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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혜진 “‘비스트’ 속 내 모습, 시나리오엔 더 끔찍했다”
“‘춘배’ 원래 남자 설정, 온몸 문신에 삭발 헤어스타일까지”
“상영 버전에서 많은 부분 생략된 ‘춘배’ 개인 서사 아쉬워”
2019-06-30 00:00:00 2019-06-30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배우 이선균의 아내로 더 유명하다고 하면 전혜진에겐 서운함이 앞설까. 아니면 그럴 수도 있다며 고개를 끄덕거릴까. 사실 본인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대중들이 배우 전혜진을 설명할 때 전자의 수식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더욱 크단 것은 분명하다. 우선 최근 대중 매체를 통해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설명하는 걸크러시원조에 해당하는 배우가 전혜진이다. 강하고 터프하고 거침없다. 두 번째는 부러질지언정 휘어질 수 없다며 두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꼬나보는 작품 속 캐릭터의 본질이 왠지 모르게 전혜진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영화 비스트춘배란 캐릭터도 그렇게 보면 전혜진 아니면 다른 배우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연출을 맡은 이정호 감독 조차 전혜진 외에는 대안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을 정도였으니. 참고로 개봉한 비스트춘배의 비주얼은 몇 차례의 톤다운과정을 거친 모습이란다. 제대로 이 배역에 달려들 준비를 했었단 전혜진과의 대화는 그만큼 강력했다.
 
배우 전혜진. 사진/NEW
 
개봉을 며칠 앞두고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카페에서 전혜진과 만났다. 그는 처음 비스트출연 제안을 받았던 시기를 기억하며 웃었다. 술자리에서 주고 받은 대화였기에 얼떨결에 출연 약속을 했지만 다음 날 술이 깬 뒤 자신감이 떨어졌었다는 것이다. 천하의 전혜진이지만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었다. 워낙에 쎄고 강렬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시나리오를 받고 감독님이 미팅을 제안하셨어요. 만난 자리에서 솔직하게 비스트에 대한 얘기를 전부 했죠. 그랬더니 춘배 해볼래?’란 제안을 하셔서 놀랐어요. 당연히 하겠다고 했죠. 그런데 다음 날 술이 깨고 난 뒤 자신감이 확 떨어졌어요. 영화 보시면 아시겠죠(웃음). 그런 비주얼에 그런 배역을 여배우가 쉽게 하는 게 힘들잖아요. 하하하. 그런데 성민 선배가 너 하기로 했다며라고 전화를 주셨어요. ‘네가 하면 잘 할 거 같은데란 말씀을 해주셔서 용기를 갖고 직진했죠.”
 
사실 전혜진은 이 영화에서 다른 배역을 제안 받았었다. 하지만 이정호 감독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느낀 솔직한 생각을 전한 뒤 곧바로 춘배역으로 캐스팅 변경이 된 것이다. 원래 시나리오에선 춘배창배란 남자로 설정돼 있었다. 실제로 남자 배우들이 후보군이었다. 더욱이 삭발과 온 몸에 문신까지 그려야 했었다. 강렬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전혜진이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배우 전혜진. 사진/NEW
 
네 다 맞아요 하하하. 삭발은 저도 하겠다고 했어요(웃음). 물론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 그렇게까진 안가도 되겠다로 결론이 났죠. 문신은 영화에서 뒷태가 드러나지만 온 몸에 덕지덕지 할 필요까진 없어 보였죠. 사실 촬영 직전까진 얼굴 절반에 문신을 그려 넣었어요. 저도 흔쾌히 동의했죠. 관객들이 전혜진인 걸 몰랐으면했으니. 근데 나중에 감독님이 꼭 이렇게까지 강할 필요는 없겠다라고 하시며 수위를 지금으로 조절했어요. 완성 버전에서도 오히려 그게 더 강해 보였죠. 비주얼 적으로 강하면 더 묻힐 뻔 했겠다 싶었어요.”
 
이 영화가 호불호가 갈릴 만한 지점은 누구라도 인정한다. 그 지점은 바로 각각의 캐릭터들의 서사가 설명된 부분이 없다. 그저 그랬을 것 같다란 느낌을 주는 대사 몇 마디가 전부다. 주인공 한수(이성민)와 민태(유재명)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한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춘배에 대한 부분도 과감하게 생략된 지점이 많았다. 그래서 세밀한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만들어 내는 감정을 느끼는 지점에서 관객이나 배우나 당혹스러움을 느낄 법했다.
 
많이 생략이 됐죠(웃음). 맞아요. 원래 영화에선 춘배의 개인 공간이 있었고 촬영한 것도 있었는데 편집에서 생략됐어요. 온 몸에 있는 문신은 나 한 번 건드려 봐란 심정으로 하나 둘 새긴 과대 포장 같은 것. 팔에는 꽃 문신이 있는데 춘배가 마약을 하면 환각 속에서 드러난 이미지. 뭐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실 마약 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그건 감독님과 상의해서 안 찍었어요. 글쎄요. 춘배? 정말 살고 싶어했어요. 유일하게 자신의 꿈을 드러내는 인물이잖아요. 사실 처절하게 당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그것도 안 찍었어요. 너무 불쌍하잖아요.”
 
배우 전혜진. 사진/NEW
 
그 불쌍하단 말에는 영화 속에서 드러난 끊임없는 폭력 장면에 대한 연민도 있었을 터. 전혜진이 연기한 춘배는 이성민이 연기한 한수에게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하기 일쑤다. 격렬한 액션 장면이라고 해야 하지만 사실 일방적인 폭행에 가깝다. 일부 장면에선 진짜로 폭행을 당하는 것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액션을 소화하기도 했다.
 
하하하. 사실 맞다가 진짜로 눈물이 난 적도 있어요. 영화 후반에 쓰레기 더미에 얼굴을 묻고 있는데 성민 선배가 구둣발로 제 얼굴을 밟고 때리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 이렇게까지 해야 돼?’란 서러운 마음이 정말 들더라고요. ‘비스트에서 액션은 잘 짜인 합이 아니라 현장에서 거의 만들어졌어요. 성민 선배야 연극할 때부터 잘 알고 지낸 분이라 믿고 했죠. 그래도 맞는 건 너무 아프더라고요(웃음)”
 
비스트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직설적인 화법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강렬하게 깊은 내면을 그려낸다. 두 남자 주인공의 욕망이 영화 스토리의 주된 동력이었기에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면 두 사람을 서포트하는 춘배를 연기한 전혜진은 어떤 욕망을 이 영화에서 감지했을까. 일부에선 그 욕망을 드러내기에 춘배의 분량과 서사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배우 전혜진. 사진/NEW
 
사실 그 부분은 저도 좀 아쉬워요. 춘배의 분량이 좀 더 있었다면 보다 더 깊고 어두운 얘기가 더 자세하게 묘사됐을 것 같은데. 그래도 뭐 비스트는 두 남자의 얘기이니 아쉬워 할 수 밖에 없는 거죠(웃음). 욕망? 일단 분장을 하고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순간 전 춘배가 됐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전 항상 어디까지 가야하지?’란 고민을 하는 데 감독님은 항상 질문을 하셨어요. 난 고민하고 감독님은 질문을 하고. 이런 과정이 굉장히 클래식한 느낌이었고, 그게 비스트의 매력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매력을 안게 내가 알게 된 욕망일까(웃음)”
 
이성민은 이정호 감독과 베스트셀러’ ‘방황하는 칼날두 작품을 함께 하면서 서로 호흡을 맞췄다. 반면 유재명과 전혜진은 이 감독과 처음이었다. 이성민은 이번 작품을 통해 이 감독이 더욱 깊어지고 날카로워졌다고 칭찬했다. 반면 유재명과 전혜진은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 감독의 스타일에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단다. 전혜진은 특히 초중반까지 이 감독의 촬영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배우 전혜진. 사진/NEW
 
제가 과하게 하면 감독님은 더 과한 걸 요구하셨죠. 그런데 또 오케이는 안 하세요. 하하하. 글쎄요 이번 작품으로만 보면 이상할수록 감독님은 좋아하셨어요 상업 영화가 이렇게까지 딥(deep)하게 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배우들을 끌어 내리기도 하고. 정말 함께 작업하는 사람 입장에선 정말 힘들었죠. 그런데 배우라면 이렇게 어떤 한계점까지는 제가 몰려보는 것이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봐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힘들었다고 밖에는 말이 안 나와요. 그런데 이 감독과 다시 작업하라고 하면? 전 할 거 같아요. 분명히.”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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