 않았고 입법부에서 나머지 역할이 필요하다고 봤다는  의견도 있다. 이탄희 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1년간 사법 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한계를 느꼈다. 지금으로서는 제도권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비위 법관 탄핵'과 '개방적 사법개혁기구 설치'를 실현해 사법농단의 과거를 매듭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라도 전직 판사들이 곧바로 정치에 뛰어든다는 것 자체가 사법부 독립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사법농단이 법원 조직 전체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다면 사직을 하는 게 바람직한 것이지 정치 진출 이유는 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에게 그 불신이 이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맞다"면서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하는 판사들이 공백도 없이 재직 중에 정치권과 접촉해서 정치행을 준비했다가 사표를 내고 출마 선언을 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욱도 대전지법 홍성지원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법관의 정치성은 가급적 억제돼야 하고 불가피하게 드러낼 때조차 지극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자제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어떤 파국이 오는가를 우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안에서 똑똑히 목격했다. 다른 법관들에게까지 법복 정치인의 혐의를 씌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연진 인천지법 판사 역시 "이런 모습은 법원과 법관의 중립성을 송두리째 흔든다"며 "어제까지 재판하던 판사가 다음날 사직서를 제출하고 정치를 시작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의혹과 우려에 답할 말이 없어진다"고 비판했다.
 
최근 국회에서 판사가 퇴직한 뒤 2년 내에는 청와대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처럼 판사들의 선출직 출마에도 상당한 기간을 두는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남국 변호사는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총선에 출마하는 공무원은 선거일 90일 전까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지만 고도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는 판사 직종 같은 경우에는 2년 정도는 공백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뉴시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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