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서울 택지 설계공모 공정성 논란
설계공모 여부, SH 자의적 결정…대기업 독점·불법 로비 우려
2019-12-24 06:00:00 2019-12-24 06: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주택용지를 분양할 때 어떤 택지에 설계공모 방식을 적용할지 객관적 기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SH는 관련법에 근거해 필요에 따라 설계공모를 적용한다고 설명했지만 SH 자의적인 공급 방식 결정을 두고 공정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설계공모가 대형 건설사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투명한 기준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23일 복수의 SH 관계자는 공사가 서울내 공공택지의 공동주택용지를 민간에 매각할 때 어떤 택지에서 설계공모를 진행할지 결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내부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 SH 관계자는 “설계공모 적용 여부에 관해 내부 기준이 있지는 않다”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중견사의 벌떼입찰을 해소하고 도시경관 개선 등 사회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 고덕강일지구 1블록과 5블록, 10블록에 설계공모를 도입한 것”이라고 했다.
 
공공주택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SH 등 사업시행자는 공동주택용지를 추첨으로 공급하는 게 원칙이지만, 특별설계를 통한 개발이 필요한 경우 설계공모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이때 필요한 경우가 무엇인지 세부적인 규정은 없다. 사업시행자인 SH가 자의적으로 설계공모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여지를 준다. 
 
설계공모 방식으로 땅을 분양할 경우 외부 설계 용역 비용이 별도로 드는 만큼 그에 따른 입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사가 중견 건설사에 비해 유리하다. 중견 건설사들은 특화된 설계안을 제시하기 위해 투입하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택지 확보에 실패할 경우 회사 재정 상황에 충격을 준다고 호소하고 있다. 중견사가 설계공모에서 당선되더라도 매출에 부정적일 수 있다. 설계 비용으로 공사비가 오르는데 분양가 통제를 받아 시공비 회수가 쉽지 않은 탓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설계공모는 중견사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현 정부에서는 시공비가 올라도 분양가에 반영하긴 어렵다”라며 “경쟁 자체도 상당히 불리하고 낙찰 후에도 이익이 크지 않아 단독 입찰은 힘들다”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관계자는 “대형사가 SH에 설계공모 방식으로 택지를 공급해달라고 조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결정권을 SH가 가진 탓에 건설사로부터 로비 유착을 끊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설계공모 방식이 대형사에 유리한 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서울내 설계공모 공동주택용지인 고덕강일지구 3개 블록 중 두 곳을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이 가져갔다. 
 
이번 설계공모는 서울에서 공급된 택지 중 최초 사례다. 서울 내 재건축 등이 규제에 막혀 공급이 줄어드는 가운데 신규 택지 공급이 진행될 예정으로, 그 희소성 때문에 입찰 기준은 더욱 민감하다.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30만호 공급 계획에 따르면 SH가 서울에서 공급을 계획 중인 물량은 약 3만2400호다. 이들 물량을 공급할 때 SH가 자의적 판단으로 설계공모 방식을 적용할 경우 중견사의 불만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라면 누구나 서울에 입성하려 하는데, 법적 허점으로 권한이 강해진 SH에 의해 설계공모에 유리한 대형사가 득을 볼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공공택지에 설계공모 방식을 확대하겠다고 방침을 밝힌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어떤 택지에 설계공모 방식을 적용할지 별도 기준을 검토하는 중이다. LH 관계자는 “현재 관련 기준을 마련해 이달 안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한 공동주택용지 모습. 사진/뉴시스
 
국내 도심 풍경.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