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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통큰 투자', 정부·주주 달래기로 지배구조 개편 포석
미래 먹거리 투자 확대하고 적극적 주주환원 지속 신호
2019-12-04 17:55:59 2019-12-04 17:55:59
[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다시 본격화할 전망이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하면서 내놓은 계획이 정부에게는 미래 먹거리에 앞장서는 기업이란 점을 강조하고, 주주에게는 글로벌 리더 그룹 도약이란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지배구조 개편에 힘을 실어달라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CEO 인베스터 데이'를 개최하고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Smart Mobility Solution)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며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까지 60조원 이상을 투자할 예정인데 불과 10개월 전 내놓은 계획보다 16조원이나 확대된 규모다. 미래사업 역량 확보를 위한 투자가 늘어난 영향이다.
 
이원희 현대차 사징이 4일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주주가치 제고 방안 등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현대차
 
1년도 안 돼 투자 규모를 크게 확대한 데는 본격적인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정부의 의지가 강한 미래차 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뜻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강조한 장래 먹거리를 키우는 데 앞장선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정부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경기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 국가 비전 선포식에서 “기업의 혁신을 뒷받침하겠다”며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현대차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변신 선언과 영업이익률 8% 달성 목표 제시는 성장성과 수익성을 갖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달라는 당부로도 풀이된다. 당장 눈앞에 놓일 지배구조 개편안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현대차의 계획대로 된다면 주주 입장에서는 기업가치 향상으로 따라올 이익이 더 클 가능성이 높아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15일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정 수석부회장과 대화하는 모습. 사진/현대차
 
내년 3월까지 진행할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은 이보다 더욱 직접적인 주주 달래기 방법이다. 현대차는 최근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지속해오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자사주 중 보통주 441만주, 우선주 128만주 등 569만주를 소각하고, 보통주 220만주, 우선주 65만주 등 총 285만주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기존 보유 자사주 소각에 약 5600억원, 매입 후 소각에 약 4000억원 등 총 1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현대차가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은 2004년 이후 14년 만이다.
 
같은 해 11월에는 보통주 213만6681주, 1우선주 24만3566주, 2우선주 36만4854주, 3우선주 2만4287주 등 총 276만9388주를 매입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해당 주식 발행 총 수의 1%에 해당하며, 매입 금액은 2500억원 수준이다.
 
시장의 반대로 지배구조 작업이 본격화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현대차에게 주주의 동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말 순환출자 등 정부규제를 해소하고 미래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대모비스의 모듈 및 애프터서비스(AS) 부품 사업을 인적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이후 정몽구 회장 일가가 기아자동차,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전부 매입해 순환출자를 해소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23.29%의 지분을 갖고 있는 현대글로비스에 유리하게 합병 비율이 산정됐다는 비판 속에 ISS, 글래스루이스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도 반대 권고를 하면서 결국 무산된 바 있다.
 
현대차의 전략 발표에 대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이미 실패를 했기 때문에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수정안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해 우선 주주에 성의를 다하겠다는 시그널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의 내용이나 시기에 대해서는 철저히 말을 아끼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개편안에서 현대글로비스에 유리하게 선정됐던 합병 비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쳤다. 정 회장 일가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직접 매입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기아차 17.24%, 현대제철 5.78%, 현대글로비스 0.69% 등 총 23.69%의 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려면 5조6000억원이 넘는 금액이 소요돼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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