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2050)25-세계 5대 문명국가 비전
"'보편적 평화국가'를 바탕으로 '세계 5대문명' 달성해야"
'세계 10대 문명'과 연대하며 글로벌 갈등 완충지대 역할
입력 : 2019-07-22 07:00:00 수정 : 2019-07-22 07:00:00
대한민국은 국정운영에서 세계전략을 가진 적이 없었다. 냉전체제는 신생국 대한민국이 독자적 세계전략을 갖는 것보다 미국에 종속적인 위치를 갖도록 했다. 그러나 미중 갈등으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판세가 흔들리는 걸 계기로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대한민국도 이제는 독자적 세계전략을 모색할 때가 됐다. 대한민국의 국가비전을 국내적으로는 '포용국가'로 설정했다면, 대외적으로는 포용문명과 평화국가론을 바탕으로 '세계 5대 문명국가(Civilization-5)'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한국문명의 생존전략은 크게 2가지다. 성장하는 중국문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을 둘러싼 문명들과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인도문명과 동남아 이슬람문명, 러시아문명과 협력하는 건 21세기 글로벌 포용문명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 문명 퇴조기에 있는 유럽 문명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있다. 예컨대 미국과 중국의 클라우드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한국과 독일이 협력해 제3의 글로벌 클라우드를 개발,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온라인 세계의 독자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인권과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유럽의 문명적 연대, 그리고 평화국가론은 지구적 문명 전환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리라 기대된다.
 
평화국가론, 세계 10대 문명과 맞춤형 교류협력

평화국가를 지향하는 구체적 접근 방법은 개별국가가 아닌 세계 10대 문명과 협력 강화다. 문명론을 기초로 현재 대표적인 10대 문명을 협력 파트너로 삼고, 개별 문명의 순환주기와 환경에 맞는 접근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의 문명연구는 문명도 인간의 생애와 같이 재생과 성장, 쇠퇴, 해체의 순환주기를 가진다는 걸 보여줬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선 문명 쇠퇴기에 진입한 미국과는 지속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토인비의 연구에 따르면 쇠퇴기에 접어든 패권국가는 다양한 내부의 문제의 원인을 제국 외부의 다른 문명이나 국가들에게 전가하는 속성이 있다. 미국문명은 그간 숱하게 신흥 강국들의 도전에 직면했지만 최근엔 중국문명이 부상하면서 위기감이 특히 커졌다.
 
미국과 중국의 문명충돌과 정치경제적 갈등이 증가할수록 평화국가론을 주창하는 한국문명의 완충지대 역할론이 강조된다. 사진/플리커
 
문명사적으로 쇠퇴기의 문명은 내부에서 역동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문명의 사정은 유럽보다는 낫지만 전반적 전망은 부정적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하락했고 정치적 양극화는 심화됐으며 심각한 재정적자의 길로 가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세계 경찰' 지위에 대한 회의감과 피로감도 누적됐다. 미국은 경제 상황의 악화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하고 있다. 이런 추세와 맞물려 미국은 힘과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국가에 체제 유지의 부담을 전가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외치면서도 다른 국가들에게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시행하고, 해외 주둔지의 군사비 부담을 주둔국에 요구하고 있는 게 한 사례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이런 경향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 문명 쇠퇴기에 진입했다는 특성을 염두에 두고 미국이 전가하는 부담은 최소화하면서도 전통적 우호관계를 지속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문명 해체기의 유럽과 협력 모색

유럽문명은 해체기 문명의 특징을 보여준다. 유럽연합(EU) 안에서 경제와 안보는 불균형적이고, 통화가 통합됐다지만 회원국의 재정정책은 독립적이다. 회원국 각자의 반이민 정서, 저성장, 고실업률 등으로 EU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EU의 금융시스템은 계속 불안정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로 촉발한 분리주의 유행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문명충돌과 갈등이 증가할수록 완충지대 역할을 할 한국이 제휴를 고려해야 할 문명은 유럽이다. 문명의 생애주기를 고려할 때 해체기에 진입한 문명은 이미 패권국가 사이에서 성장기와 쇠퇴기를 거쳐왔다. 따라서 한국은 이미 문명의 생애주기를 경험한 유럽을 통해 패권국가 간 긴장에서 비켜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학습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문명 성장기와 패권주의의 중국

중국과 한국은 동아시아 문명권에 속하지만 두 문명의 지향점과 미래비전은 전혀 반대의 흐름에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대안 문명이자 패권국가의 길을 가고 있다. 한국은 다양성의 평화를 지향하는 보편 문명으로 미래비전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국내적으로는에 시진핑 주석 1인 지배체제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중화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경제적으로는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소비중심의 경제로 전환 중이다. 또 신중산층이 급증했고, 이들이 요구한 대기오염 개선과 합리적 주택정책, 계층이동 가능성 등을 중국 정부가 얼마나 잘 부응하느냐에 따라 시진핑 체제의 존망이 결정될 것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경제는 물론 사회문화적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패권주의의 길을 걷는 중국과는 다른 국가비전과 차별화된 다양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가비전을 국내적으로는 '포용국가'로 설정했다면, 대외적으로는 포용문명과 평화국가론을 바탕으로 '세계 5대 문명국가(Civilization-5)'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사진/플리커

새로 성장하는 인도문명과 협력 강화

경제 전문가들은 인도가 향후 5년간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인도가 2030년대엔 세계 3대 경제권으로 부상할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인도의 계급 불평등과 종교 갈등 문제가 여전하다. 인도와 인접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계속해서 지역적 불안정 요소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인도는 성장 가능성과 함께 불안요소를 함께 안고 있다. 특히 인도는 아시아권에서 중국문명과는 상반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잠재적으로 경쟁관계다. 따라서 한국은 인도문명의 경제적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는 한편 미중 갈등에 대비해 인도문명을 완충장치로 활용할 수 있는 협력관계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이슬람문명과의 공존을 위한 전략

21세기는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협력과 갈등이 점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슬람문명은 문명충돌의 최전선 중 하나다. 이슬람 테러리즘은 21세기 세계평화의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될 정도다. 한국도 이슬람 테러리즘의 무풍지대가 아니며 지금부터 이에 대비해 세심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 이슬람문명은 민족 갈등과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간 이슬람의 독재자들은 천연자원과 대외원조 통제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국민들을 통제했다. 이는 이슬람의 시장과 고용, 인적자원 등의 발달이 지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서구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은 십자군 전쟁 등이 있지만 현대에선 2001년 9·11테러가 결정적이었다. 7세기 이후 1000년 이상 지속된 두 문명의 충돌과 대결은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의 계속되는 분쟁, 서구와 이슬람의 충돌로 국제기구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국제연합(UN) 등의 위기관리 능력도 의심받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서구와 이슬람 사이에 위치한 동아시아 문명이 양측의 화해를 중재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특히 평화국가론을 주창하는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은 역사적으로 다종교의 공존을 경험한 덕분이다. 한국은 현재도 유교와 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이 비교적 다툼없이 공존하고 있다. 극단적인 종교 분쟁이나 유혈사태가 일어난 일도 없다. 다종교 사회와 평화공존의 지혜가 한국이라는 국내적 수준을 넘어선다면 '피의 보복'이 진행 중인 서구와 이슬람을 중재하는 미래지향적 비전까지 제시할 수 있다.
 
한류콘텐츠와 라틴문명

라틴문명은 포르투칼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을 제외하면 라틴문명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단일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가졌다. 라틴문명은 동아시아 문명에 버금가는 단일 공동체를 가졌다. 이는 라틴문명이 역내에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상호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췄다는 의미다. 특히 라틴문명은 한국의 글로벌 소프트파워 강국 전략에서 핵심적인 지역 중 하나다. 한국처럼 단일 공동체에 기반해 동아시아 가족주의와 결합할 수 있으며 한류 문화콘텐츠에 대한 수용성이 높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 전경.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2030년에 브라질이 세계 경제 6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플리커
 
라틴문명과의 협력을 위해선 몇 가지 문화적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라틴문명은 극단적 빈곤이 없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가졌다. 또 CEBR은 2030년에 브라질이 세계 경제 6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반면 라틴문명에선 무기력한 정부 아래에서 마약밀매 등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포퓰리즘이 득세한 경험을 가졌으며 각국의 재정문제는 심각한 상태다. 정부에 대한 중산층의 불신과 불만이 팽배하고 빈곤과 불평등도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권교체에 대한 요구가 커서 좌파정권이 들어선 적도 있고, 이내 몰락했으나 그렇다고 다른 정치세력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세계 경영전략은 포용문명을 중심으로 세계 5대 문명국가 지향이다. 지금 정부는 '국가 미래비전2045'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8월15일에 나와야 할 메시지는 대한민국 세계전략으로서 세계 5대 문명국가론이다. 여기에는 숨겨진 전략이 있다. 한국문명이 중국문명, 미 문명, 인도문명, 유럽 문명과 함께 세계 5대 문명권을 형성한다는 의미다. 달리 말하면 이 전략은 적어도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에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인권과 민주, 평화, 생태 그리고 정의의 가치에서 일본 문명을 넘어선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 '미래, 문명, 평화'와 국정아젠다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행정학을 전공했고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장으로 국내 26개 국책연구소의 국정 정책담론을 기획·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국가비전2040을 수립하는데도 참여 중이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30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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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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