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2050)27-주역으로 본 한일갈등 이후 동아시아2050
'은주 교체기'와 비슷한 한일갈등…대통령 국가리더십 중요
주변국 이해관계 활용한 외교술 필요…국론통합 지혜 발휘해야
입력 : 2019-08-19 00:00:00 수정 : 2019-08-19 00:00:00
일본 아베 총리가 불 지른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한창이다. 국가비전을 서구의 미래연구 방법론이 아닌 동아시아의 <주역>으로 보면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한일관계는 어떻게 전망되는가. 요동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주역의 세계관과 국가관으로 전망할 때, 서구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주역의 벽괘설을 기초로 한일 관계를 전망해 볼 수 있다. 오해가 생길까 미리 말해 둘 것은 주역은 사주팔자나 명리학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 주역은 음과 양으로 된 이진법을 기초로 이루어진 논리체계다. 반면 사주나 명리학은 오행의 오진법으로 이루어진 논리체계다. 이진법과 오진법은 서로 달라서 이 두 가지를 직접 연결하기는 힘들다.

동아시아 사유로 풀어보는 한반도 정세
 
주역은 주나라에서 체계화된 국가론으로, 국가의 길흉과 운명의 변화를 예측했다. 정태적 분석과 동태적 분석 중 주역은 시간을 따라 변하는 추이를 중심으로 한 동태적 국가론이다. 한국에서 독자적 주역 해석을 내놓은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의 <주역사전(周易四箋)>을 보면 그는 주역에서 추이설과 효변설을 핵심 개념으로 소개했다. 추이설은 계절이 사시사철로 바뀌듯 국가나 개인의 운세도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추이 속에서 변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발견은 효변설이다. 주역의 묘미는 하나의 괘가 나오면 그 음양을 뒤집어 보는 데 있다. 이는 서양 학문에서는 도저히 그 사례를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동아시아적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주역 벽괘설에 의하면 지금 일본과 국제관계는 대통령의 국가리더십, 미국과 중국 등 전통 강대국과 관계, 최근 중요해지는 신남방·신북방 등 개발도상국과의 관계, 국내 정치에서 야당과 보수언론 등과 관계 그리고 국민 지지의 중요성 등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2일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한국을 무역우대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사진/뉴시스

효변설을 통하면 지금의 한일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1000달러로, 일본의 3만9000달러에 비해선 80%에 해당한다. 이 단순한 관계를 주역 벽괘설로 해석하면 한일관계에서 한국의 점괘는 임(臨)괘다. 임괘는 6개의 효사(爻辭) 중 아래서 세번째가 음이지만, 효변설로 음을 양으로 바꾸면 태(泰)괘가 된다. 지금 한일관계는 일본의 국민소득보다 20% 적은 한국이 임괘에 처했으나 태괘로 전환, 한국과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동등한 상황까지 변하는 시기다. 일본 아베 정부와 국수주의자들이 우려하는 것도 한때 식민지였던 한국이 자신들과 동등해지거나 추월할지 모른다고는 두려움이다.
 
주역의 추이로 해석한다면, 한일관계는 주나라 문왕의 시기와 비슷하다. 은나라는 날로 쇠약해져 가고 세상의 민심은 점점 주 문왕에게 쏠린다. 마치 지금 일본의 아베와 한국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주나라와 은나라가 관계가 역전되고 천하가 주나라에 들어온 건 문왕의 아들인 무왕이 집권한 때다. 지금 한일관계도 아직은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기 전이다. 국가의 강인함이 점차 자라나서 국민은 기뻐하지만 바깥으로 웃고 기뻐하는 것보다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하는 게 이롭다. 또 일을 처리할 때엔 순하게 해야지 밖으로 수선스러우면 안 된다. 그런데 임괘의 시대에 대통령의 국가리더십은 마냥 부드럽게만 해서는 안 되고 굳세게도 해야 하므로 '곧을 정(貞)'자와 같은 굳셈이 중요한 덕목으로 요청된다.

주변국 관계, 4강 외교와 G20 네트워크

비록 한일관계는 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침략으로 갈등을 겪고 있지만 4강 외교를 중심으로 한 주요 20개국(G20) 네트워크는 좋은 흐름을 탈 수 있는 승(升)괘다. 승괘는 땅속에서 나무가 움이 터서 점차 땅 위로 올라오는 기상을 의미하는데, 차곡차곡 쌓이는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을 할 때 거칠기만 하면 일이 잘 이뤄지지 않지만 겸손하고 순하면 무슨 일이든지 잘 이룩된다는 뜻도 가졌다. 주역에서는 애를 쓰지 않아도 올라올 만한 것은 올라올 이치와 도가 있으므로 굳이 무엇을 더 하려고 하지 않고 원래 그대로만 해도 자연히 크게 형통하게 된다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고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패권질서의 중심에 서고자 주변 국가들에게 위압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이를 견제하는 미일 간의 관계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갈등을 유발할 요소가 다분하다. 동시에 미일과 중국은 한국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알기 때문에 주변국들은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서구의 인권과 민주, 평화 등 보편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써 한국과 호혜적인 관계를 원하고 있다. 이런 보편가치 중심의 문명국가론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한국은 21세기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부상하는 게 가능하다.
 
7월28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일본 오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만찬에 앞서 각국 정상 내외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현재 한국은 일본과 갈등이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미국과 전략적 유대관계를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기존엔 한미일 관계가 미국과 일본이 중심이고 한국은 그 하위 질서인 것으로 인식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미일관계처럼 조금 더 긴밀하고 전략적 관계가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의 개발도상국 네트워크는 정상적인 것보다 지나치게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소과(小過)괘에 해당한다. 이것은 '소과'라는 단어에서도 드러나듯 어느 때보다 약간 지나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사람을 예로 들면 체내에 있는 혈액이 정상적으로 순환을 하다가도 어느 때엔 조급하게 움직일 때가 있다. 우주도 원리대로 순환하다가 어느 때엔 약간 지나쳐서 우레가 칠 때가 있다. 이처럼 소과는 본래 지나치게 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원래 궤도와 이치에 맞게 하려다가 별안간 도리가 과도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개발도상국 네트워크에서는 신남방·신북방 정책과 해외원조개발(ODA)이 핵심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재편하는 과정에서도 소과의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한일갈등 해결 위한 정치권 합심과 국론 통합

국내 정치는 서로 어긋나는 것을 의미하는 '규(日+癸)'괘에 해당한다. 규괘의 효사를 보면 상괘는 불로 위로 오르려고 하는 성품이고, 하괘는 물이 아래로 흐르려는 성품이다. 불과 물은 서로 상극이니 잘 부합되지 않는다. 또 물이 불을 만나면 물이 마르고, 불은 소멸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이는 한일갈등이 격화될수록 한국 내부, 특히 정치권에선 친일과 반일로 편이 나뉘어 갈등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는 의미다. 문재인정부에 기조와 행보에 대항하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발목잡기는 한일갈등보다 더 첨예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8·15 광복절에 광화문 광장에선 '노 아베' 집회가 벌어졌고, 맞은편 서울시청 앞에선 보수단체 등이 개최한 문재인정부 퇴진 요구 집회 등이 열렸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국론이 분열된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첨예한 대립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한일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정서는 겸손을 의미하는 '겸(謙)'괘다. 겸손이란 높은 덕과 지혜와 귀한 지위가 있다고 할지라도 있는 체하지 않는 자세다. 아예 아무것도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서도 있는 체하지 않고 감추는 게 겸손이다. 겸손은 애를 써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더 큰 덕을 쌓으려고 하면 자연히 늘 부족하게 여겨지므로 자연히 겸손하게 되는 것이다. 주역에 따르면 덕을 쌓고 지혜를 넓히면 자연히 겸손해져서 만사가 형통해진다고 할 수 있다.
 
한일갈등과 동북아 패권주의, 그리고 문명론
 
일반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19세기 개항기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격차가 본격화된 것은 16세기 대항해시대의 산물이다. 16세기에 일본은 그 흐름을 타고 변화했으나 조선은 실패했다. 16세기가 대항해시대라면 21세기는 대융합(Grand Convergence) 시대로 정의된다. 문명사적으로 미국문명과 동아시아문명의 충돌 속에서 문명융합이 본격화되고 있어서다. 대항해시대가 개막한 이후 500년이 지나 서구의 일방적 패권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게 됐다.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앞으로 15년 후인 2032년이 되면 남한은 세계 경제규모 8위 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이고 인도, 일본, 독일, 브라질, 영국에 이어 한국, 프랑스, 인도네시아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흥미로운 건 10개 나라 중 5개 국가가 아시아에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경제분야에서는 아시아가 세계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제74주년 광복절인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역사왜곡·경제침략·평화위협 아베규탄 및 정의평화실현을 위한 범국민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노 아베'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명사가들은 거대한 문명의 전환기엔 문명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쇠퇴하는 패권국가와 새롭게 부상하는 문명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은 심각한 경우 격렬한 전쟁을 통해 패권이동이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이것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한다.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패권경쟁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도 '예고된 전쟁'으로서 한반도에서 전쟁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명론은 인류에게 다른 선택도 남겨놓고 있다. 충돌하는 문명의 갈등이 아니라 융합되어 새로운 문명으로 진화하는 가능성이다. 7세기 로마 문명권의 변경이었던 중동에서 이슬람문명이라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했다. 미국문명과 출발은 유럽문명의 변경이었다.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가로 여러 갈등을 일으키는 와중에 한국은 문명통합의 모델과 길을 모색해야 한다. 동아시아 문명사에서 인류 보편성을 가진 문명통합 모델은 원나라에서 채택되었던 경연(經筵) 제도와 동아시아 문명이 지향했던 천하국가(天下國家) 이론이다. 지금의 용어로 바꾸면 '포용문명을 바탕으로 한 문명국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제대로 된 권력교체 없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군국주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지금 아베와 그 주변의 철학과 대외인식은 100년 전의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문명 충돌이 일어나고 있고 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침략 속에서 한국이 어떤 역동성을 가져야 할 것인지 담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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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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