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자린고비가 되려면
입력 : 2019-11-01 06:00:00 수정 : 2019-11-01 06:00:00
"아, 그만 쳐다 봐! 짜다 짜."(아버지) "아부지, 이거 언제 다 먹어요?"(아들) "아 시끄러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아버지)
 
인기 개그맨 임하룡이 출연한 1985년의 공익광고 대사다. 눈치 채셨겠지만 자린고비 이야기를 패러디한 광고다. 임하룡은 "이게 바로 저금통장이다. 내가 요런 맛에 산다. 내가 달리 자린고비냐?"는 대사로 연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여느 공익광고처럼 성우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절제와 절약은 바로 저축의 시작입니다."
 
자린고비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가 자주 해주신 이야기다. 아버지 말씀의 요점은 '우리는 귀한 굴비를 실컷 먹는 거야. 너희는 그걸 알아야 해'였다. 정말 굴비를 실컷 먹었다. 우리 집 밥상에는 온 식구가 먹기에 충분히 큼직하고 노란 알을 잔뜩 밴 굴비가 자주 올라왔다. 고등어는 한 손(2마리)만 사지만 굴비는 두름(20마리) 단위로 샀다. 그래서 왜 자린고비는 다른 귀한 음식 놔두고 이 흔한 굴비를 쳐다만 봤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많이 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으로 있는 우리집 밥상에는 굴비가 올라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굴비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굴비 엮듯이'라는 표현을 이젠 쓸 수도 없다. 알이 굵은 굴비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귀하다. 
 
도대체 그 많던 굴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 굴비는 참조기를 소금에 절인 뒤 꾸덕꾸덕 말려서 만든다. 그렇다면 굴비가 없다는 뜻은 참조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뜻일 거다. 실제로 그렇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만 해도 매년 3만~4만 톤의 참조기가 잡혔다. 이젠 기껏해야 2만 톤 정도가 잡힌다.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어업 기술은 좋아지는데 왜 덜 잡히는 것일까? 중국 어선이 싹쓸이해서만은 아니다. 참조기 자체가 줄었다. 
 
기후위기가 굴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8년부터 2018년까지 50년 동안 전 세계 해수온은 0.49도 올랐다. "애걔, 겨우 0.5도도 안 되는 걸 가지고 뭘 그래!"라고 하시면 안 된다. 산업화 이후 기온 상승을 1.5도에서 막느냐 못 막느냐에 인류 생존이 달려 있다. 0.49도는 엄청난 변화다. 그런데 한반도 해역의 표층수온은 무려 1.23도나 올랐다. 나는 우리나라가 온대지방이라고 배웠다. 1.23도가 올랐다는 것은 적어도 바다만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거의 아열대지방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해수온이 오르니 영양염류의 상태도 바뀌었다. 플랑크톤은 영양염류를 먹고 참조기는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해수온이 오르니 참조기의 먹이 상태가 바뀌었다. 육지 동물은 철책이나 도로, 그리고 바다에 가로막혀서 번식지와 서식지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새와 바닷물고기에게는 국경이 없다. 자기 살기 좋은 곳으로 찾아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바다 수온이 바뀌고 먹이 상태가 바뀌었으니 여기가 좋은 물고기들은 찾아오고 불편해진 물고기는 다른 곳으로 떠난다. 멸치, 고등어, 오징어에게 한반도 연안은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최근 50년 사이에 어획량이 멸치는 4배, 오징어는 5배 늘었다. 고등어는 무려 7배가 증가했다. 이에 반해 참조기는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어획량이 줄었다는 것만으로는 밥상에 굴비가 올라오지 못하는 걸 설명할 수 없다. 굴비의 가치가 내가 어릴 때보다 몇 배 올랐어도 우리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가끔은 먹을 수 있어야 정상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모든 생물은 건조하면 쪼그라든다. 수분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생선도 마찬가지다. 작은 조기가 쪼그라들면 볼품이 없고 상품성이 없기 때문에 굴비는 커다란 조기를 사용해서 만든다. 굴비가 없다는 것은 커다란 참조기가 없다는 말이다. 왜 커다란 참조기가 없을까? 어린 개체를 잡기 때문이다. 9월~3월에 잡히는 참조기의 54%, 4월~8월에 잡히는 참조기의 94%가 새끼다. 주로 사료로 쓰인다.
 
명태 사태도 비슷하다. 1970년대에는 매년 5만 톤이 잡혔지만 2010년대에는 겨우 1~9톤이 잡혔다. 명태는 한류성 어류라 서식지가 북상한 데다 새끼인 노가리를 너무 많이 잡았다. 우리나라 해역에는 명태가 거의 없다. 오죽하면 정부에서 올해는 아예 명태를 잡지 못하게 했겠는가.
 
해수온의 변화야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새끼를 잡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도 자린고비처럼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기라도 하고 싶다면 채 자라지도 않은 새끼를 잡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자린고비 노릇 한번 해보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1004@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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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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