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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송명주 삼성전자 상무 "전 세계 소비자들이 연결된 시대, 판을 바꾸는 게 중요"
"과거보다 소비자 힘 더욱 커져…제조사들 귀담아 들어야"
"소비자 스스로도 인지못하는 니즈를 해결해주고파"
2019-10-04 07:00:00 2019-10-04 13:15:53
[뉴스토마토 권안나 기자] 삼성전자 생활가전이 변했다. 주력 소비층인 기성세대가 아닌 그들의 자녀 '밀레니얼'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 정체된 가전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했고, 남들과 같아서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송명주 삼성전자 글로벌PM그룹장(상무)의 근 몇년간의 고민도 이 같은 시장 환경과 맞닿아 있었다. 전 세계 생활가전 고객과의 접점에서 소통을 담당하는 그에게 급변하는 사회와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이해는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위기 보다는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그의 눈빛에서는 확신과 설렘이 읽혔다. 그는 최근의 삼성에서 일어난 변화를 두고 "판을 바꾸는 것" 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삼성전자 수원캠퍼스에서 만난 송 상무는 삼성전자 1기 여성 공채로 입사해 가전사업부 상품기획팀에서 출발해 수출그룹 담당, 동남아총괄 마케팅팀 부장 등을 거쳐 동기 중 유일한 여성 임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위치에 올랐음에도 후배들 사이에서 "직원의 말을 중간에 멈추게 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임원"으로 유명하다.
 
한 두해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기에 다 함께 더불어 갈 수 있는 원만한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밀레니얼 세대의 고객과 소통하고, 밀레니얼 세대의 직원들을 이끄는 데 최적화된 리더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런 그에게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에 따른 가전 시장의 변화와 그들과의 소통에 대한 혜안을 들어봤다. 
 
 
송명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글로벌PM그룹장(상무). 사진/삼성전자
 
입사 초기 부터 26년간 생활가전 사업부에 몸담았다. 그 사이 시장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먼저 소비자 측면에서는 과거에는 소비자간에 단절된 문화였다면,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밀레니얼 소비자가 등장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가전제품이 특정 지역에 첫 진출할 때 기존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극복하는 데 인터넷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떠올랐다. 현재 실질적인 구매력을 가진 주류 소비층은 밀레니얼의 부모인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의 의사결정에 밀레니얼 세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달라진 점이다. 
 
경쟁 측면에서는 '로컬화'라는 영역을 탈피하지 못하면 생존의 위협이 된다. 내 나라 물건만 만들고 소비하는 것은 이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중국이 무섭게 크고 있다. 어떻게 차별화된 제품을 계속 만들어 낼 것인가가 숙제다. 대한민국이 IT 강국이라는 점을 활용해 모든 제품을 가지고 '연결'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이런 차별화를 통해 중국과 선을 긋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밀레니얼 세대가 기존과 다른 집단이다보니, 처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지난해 연말부터 대한민국의 세대가 바뀌고 있다는 걸 인지했고 내부에도 변화가 있었다. 소비자에 대한 분석 단계를 넘어 경영 의사 결정에 반영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처음에는 해당 세대의 패널들과 경영자들을 한 곳에 모아놨지만 제대로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패널들이 별도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줬고, 업무나 직급이 연관되지 않아 독립적이고 순수하게 운영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영층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소비자 집단으로서의 대표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굴곡없이 수용했고, 경영자의 인풋이 크게 반영되지 않도록 유의하며 의사결정을 마무리했다. 과감하게 시도한 끝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검증은 철저히 했다. 
 
소비자들의 변화를 체감했던 사례가 있는지.
 
건조기라는 제품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주부들을 조사해보니 40~50대의 주부가 아니라, 어린 아기가 있는 가정이 많았다. 내 아이에게 깨끗한 옷을 입혀주고 싶다는 니즈가 반영된 듯 하다. 이들은 인터넷과 가장 친숙한 세대다.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화가난 부분에 대해 생생한 목소리를 하루에도 수십번 올리다 보니, 특정 제품에서 발생한 문제점이 이슈화가 되기도 했다. 자신의 의사를 실시간으로 적극 표현하고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보다 소비자의 힘이 훨씬 커졌다. 제조사들도 이들의 목소리를 더욱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가 모두 비슷한 특징을 가졌다는 점도 특징이다. 기존과는 다른 접근법들이 요구되는 편이다. 최근 세탁기의 에코버블 기능을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 마케팅을 진행했다. 처음 이 영상은 유럽 시장을 위해 만들었는데 베트남에서 24시간 만에 1000만뷰를 돌파하는 등 역대급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단순화됐고, 하나의 방법으로 전 세계에 통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 셈이다.
 
건조기 이슈에 대해 삼성에서는 어떻게 해결했나.
 
유럽의 대표적인 가전 업체인 밀레와 보쉬에서도 국내 제조사들처럼 히트펌프와 콘덴서가 장착된 제품을 내놨다. 보쉬의 제품이 경쟁사와 동일한 방식의 콘덴서 청소 기능을 사용했는데, 독일에서도 문제가 돼서 현지 소비자보호원 같은 기관에서 특별 기고를 통해 개선 시정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삼성에서는 이에 대한 걱정이 있었기에 자동세척 방식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고, 좀 불편하더라도 콘덴서를 직접 청소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대신 청소 횟수를 줄이기 위해(일년에 1~2회) 필터에서 먼지를 충분히 거르도록 하는 등 관련 고민을 많이 했다. 콘덴서 세척을 위해 잔수를 남기기 보다는 잔수를 최대한 남기지 않는 데 목적을 두고 개발했으며, 건조 중에도 4분에 한번 꼴로 반복해서 배수가 일어난다. 현재 건조 후 펌프가 완벽하게 끌어내지 못해 남아있는 잔수는 130미리에 불과하고, 이 부분도 다음번 건조때는 무조건 배수가 되도록 설계했다. 
 
삼성전자 수원캠퍼스에 마련된 직원들 휴게공간. 사진/삼성전자
 
최근 미국에서 삼성 건조기의 성적이 좋았다. 비결이 뭔가. 건조기에 밀레니얼 세대 특성이 반영된 부분도 있나. 
 
밀레니얼 세대가 나를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비록 비싸지 않은 옷을 입더라도 그 형태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에 착안해 옷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도록 '자연건조'를 키워드로 내세웠다. 옷감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60도에 맞춰져서 수축이 적다. 또 가사노동의 시간을 얼마나 줄여주는가 등도 중요한 포인트다.
 
특히 미국에서는 세탁기를 사면 건조기 페어로 사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빨리 세탁하고 건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피드코스'로 어필한 게 가장 컸고, 스팀 살균을 넣어서 빨래의 세균 제거까지도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도 주효했다고 본다. 앞으로 만들 신제품에도 더 많은 밀레니얼 세대의 니즈를 녹여낼 예정이다.
 
유럽에는 전통적인 가전 명가들이 있어서 더 어려울 것 같다. 
 
유럽 뿐 아니라 지역별로 강자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업체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보니 흔들리지 않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제품들이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니즈는 어떤 것이 있을까를 고민한다. 유럽의 드럼세탁기에서 40-50도까지 물을 끓여야 세탁이 잘되는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는 문제가 있었고, 물의 온도를 올리지 않고 세제 잘 녹일 수 있는 방법으로 '에코버블' 세탁기를 개발했다.
 
거품을 통해 세제 용해력을 높이는 건데, 에너지를 줄이면서도 빨래가 잘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드럼세탁기를 돌리다 간혹 미처 넣지 못한 빨래들이 등장했다는 점을 착안해 만든 '애드워시'도 좋은 예다. 프랑스에는 '잃어버린 양말(lost socks)'라는 말이 원래 있어서 현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양말을 걸어놓고 집어넣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직관적인 마케팅도 진행했다.  
 
해외사업 진행 시 애로사항이 있다면.
 
가전은 의식주와 밀접해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만들기도 어렵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 처음 에어컨을 개발할 때는 유럽을 중심으로 생각했기에 히팅과 쿨링 기능을 함께 개발했는데 그대로 동남아에 팔 수 있느냐고 하면 또 아니었다. 히팅 필요없고 쿨링만 필요한 지역이 많았다. 그런데 또 베트남 하노이 지역에는 겨울이 있었다. 같은 국가라고 동일하지도 않고 글로벌 곳곳의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게 중요하다. 
 
가전제품 외에 관심사가 있다면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것도 '기승전 가전'인 셈이긴 한데. 인도의 환경은, 중국은 왜 그렇지? 미래는 어떻게 갈까? 이런 부분들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인구통계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틀리지 않는 데이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기회는 어디에 있고 소비자들은 어디로 가는지를 늘 고민한다. 경영자로서 직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때 좀 더 확신을 가지고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려면 그런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향후 목표가 있다면
 
소비자가 필요하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해서 삼성전자가 예쁜 그릇에 담아 제공해주고 싶다. 소비자의 페인포인트(불평)를 부드럽게 해결해주고 싶다. 사실 삼성전자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던 사례가 많았는데 소비자들에게 전달이 잘 안된 측면도 있었다. 냉장고 문을 4개 만들때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고, 김치냉장고도 세워진 형태를 출시했다. 세탁기 도어의 유리를 뚫는 것도. 생각을 하는 것도,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이제는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장을 자꾸 만들어가는 회사가 되면 좋겠다. 비스포크 냉장고를 출시했을 때 처럼 삼성이 유연하고 젊고 겸허한 회사라는 얘기를 소비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권안나 기자 kany87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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