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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2019년 사자성어는 '사면초가'
2019-12-19 06:00:00 2019-12-19 06:00:00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황금돼지의 해인 2019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숨 돌릴 새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면서 그 여파는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말이 되어서야 겨우 1단계 합의를 통해 전면적인 충돌은 피했지만 미중간의 힘겨루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경제 역시 주름살이 깊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한껏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던 남북관계는 올해 들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지난 2월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2차 북미정상회담은 막판에 결렬되었다. 그 이후 한반도에 훈풍은커녕 ‘중대한 시험’의 잔인한 칼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극적으로 판문점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지만 그 뿐이었다. 한 해가 끝나갈수록 북미관계는 악화일로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연일 남한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 와중에 국회는 역대 최악의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파국의 패스트트랙 정국으로 들어서 있다.
 
그래서 올해의 사자성어는 사면초가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열강이 몰려 있는 동북아에서 국가의 경쟁력은 생존과 직결된다. 국제사회는 상식의 사회가 아니라 힘에 지배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인구로, 일본은 기술력으로, 러시아는 자원보국으로, 미국은 최강의 군사력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보면 전적으로 우리 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경쟁력은 안심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 11월 12~14일 실시한 조사(전국1002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15%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분야별 정책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다. 먼저 경제다.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 57%로 절반을 웃돈다. 잘했다는 긍정 평가는 27%에 그쳤다.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시베리아 벌판처럼 혹독하지만 정부의 반응 속도는 빠르지 않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등 경제 정책에 대한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대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황금기를 누렸다. 지지율은 위로만 치솟았고 내려올 줄 몰랐다. 그러나 올해 상황은 정반대다. 북미관계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을 향해 날 선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새로운 길’을 통해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싱가포르 북미회담 이전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평가는 긍정 38%, 부정 49%로 나타났다. 부정적 시각이 10%포인트 이상 더 많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현 정부에서 가장 강조하는 일자리 정책은 좋은 점수를 받았을까. 그렇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고용노동 정책에 대해 우리 국민 3명 중 1명 만이 긍정적인 평가였다. 절반 이상은 일자리 정책을 잘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공직자 인사에 대한 평가는 거의 낙제점 수준이다. 임기 초부터 지적돼 왔던 인사 문제가 최근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조국 전 장관 임명으로 대통령의 공직자 인사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공직자 인사를 잘하고 있다는 의견은 고작 26%에 불과했다. 인사를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55%나 되었다. 가뜩이나 미중 무역 전쟁,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등 대외 여건이 악화된 마당에 핵심적인 정책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정부만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회는 더욱 심각하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까지 해마다 심의하는 예산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는 무능한 모습이었다. 정치권의 분열과 갈등은 국민들을 두 동강내 버렸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를 의미한다고 한다.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살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 사자성어다. 심각하게 분열된 우리 사회를 투영하는 사자성어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이 사자성어로 2019년 한국 사회의 극한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2020년은 어떤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국민들이 정부와 국회의 내일을 걱정하는 식이면 뭐가 잘 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초패왕 항우는 한참을 잘 못 달린 후에야 사방이 적군으로 둘러싸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는가. 경제, 북한, 일자리, 인사 등 잘 못 돌아가고 있는 모든 것을 제자리에 또는 그 이상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현실을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미래도 없다. 2019년의 사자성어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면초가(四面楚歌)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insightk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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