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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기생충’, 골든 글로브 수상이 드러낸 할리우드 ‘백색 우월감’
2020-01-06 17:02:24 2020-01-06 19:04: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지난 해 10월 봉준호 감독이 미국 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로컬 영화제이슈는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여전히 증명됐다. 또한 오랫동안 할리우드를 괴롭혀 온 이른바 화이트 워싱역시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통해 다시 한 번 증명된 것 같아 영광스러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곱씹지 않을 수 없다. 봉 감독의 기생충 6일 오전(한국 시간) 열린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무대에 오른 봉 감독은 서브 타이틀(자막) 장벽을 1인치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면서오늘 함께 후보에 오른 많은 멋진 영화들과 같이 할 수 있어 그 자체가 영광이었다. 우리는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영화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봉 감독의 이번 수상은 한국영화로선 최초이며 아시아권 영화로서는 2000년대 이후 네 번째다. 특히나 자국 내 자본으로 제작된 순수 아시아권 영화로선 2012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이후 두 번째다. 영광스럽고 경사다. 한국영화가 지난 해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글로벌 영화 시장의 중심이자 가장 높은 자존심을 드러내고 있는 할리우드 중심에서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었단 점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성과다. 하지만 수상 부문은 분명히 아쉬움을 남길 수 밖에 없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할리우드 여배우 시에나 밀러가 봉준호 감독에게 '외국어영화상' 트로피를 건내고 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당초 미국 내 여러 언론은 기생충의 외국어영화상 수상 가능성을 가장 높게 봤다. 여기에 감독상 수상 여부까지 가능성 높은부문으로 예측했다. 올해 감독상 후보는 ‘1917’의 샘 멘데스 감독,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아이리시맨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조커의 토드 필립스 감독 이다. 이름 값에서 누가 받아도 전혀 논란이 되지 않는 후보들이다. 시상식에 앞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올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기생충을 언급하기도 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거장의 언급이 수상으로 직결될 수 없단 점은 상식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골든 글로브였기에 기대감은 분명했다.
 
할리우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외 영화들에 배타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이 같은 분위기는 화이트 워싱논란으로 이어져 온 바 있다. ‘동양권 배역에도 무조건 백인을 캐스팅한다는 화이트 워싱은 배역 뿐만 아니라 수상 여부에도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한 때 골든 글로브와 함께 미국 내 양대 시상식으로 꼽히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두고 흑인 영화인들은 하얀 오스카란 불만을 토로하며 참석 거부를 선언해 왔고 SNS를 통해 #Oscarssowhite 해시태그가 퍼지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은 불과 몇 년이 지난 올해 골든 글로브에서도 지적을 받아 마땅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외국어영화상은 제3세계 영화에 대한 시상 부문이기에 납득할 만한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전체 수상자 명단을 본다면 아시아권 수상작()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더 페어웰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아콰피나 뿐이다. 아콰피나는 중국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번 수상 결과는 다음 달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골든 글로브 수상 결과는 아카데미 수상 여부에도 상당 부문 영향을 미치기에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불린다. ‘기생충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주제가상 예비 후보(쇼트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쇼트리스트는 국제영화상, 장편 다큐멘터리, 단편 다큐멘터리, 분장, 음악, 주제가, 단편 애니메이션, 라이브액션 단편 등 9개 부문에 한정해 선정한다. 부문별로 각각 10개 작품을 선정한 뒤 최종 후보작 5편을 1 13일 발표한다. 이날에는 쇼트리스트 선정 절차가 없는 다른 부문 후보들도 함께 발표된다.
 
미국 내 보도에 따르면 기생충국제영화상과 주제가상 가운데 국제영화상 수상이 유력하다. 여기에 쇼트리스트 선정 절차가 없는 다른 부문 중 감독상과 작품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아직 뚜껑은 반만 열렸다. 골든 글로브의 낭보가 분명히 반갑지만, 봉 감독 스스로가 로컬 영화제일 뿐이라고 아카데미 시상식의 본질을 꿰뚫은 명쾌한 해석처럼 아카데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배타적 화이트 워싱을 고집해 온 할리우드가 봉준호의 기생충마력에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는 일주일 뒤인 13일 드러나게 된다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다음 달 9(미국 시간) 열린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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