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악플'과 '비판' 구분해야…무조건 규제 땐 표현의 자유 위축"
김보라미 변호사 "악플 규제는 기업과 언론 자율적으로"
"약자 보호하는 차별금지법이 더 시급"
입력 : 2019-10-31 06:00:00 수정 : 2019-10-31 06:00:0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가수 겸 배우 고 설리(본명 최진리)가 얼마 전 사망한 이후, 악플의 폐해를 막기 위한 조치가 소위 ‘설리법’이란 이름으로 논의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직접 설리의 이름을 언급하며 인터넷 준실명제 발의를 준비한다고 밝혔고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역시 해당 법안이 발의되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악플을 포함에 ‘가짜뉴스’를 근절하는 법을 내놓겠다는 큰 그림도 그리는 모양이다.
 
고인의 죽음에 악플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건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때문에 그 취지가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 댓글 실명제, 가짜뉴스 근절법이 제정됐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적인 시선이 사라질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법으로 보호해야 될 대상은 누구이며 표현의 자유는 어디쯤에 둬야 하는지 김보라미 법무법인 디케 변호사(사법연수원 34기)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보라미 법무법인 디케 변호사가 '정부의 가짜뉴스 근절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긴금점검토론회 법무법인 디케 변호사가 '정부의 가짜뉴스 근절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긴금점검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 세계가 악플, 가짜뉴스와의 전쟁 중이다. 미국에서는 진실보다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탈진실(post-truth)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어디까지가 진실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독일은 플랫폼 사업자가 위법한 콘텐츠를 자체 삭제하고 그 내용을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규정, 이해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규제를 시행했다. 
 
우리나라 역시 처벌 수준을 높인 규제가 있으면 악플과 가짜뉴스가 근절될까. 그 질문에 김 변호사의 답변은 "노(No)"였다. 그는 "이들 나라와 우리나라의 악플, 가짜뉴스 성격이 다르다"면서 "북미와 유럽에서는 주로 정부가 조작을 행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인과 여론이 행하고 그 대상은 주로 사회적 약자가 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우선 악플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반대되는 의견을 냈다고 해서 악플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사회에 대한 건강한 비판조차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의견이다. 김 변호사는 "악플이라고 말하는 것의 범주가 너무 넓다"면서 "모두 악플이라고 명명하면 문제시 되지 않는 격한 정도의 표현과 비판 등이 다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확하게 악플의 맥락을 구별하지 않으면 나머지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까지 모두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 냉각효과를 유발해서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는 것)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악플에 대한 정의를 한 이후에도 법으로 규제해야할 문제인지를 톺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소위 악플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형사처벌의 대상이라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가짜뉴스 역시 "만약 언론사들이 허위로 뉴스를 내는 것을 가짜뉴스라고 한다면 언론법을 적용해 정정 보도를 요청하면 될 일"이라면서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악플, 가짜뉴스와 연계시켜 규제법을 논의하는 것은 권한의 남용"이라고 봤다. 또 "요즘 가짜뉴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보통 정치권과 관련된 이슈 같다"면서 "그들은 사회적 지위도 있고 능력도 있다. 대변인도 있고 공론장도 있다. 규제법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서 해결하면 될 일"이라고 제언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는 2007년 도입됐지만 이미 2012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등록하는 방식의 인터넷 실명제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게 위헌 결정의 배경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이미 인터넷상에서 개인이 게시글이나 댓글로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생각할 경우 규제를 할 수 있는 법이 마련돼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의 임시조치제도다. 하지만 그 제도 역시 합리적인 비판마저 차단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김보라미 변호사가 '정부의 가짜뉴스 근절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긴금점검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 변호사는 "게시글들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구체적인 피해 입증 없이, 신청만으로 임시조치가 이뤄지고 있어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침해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예를 들어 이단 종교에 대한  피해 사례를 공유하는 한 인터넷 카페의 경우에는 해당 종교 신도들에 의해 몇 십 페이지에 해당하는 글들이 모두 블라인드 처리돼 있다"고 말했다. 글쓴이를 위한 구제방법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그는 "글쓴이가 글을 복원시켜달라고 하면 플랫폼 사업자들은 무조건 기다리라고 한다"면서 "복원권에 대한 부분은 논의되지 않아 30일을 그냥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사회 문제로 떠오를 만큼 심각해진 인터넷상의 혐오표현 등을 그냥 두자는 말은 아니다. 김 변호사는 국가기관보다는 기업 차원에서 자발적인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그는 "기업이 품질관리 측면에서 할 수 있는 게 있다. 특정 비난 댓글이나 선동글이 반복해서 올라오는 경우, 실시간 검색어가 광고에 가까울 경우 기업이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서 그 부분을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경쟁할 때 사람들은 필터링을 덜 하는 트위터가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다"면서 "하지만 결과는 페이스북의 승리였다. 페이스북은 적절한 필터링을 통해서 사용자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떠나가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사 역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혼탁해진 판을 미디어가 재생산하고 있다"면서 "문제되는 표현을 찾아내고 배포, 확산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런 뉴스들이 대부분 가십에 치우쳐져 있다"면서 "언론사들이 돈벌이에 너무 치중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그렇다면 법들로 보호해야할 대상은 누구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도와줘야 할 사람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토론의 공론장에서 말할 수 없는 사람들. 사회적인 약자, 여성 연예인들, 소수자. 그런 사람들을 위해 국가가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차별금지법’ ‘혐오금지법’ 제정을 강하게 이야기 하는 이유다. 차별금지법은 19대 국회에서는 김한길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발의했으나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로 곧 발의를 철회했다.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김 변호사는 "오래전부터 혐오 표현, 성적인 모욕 등으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차별금지법을 제기하고 있고 UN에서는 매년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섹슈얼 프라이버시, 불법영상물로 훼손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한다. 특히 특정인의 얼굴 사진을 이용해 가짜 불법영상물을 만드는 딥페이크(Deep fake)는 반드시 근절해야할 부분이라고 역설했다. 김 변호사는 "오늘 날의 침해는 사람들을 오인하게 만드는 적극적인 조작행위가 개입되므로 과거의 침해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사람들은 고통 받고 있는데 그런 이슈를 장난처럼 관대하게 보는 풍토가 바뀌어야 하고 사회적 약자가 희생자가 되므로 더더욱 자세히 봐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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