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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치유하는 법원' 바라보는 두 시선
2020-01-27 06:00:00 2020-01-27 16:43:42
왕해나 사회부 기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음주측정에도 불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최후변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A씨는 약속을 잘 지켰다. 우리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해주길 바란다." 실형을 내린 1심과 달리 2심을 담당한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가 3개월간 금주하면서 일상을 보고하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동영상으로 증명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어머니와 빚 문제로 다투다가 집에 불을 질러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선 B씨에게도 형사1부는 1심보다 5년은 감형한 1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불우했던 성장과정, 장애 판정을 받고 사망한 남동생, 과도한 채무, 이 모든 것을 어머니한테 털어놨을 때 돌아온 질책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17년 후 어머니께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하라." 법원은 B씨에게 기회를 줬다.
 
판사는 근엄한 얼굴로 중형을 선고하고 피고인은 고개를 떨어뜨리는, 보통의 법정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처벌하고 피고인은 범행을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자는 게 '치유 법원'의 취지였다. 형사1부는 일정 기간 과제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양형에 반영하면서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의미있는 시도다.
 
형사1부가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으면서 치유 법원은 중요한 과제를 안게 됐다. 재판부가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또다시 권력자가 뇌물을 요구할 경우 어떻게 할지"를 물었고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를 설립해 상시적으로 그룹 내부의 비위 행위를 감시하도록 한다는 답을 내놨다. 이에 대해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에 대한 '면죄부'가 되선 안 된다, 권력형 비리에 치유 사법을 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삼성의 범죄는 처벌의 대상이지 교화의 대상은 아니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재판부는 치유 법원에 대한 또 다른 시선 역시 간과해선 안 된다. A씨가 다시 음주운전을 했을 때의 위험성, B씨가 어머니를 살해한 범죄가 자칫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는 비판. 그리고 삼성이 총수 일가의 승계와 원활한 영업활동을 위해 다시금 정치권과 결탁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그건 재판부의 손에 달려있다. 재판부 입장에서 보면 판사봉을 두드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한민국 1위 기업에서 이와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되며 삼성이 긍정적인 본보기가 돼야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재판부가 열쇠를 쥐었지만 문을 열었을 때의 결과는 삼성과 사회가 감당하게 된다. 재판부의 지혜로운 판단을 기대한다. 
 
왕해나 사회부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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